"가족과 함께 탈출한게 부러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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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읍니다. 가족과 처가식구들까지 함께 탈출한 김만철씨가 부럽기만 합니다』 동토의 왕국을 탈출, 이제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에 정착한 해상탈출자들은 한결같이 김씨 일가의 탈출성공에 감탄하며 그들도 우리곁에 함께 하길 바랐다.
66년9월14일 평신정을 몰고 일본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민경태(51·국민투자신탁 업무부장·당시 부기관장) 장대형(47·경기도수원시쌍룡운수대표·당시 부선장) 안병록(42·(주)럭키총무부·당시 선원)씨와 66년9월29일 북한철도성의 목선을 타고 귀순한 오손우씨(41·공무원), 78년6월27일 귀순한 오이섭씨(54) 등.
자유를 얻기 위해 가족과 이별하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이들이었기에 김씨 일가의 탈출이 정말 값진 것임을 뼛속깊이 실감하고 있다. 평신정 선원들이 선상반란을 일으켜 북한을 탈출한 것은 66년9월14일 상오3시30분. 평신정 4-034호 선원이었던 민씨등은 9욀7일4-033호와 함께 신의주항을 떠나 중공 산동반도 앞바다에서 조업을 마치고 어장을 옮기는 틈을 타 탈출을 감행했다.
민씨등 4명은 4-033호와 무선이 끊기고 무기고 감시요원이 잠든 틈을 타 자동소총으로 무장, 선장에게 선수를 일본으로 돌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선장이 불응하고 노동당세포부위원장등 4명이 달려들자 이들 5명을 사살하고 부선장 장씨가 방향타를 잡았다.
당시 남은 선원 11명중 2명도 목포 서남쪽 1백17㎞ 해상에 이르렀을때 민씨 일행의 항해를 방해하려고 반항, 사살한뒤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고 탈출에 소극적인 9명을 선실에 감금했다.
이들은 3일만인 9월17일하오3시20분쯤 일본하관항에 도착, 정치적 망명을 요구했다.
민씨등은 일본정부에 의해 망명요청 11일만에 한국행이 결정돼 한달만인 10월27일 민씨등 3명과 이찬호씨(50·당시 선원)는 한국정부에 인도됐고, 나머지 9명은 북한으로 인도됐다.
이씨는 그후 74년 미국으로 이민, 현재 미국필라델피아에서 청과물상을 경영하고 있다.
민씨는 서울에 도착한 다음해인 67년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부인 박경숙씨 (43) 와 중매결혼했고 대학졸업(71년)후 한국투자공사에 입사했다.
그후 증권감독원으로 옮겨 총무과장·검사역등 북한사회에선 있을수도 없는 업무를 담당하다 82년7월 현재의 직장으로 옮겨 인천지점장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 업무부장직을 맡고 있다. 현재 민씨의 딸(20)과 아들(19)은 모두 대학생. 서울둔촌동아파트에 살고 있는 민씨는 살아있다면 7순이 됐을 부모와 동생 6남매를 한시도 잊을 날이 없어 명절이 되면 장씨·안씨와 만나 고향얘기를 나누며 소주잔을 기울인다.
민씨는 『21년전 당시에는 일본정부가 망명을 인정하지않고 강제출국 형식을 취했는데 이번에 또다시 보여준 모호한 태도는 인도적 견지에에 있을수 없는 일』이라며 김씨일가의 한국인도를 촉구했다.
장씨도 성대경영학과를 졸업, 지금은 없어진 월남귀순자동지회 사무국장을 거쳐 한국자동차보험·현대화재해상보험등에 근무하다 지난해9월 퇴직하고 현재 수원에서 택시 23대를 운영하는 운수회사 사장으로 변신했다. 월남 다음해 부인 김명옥씨(42)와 결혼, 1남2녀를 둔 장씨는 맏딸이 고3이어서 『온가족이 대학입시 비상』이라며 선택의 자유가 열려져있는 자유의 고통을 앓고있다고 했다.
장씨는 용천에 두고온 어머니와 누나의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은 것이 소원.
기독교인인 안씨는 67년 최운영씨(37)와 결혼, 1남1녀를 두었다. 월남후 첫직장인 철도청 서울보급소에서 고용원으로 일하다 두군데직장을 거쳐 현재의 직장에 정착한 안씨는 『학력이 고졸이어서 직장을 자주 옮겼지만 생각하기도 지긋지긋한 북한사회에서는 생각이나 할수 있는 일이냐』며 현재의 생활에 만족했다.
민씨등이 북한을 탈출한지 10여일후에 북한철도성 제6철도건설사무소(함남 원산시신흥동) 의 35t급 목선을 타고 자형안 선장 최송식씨(47)등 5명과 함께 탈출한 오손우씨는 김씨 일가족이 한꺼번에 배를 탈수있었던 것은 어로감시선의 선장이 선원들에게 휴가·외출을 허용한 틈을 이용했을 것이라고했다.
한편 78년 백령도근해에서조업중 폭풍으로 표류하다 우리함정에 구조된 선원5명중 북한송환을 거부하고 귀순한 오이섭씨(54)는 현재 서울강남J아파트에서 부인·남매와 남부럽지않은 생활을하면서 학교·공공기관등에서 반공강연과 반공교육을 담당하며 자유를 만끽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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