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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후 동독 출산율 반 토막, 한국도 비슷한 일 벌어질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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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10면

지난달 2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통일과 인구’ 국제 콘퍼런스에서 노베르트 슈나이더 독일연방인구연구소장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1990년 독일 통일 이전 서독은 인구가 6100만 명, 출산율은 1.43명이었다. 동독은 인구가 1700만 명으로 적었지만 출산율은 1.67명으로 서독보다 높았다. 적극적 가족친화 정책 덕분이었다. 하지만 통일이 되자 동독의 출산율이 급감했다. 90년 1.49명, 91년 1.01명으로 줄었다. 92년 0.89명으로 1명 아래로 떨어지더니 94년 0.83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통일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서독은 80년부터 1.4명 선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94년 통일 독일의 출산율이 1.24명으로 곤두박질쳤다. 독일연방인구연구소 노베르트 슈나이더 소장(마인츠대 사회학과 교수)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통일과 인구’ 국제 콘퍼런스에서다. 콘퍼런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원장 김상호)과 독일연방인구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슈나이더 소장은 “계획경제에 익숙한 동독 주민들이 시장경제 체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노동생산성 경쟁력이 낮아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거나 늦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독은 과거 혼인율(인구 1000명당 결혼 건수)이 서독보다 월등히 높았다. 86년 무렵 동독은 혼인율이 8건, 서독은 6건 언저리였다. 그러다 동독은 91년 3.5건 가까이로 급전직하 했다. 슈나이더 소장은 “동독에서는 미래가 불안했다. 통일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그동안 갖고 있던 많은 걸 버려야 했다. 특권을 버려야 했다. 이 때문에 아이를 많이 안 낳고 결혼도 안 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는 “충격적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동독의 초산 연령은 80년 22세(서독은 약 25.5세). 이후 급격하게 높아졌다. 슈나이더 소장은 지난 35년 동안 “직선으로 상승했다”고 묘사했다.


-남북한도 통독의 충격 현상을 겪을 것으로 보나. “통독 후 동독에서 벌어진 비슷한 일들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것이고, 저출산 현상이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다. 남북한의 경제 격차는 동서독보다 훨씬 크다. 남한의 일상(日常)이 북한에는 없다. 사회적·문화적 자본이 북한에 없다. 특별한 경우(특별한 계층을 지칭)에는 있다. 이런 격차의 극복이 독일보다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동서독은 왕래가 잦았지만 남북한은 닫혀 있다. 이런 게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통독 이후 동독 주민의 자격증이 쓸모없어졌고 필요한 자본을 갖고 있지 않았다. 보조금을 받는 하위 계층으로 전락했다. 이런 ‘사회적 루저’가 한반도 통일 이후에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이게 핵심이다. 북한의 경우 훨씬 저출산이 심해질 것으로 본다. ”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16 세계 인구 현황’을 보면 북한 출산율은 1.9명이다. 독일은 지난해 출산율이 1.5명을 기록하면서 33년 만에 1.5명대로 진입했다. 독일 연방통계청은 “독일 내 외국 국적 여성의 출산율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2008년에는 인구 유입보다 유출이 많았던 시기다. 그 이후 아랍계 난민이 많이 들어왔고 지난해에 약 200만 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슈나이더는 “독일은 이주민 국가라 말할 정도다. 최근 5~6년 사이 이주민 정책을 많이 바꿨다. 이 덕분에 이민이 쉬워졌다”며 “인구 감소 정도는 이주민 유입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도 선진국으로 가려는 이민자가 증가할 것인데, 아시아도 마찬가지”라며 “다원적 사회가 성공한다.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통일 독일에서 동서독 간 인구 이동도 골칫거리였다. 초기에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가 많았다. 90년대 중반에는 줄었다가 2001년 다시 상승했다. 일자리를 구하거나 높은 임금을 찾아 서독으로 몰렸다. 그러다 2013년 양쪽의 이동이 같게 됐고, 지금은 오히려 서독에서 동독으로 가는 이동률이 높다. 동독의 공과대·예술대에 가는 학생이 많고 동독 지역 공공서비스 부문 종사자에게 임금을 우대하는 정책이 있어서다. 한국은 어떨까.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이주할까. “동독의 25세 이하 젊은이가 서독으로 많이 이동했다. 고립된 동독에서 현대화된 서독으로 젊은이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젊은이에게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문호가 열리는 것이다. 북한도 그럴 거다.”


슈나이더는 “동서독 격차 해소에 25년 이상이 걸렸다”고 말한다. 동독 출산율도 통독 충격에서 벗어나 2000년대 후반에 서독과 비슷해졌다. 그는 “한국은 독일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할 것이다. 독일은 소득의 2%를 사회연대세로 낸다.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독의 경우 14세까지 완전 국가 보육을 받게 돼 있었다. 서독은 이런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하다. 슈나이더는 “남한과 독일의 어머니 수준이 높다. 자신의 전부를 바쳐 아이를 교육한다”며 “자녀 교육 실패 부담감이 독일 저출산의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이런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2020년까지 인구가 증가하다 감소로 돌아선다. 동독 지역의 출산율이 어느 정도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통독 이전 상태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슈나이더는 “인구가 주는 게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인구 감소가 국가 발전에 재앙적 영향을 미친다고 입증된 바는 없다”며 “장기적인 대책이 인구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절하다”고 말한다. 독일은 제3제국(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시기의 독일제국) 경험 때문에 출산정책을 펼 수 없었다. 대신 가족정책에 집중했고 국내총생산(GDP)의 3%(한국은 1.13%)를 쓴다. 그래도 일·가정 양립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슈나이더는 “가족예산의 3분의 2를 경제 지원, 나머지를 보육 시설 등 인프라 구축에 쓰는데 이게 잘못됐다. 반대로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인구정책의 원칙이다. 한국 문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은 개인의 문제여서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단기적인 정책이 인구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빨리 뭔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선거 사이클에 맞춰 정책을 내는 게 옳지 않아요. 제반 여건을 마련해 삶의 질을 향상시켜서 인구 변화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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