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14명에게 '최태민' 질문받은 박근혜 대통령, 답변은

중앙일보

입력 2016.11.03 14:46

업데이트 2016.11.03 19:54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의 출발점은 최순실•순득 자매 아버지인 최태민씨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문제'를 안고 어떻게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왔을까?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이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표, 대선후보가 되는 동안 최태민 일가의 영향력은 계속 의심받았다. 언론은 최태민 의혹에 대해 여러 차례 검증을 시도했으며 박 대통령이 대권에 다가설수록 질문은 줄기차고 집요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답변도 갈수록 단호해졌다. '이미 다 밝혀진 것', '실체가 없는 이야기'라고 강조했고, 대선후보 검증청문회에서는 "애를 데려오면 DNA 검사를 해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DNA 검사' 까지 자신있게 말하자 여론은 수그러들었다. 2007년 최태민 의혹을 폭로한 한나라당 당원 김해호 씨가 허위사실 공표로 징역 1년(항소심에서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을 선고받자 여론은 더욱 잠잠해졌다. 2016년 '최순실 PC'라는 물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래 기사들은 지난 30년 간 박근혜 대통령의 면전에서 최태민 의혹을 제기한 14명의 기록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태민은 누구인가?'에 대한 박 대통령 스스로의 답이기도 하다.

“사심이 없는 사람”
- 1980년대 후반, 자연인 신분

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큰 영애' 박근혜는 신당동 집으로 돌아갔다. 고 박 대통령 10주기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과거 '큰 영애'를 궁금해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최태민 관련 질문에도 답했다. 박 대통령이 즐겨 쓰는 "사심이 없다"는 표현이 이 때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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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 [중앙포토]

1988.8.23 레이디경향 인터뷰

-박 이사장을 싸고 도는 소문 중 대표적인 것은 최태민 씨가 박근혜 씨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이다. 그에 대한 해명을 한다면?
“최목사는 새마음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도와줬던 분이다. 그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꽉 차있을 뿐 사심이 없는 사람이다. 최목사를 직접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 점을 인정할 것이다.”

“반대 세력의 악선전 때문에 부정축재자로 몰린 분”
-1990년대, 육영재단 분쟁으로 최태민 문제가 불거지다

 1990년 육영재단에 안팎에 최태민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재단 직원들은 최태민과 최순실이 육영재단을 사실상 지배한다며 '최태민 일가 물러가라' 시위했다. 이 일로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이 사임하고 동생 박근령 씨가 직을 이어받는다. 박근혜-최태민의 관계가 다시 불거졌다.

당시 박 이사장은 "내가 누구로부터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고 못박았다. 최 씨의 비리와 전횡 의혹에 대해서는 "반대세력의 악선전"으로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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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의 사임 기자회견. [중앙포토]

1990.11.7 육영재단 이사장직 사임 기자회견

-일부에선 재단 고문인 최태민 씨가 육영재단을 좌지우지해 왔으며 이번 사퇴도 최목사의 전횡에 대한 주변의 반발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가 누구로부터 조종받는다는 말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 목사는 청와대 시절 새마음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지난 88년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이 사업을 도와주었을 뿐 그 이상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1993.11.13 동아일보 인터뷰

-김재규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혜 씨가 주도하던 구국선교단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을 둘러싸고 비리가 있었고 특히 최태민 씨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진술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활발하게 활동하니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를 공격하려니 명분은 없고, 그렇다보니 저를 옆에서 도와준 분들을 괴롭힌 것이지요. 최목사님은 구국선교단 때부터 줄곧 저를 도와주셨고 책임도 맡아 앞장섰던 분이라 특별히 표적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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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육영수 여사 20주기를 맞아 MBC 특별대담에 출연. [MBC 뉴스와이드 화면 갈무리]

1994.8.12 MBC 뉴스와이드 특별대담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회고한다'

-최태민 전 새마음봉사단 총재와의 관계는?
“청와대 시절부터 알았으며 사회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으나 사회활동단체가 조직되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반대 세력의 악선전 때문에 부정축재자로 몰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매도당하던 시절 저를 돕던 분”
- 2000년 정계 입문, 최태민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2000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당선으로 정치인 박근혜의 삶이 시작됐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가 돼 천막당사를 차리고 당을 이끌었다. 최태민 의혹은 더 이상 '자연인 박근혜'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론은 검증을 원했다. 박 대표는 최씨 관련 질문에 '저의가 뭐냐'고 되묻기도 했다.

최태민 비리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최씨 생전의 조사 기록은 대부분 당시 작성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표는 "그렇게 말한 사람이 아버지를 암살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최태민을 공격한 이가 결국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인식은 도리어 최태민에 대한 박 대표의 신뢰를 공고히 해준 듯했다.

인터뷰에서 박 대표는 최태민에 대해 "아버지가 매도당하던 시절 저를 돕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 인심이 그렇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후 2007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부모를 여의고 청와대를 나온 후 생활에 대해 "세상 인심에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고 적으며 씁쓸했던 감정을 토로했다. '세상 인심이 바뀌었을 때 유일하게 나를 도운 이'로 최씨 일가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인식은 박 대통령의 최씨 일가에 대한 흔들림없는 신뢰의 밑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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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만든 한국미래연합의 창당대회. [중앙포토]

2002년 월간조선 인터뷰 

 -최태민 씨가 박의원에게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도와드리라고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만나게 됐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만나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싶어 하셔서 한 번 청와대에서 만났죠. 여러 가지로 나라를 걱정하시는 생각이 들어, 그분이 선교단을 할 적에 좋은 뜻으로 하니까 도와 드리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했어요."

-어머니가 현몽했다는 유의 얘기는 사실이 아닌가요. 
 "그건 아니에요. 이런 문제들이 왜 나오냐면, 제가 보궐선거와 총선을 치렀는데 그 상대가 안기부 출신이에요. 자료가 엄청나게 많아서 이런 것 저런 것 마구 공격을 했어요. 한 가지라도 사실이면 제가 국회의원 됐겠습니까. 말할 가치가 없는 주장들이에요."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선우련 씨의 증언에 따르면, 최태민 씨가 도 경찰국장, 도지사에게까지 호통을 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고, 재벌 총수들이 최씨에게 줄을 대기 위해 자신에게 청탁까지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이 안 되죠. 5공 정권이 끝나고 청문회를 했잖아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20년이 흘렀어요. 온갖 이야기를 끌어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 중상모략을 할 수 있습니다. 들어 보면 '그러냐' 이럴 수도 있어요. 문제는 그게 사실이냐는 거예요.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습니까. 최목사가 큰소리 쳐서 권력을 휘두르고 남의 재산을 탈취했다면, 벌써 내가 이렇게 억울하게 당했다고 얘기가 다 나왔을 겁니다. 최목사에게 사기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잖아요. 그것 하나가 백 마디 얘기를 다 해주는 것 아닌가요."

 -최씨의 횡령건수가 14건, 2억2000만원이라는 합수부 수사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감옥에 보내든지 책임을 물었겠죠. 말도 많고 모함도 많았지만 증거가 없잖아요.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권력이 무서워서 그랬다 쳐요. 그후 저도 청와대에 있다가 반대편에서 얼마나 어렵게 살았어요. 그때 저한테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당했다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1977년 9월 아버님께서 중정부장과 최씨를 직접 심문했죠. 
"모략이 들어가니까. 아버지 성격에 가만 계실 분이십니까. 아버지는 분명히 조사시키고, 더군다나 딸 문젠데. 조사해서 뚜렷한 증거가 없으니까 없던 걸로 덮으신 거예요."

-중정을 제쳐두고 경호실 정보처에서 다시 최씨를 조사하려니까, 박의원이 밥도 안 먹고 1주일 간 두문불출해 조사를 포기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적 없어요. 저는 두문불출하고 밥 안 먹고 그런 일 안 해요. 얼마나 엄청난 모략이에요. 제가 편안하게 온실에서 자랐다고 잘못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가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세상이 어떻다는 걸 잘 아는 이유가, 너무 많은 경험을 해서 일 거예요."

 -국가정보기관에서 최씨의 전력이 의심스럽다,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를 하면 따르는 게 온당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권고하던 사람이 아버지를 암살하지 않았습니까"

-최태민 씨가 신군부에 구속돼서 강원도 인제로 쫓겨 갔을 때 전두환 대통령을 상대로 석방운동을 하셨나요. 
"그런 적이 없어요. 제가 말한다고 됩니까. 그때 '유신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최목사를 한 번 더 조사했지만, 혐의가 없으니까 뭘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 양반이 감옥에 간 게 아니고 무슨 군부대에 가 있었어요. 문제가 있었으면 진짜 감옥에 갔든지, 돈을 물어냈든지 그렇게 됐겠죠."

- 사실상의 영부인을 자기 단체의 명예총재로 모신 최씨가 위세를 이용해서 관에 압력을 가하거나, 건어물 도매상 허가를 내달라거나, 공금을 횡령했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이런 식으로 저한테 질문하시는 저의를 의심하고 있어요."

-저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저의를 의심합니다. 이분은 돌아가셨어요. 건어물 도매시장 허가를 받아 누가 손해를 봤다든지 한 사실이 있다면, 여러 가지 다 물으실 수 있어요. 그런데 한 건도 사기당한 사람이 없었어요. 김기자님은 수십년 간 떠돌았던 의혹을 다 열거하면서 묻고, 나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얘기하지만, 그게 그대로 기사로 나가면 돌아가신 분이나 그 가족은 또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뭡니까. 월간조선이 그분과 무슨 억하심정이 있습니까."

-박의원이 육영재단 이사장을 물러날 때도 최씨가 전횡을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최목사가 한 건이라도 감옥에 갈 만한 일을 했다든지, 피해본 사람이 있다든지, 권력을 빙자해서 뭐 한 게 없잖아요. 그게 없으면 그 다음에는 얘기하면 안 됩니다. 모략하는 사람들 얘기를 책에다 다 내실 겁니까. 왜 그러세요."

-왜 이런 식의 인터뷰가 필요하냐면, 이미 박의원이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의 한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좋아요. 제 개인에 관해 검증하는 것은 좋지만, 세상을 뜬 사람과 그 사람 가족들에 대한 거잖아요. 잘못했으면 세상 떠나고도 욕먹어야죠. 그러나 하나도 없는 것이 밝혀졌는데 모략을 쭉 나열한다는 건 안 되죠."

-쭉 나열 안 하겠습니다. 최씨와 일한 것 때문에 유신시절, 5공시절 마음의 고초를 겪었는데 1990년까지 계속 최씨의 도움을 받은 이유는 뭡니까. 
"그때 저를 도와 주고 그런 분들이 별로 없었죠. 아버지가 매도당하던 시절이고, 누가 있었나요. 저를 와서 돕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세상 인심이라는 게 그래요."

-육영재단 이사장을 물러날 때 다른 분도 아니고, 동생 분과 육영재단 직원들이 '최태민이 전횡을 하니까 물러나라'고 했지 않습니까. 
"전횡해서 뭐 나쁜 일 한 게 있었어요? 그때 육영재단이 얼마나 잘 되고 있었는데. 전횡해서 사기를 치고 한 일이 있나요."

-같이 일을 한 사실만 있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그렇게 일할 수 있죠. 재단에 손해날 짓, 또는 사적으로 뭘 챙긴 게 한 건도 없는 겁니다. 10원 한 장이라도 잘못했으면 감옥에 백번이라도 갔을 분위기였어요."

-최태민 씨가 목사가 되기 전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가 아니고 정식 기독교 목사였어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면 내가 상대를 안 했고, 나도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했어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최태민 씨의 사위를 비서로 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의원이 아직도 최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능력이 되니까 쓰는 거예요. 대개 사람을 쓰고 일을 할 때 가까이 잘 알던 사람들을 쓰는 것 아닌가요."

2004.7.25 조선일보 인터뷰

-최태민 씨와의 관계는?
"그분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 돌아가신 지가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정권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친척까지 이 잡듯이 뒤지고 조사도 많이 했지만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지 않은가.”

“내가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 고마운 분”
-2007년 대권 도전, 피해갈 수 없는 최태민

2007년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참가한다. 최태민 관련 언론 검증이 본격화된다.
대선 예비후보 신분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최태민은 "고마운 분"으로, 최씨의 비리 연루에 대해서는 "실체가 없는 이야기"라고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최태민 관련 질문에는 불쾌감도 드러내놓고 표시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는 최씨 관련 의혹에 대해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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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중앙포토]

2007.6.14 중앙일보  인터뷰

-검증 과정에서 작고한 최태민 씨와의 관계가 문제될 수 있다.
"그분은 목사님으로 나라가 어려울 적에 많이 도와줬다. 월남이 패망하고 우리나라도 어려운 상황일 때 구국기도회 하면서 도와줬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어렵고 힘들 때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 주셨다. 저에게 고마운 분이다. (이 대목에서 박 후보는 어조를 높였다) 그분이 횡령을 했느니 사기를 했느니 하는 얘기가 있던데 실체가 없는 얘기다. 그분이 횡령이 어떻다고 하는데 실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디서 횡령을 당했다는 사람도 없고 사기당한 사람도 없어 법원에서도 문제가 없는데 그런 소리 나오는 게 네거티브다.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하느냐는 말도 있는데 지어내서 마음대로 매도하고 네거티브하려면 무슨 말을 못 지어내겠나. 중요한 것은 실체다. 뜬구름 갖고 지어낸 얘기 하는 거야말로 네거티브다. 이미 예전에 다 인터뷰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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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토론회에 참가한 이명박 예비후보와 박근혜 예비후보. [중앙포토]


2007. 7 월간조선 인터뷰

- 정윤회씨가 2004년 6월7일부로 국회 박근혜 의원 사무실 입법보조원으로 등록되어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대구 달성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성실한 사람이고, 국회의원 당선 후 초창기에 입법보조원으로 돕다가 몇 년 전에 그만둔 분입니다.”

- 고 최태민 씨의 자녀들 중 상당수는 박후보 자택과 가까운 곳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자택이 어딘지 지금도 나는 모릅니다. 언론사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생각했습니다.”

- 박후보의 육영재단 이사장 재직시 최태민 씨의 다섯째 딸이 어린이회관 내 '근화원' 원장으로 내정되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내정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짐작가는 것조차 없습니다.“

- 임모(최태민 다섯째 부인)씨와 임씨의 전남편 아들인 조모씨를, 영남투자금융 전무와 영남학원 이사로 선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분은 당시 이미 70대 할머니이자 평범한 가정주부로 평생을 살아온 분이었기에 '전무'로 일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을 전무로 임명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모씨가 그런 가족관계(임씨 전 남편의 아들)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박후보의 현 거주지(서울 강남구 삼성동 42-6)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최태민 씨의 집(주유소 뒤편)이 있었는데, 후보의 거주지 이전이 최목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이 거기였다는 것도 처음 듣는 얘기지만, 성심껏 답변을 드리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나오는지'를 생각하니 여간 불유쾌한 게 아닙니다.”

- 고 최태민 씨는 박후보께서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시면서부터 재단 운영에 관여했다는 게 당시 직원들의 주장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후보님의 생각은 무엇인지요.
 “관여라는 게 무슨 뜻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무슨 명목으로든 돈이 지출되었을리도, 결재를 했을 리도 없고, 육영재단과 관련하여 무슨 업무를 맡은 적도 없는데 도대체 관여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 고 최태민 씨는 박후보에게 어떤 분이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힘들었을 때 내가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 고마운 분입니다.”

"최태민 의혹에는 실체가 없다"
-2007년 경선후보 검증 청문회, 최대 쟁점 최태민

한나라당은 외부인사를 초빙해 후보 검증위원회를 꾸리고 청문회를 열었다. 이명박 후보에게는 BBK, 박근혜 후보에게는 최태민이 아킬레스 건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최태민에 대한 모든 의혹을 총망라한 질문을 받았다.
검증의 칼날에 박 후보는 "최 목사에게 피해입었다는 사람 왜 한 명도 없나" "실체 없는 네거티브"라는 방패로 맞섰다. 기습적인 반격도 감행했다. "애가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애를 데려오면 DNA 검사를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반격은 효과가 있었다. '스스로 저런 얘기까지 하는 걸 보니 자신이 있나보다'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

박 후보는 "최태민 목사가 나쁜 사림이다, 공격을 딱 해놓은 다음에 저에게 연결해서 주변 사람이 나쁜 사람이니까 제가 뭘 잘못한 것으로, 이런 식으로 그동안 저를 공격했다"고 했다. 최태민에 대한 어떤 진언도 박 후보는 '나를 공격한다'고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다수가 어떤 사람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희생정신으로 저를 돕고 있는데 어디서 들은 얘기 하나로 실체도 없이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용인술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문제가 됐다. 그 시작은 최태민 일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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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명박-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영남대 관련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박근혜 예비후보. [중앙포토]

(김명곤 변호사)

- 후보는 이제부터 조금 껄끄러운 질의에 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최태민씨의 비리와 관련된 의혹이 최태민씨의 사망으로 끝나지 않고, 최태민씨의 자녀들과도 인연이 계속되어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지금도 후보는 결코 최태민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태민 목사를 언제 처음 만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해로 기억한다. 그 때 제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어머니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바쁘게 보낼 때인데, 많은 위로 편지가 왔다. 봐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으면 만났는데, 그렇게 만난 몇 분 중에 한 분이다."

- 최태민씨는 이름이 7개, 결혼도 6번, 한 때 성당에서 영세까지 받았다. 최태민씨에 대한 이런 경력을 그 당시 알고 있었나?
"제가 누구를 만나서 일을 할 때, 그 사람이 결혼을 몇 번을 했는지, 자식이 몇인지, 이름을 몇 번 바꿨는지, 알 수 없었다. 과거에 대해서… 당시 그런 내용을 몰랐다."

- 퍼스트레이디로서 주변의 여러 사람을 만날 때 구체적으로 확인을 하지 않고 마구 만났나?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 일생까지 검토해서 만나지 않는다."

- 어느 정도 신상에 대해 파악하지 않았나?
"최근에 이런 얘기가 떠돌고 해서 알고 있는데, 이 일에 대해 유족이 법원에 소송을 걸고 처리하겠다고 해서 법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거기서 확실한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 최태민을 조사했던 정보부 수사관들의 진술에 의하면 최태민씨가 후보의 이름을 팔아 각종 비리를 저질러 소문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청와대를 무단출입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서 조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나?
"조사를 어떤 방식으로 무슨 이유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선 청와대 무단출입은 불가능하다.  각종 비리가 있다는 것은 중앙정보부 부장이 아버지한테 이런 비리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보고를 올려서 그래서 아버지께서 직접 조사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 청와대에 한 달에 몇 번 정도 출입했나?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았다."

- 당시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 정보부장의 청와대 출입까지 통제할 정도로 출입을 아주 까다롭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보부에서는 최태민씨 만큼은 정보부장보다도 더 편하게 청와대에 출입하는 것을 알고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 때 제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많이 했다.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전국에서 일어나는 얘기들, 제보들을 많이 듣게 되는데, 그 때 봐서 아버지께 필요한 것은 전부 건의도 드리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저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견제해야 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 당시 정보부 조사에 의하면 최태민씨의 비리 건수가 40여건이라고 한다. 알고 있었나?
"이 문제를 중정부장이 아버지께 보고해서, 아버지께서 중정부장과 그 관계자들을 다 청와대로 부르고, 또 저도 부르고, 최태민 목사도 다 불러서 직접 조사를 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누가 어디서 얼마를 횡령하고 받고 했다기보다는 좀 막연했다. 어떻게 횡령을 했고, 사기를 쳤느냐고 보고하라고 했는데, 그 답이 별로 그렇게 확실한 것이 없었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로 끝이 났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확실하게 대검에서 조사를 해봐라. 만약에 문제가 있다면 법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그것이 대검에 넘어가서 여러 가지 조사가 이뤄졌을 것인데, 만약 그 때 횡령이라든가, 이권개입이라든가 공천으로 부당한 짓을 했다면 아버지께 그대로 보고가 됐을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때 살았던 상황들이, 모든 정권 하에서 결코 저를 조금이라도 봐주거나, 잘못된 것을 덮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도 의혹은 나오지만 실체가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실체가 있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지금이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런 확실한 증거가 있고,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마땅히 비난을 받아서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모르는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까…."

- 정보부 수사팀에서는 최태민씨를 구속하자고 건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보부장이 최태민씨를 봉사단 총재직에서 사퇴시키고, 후보와 격리시키는 절충안을 만들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최태민의 주장과 정보부의 보고 내용이 워낙 상충돼서 검찰에 전면 재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검찰에서 재조사를 해보니 정보부에서 확인됐던 것보다 더 많은 비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최태민씨가 봉사단 총재직에서 물러나는 선에서 이 문제가 일단락됐다. 그런데도 최태민씨에 대해서 비리협의가 확정 안됐다든지, 불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나?
"아버지는 절대 그런 것을 용서하거나 용납하시거나, 적당히 봐주시거나 이런 분이 아니다. 대검에서 더 엄청난 비리가 나와서 문제가 더 많았다면 당연히 법적 조치를 취해야지, 왜 그것을 덮나? 그것은 검찰이 제대로 직무를 처리하지 않은 것인데, 그렇게 해야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아버지 시대는 그렇다하더라고 그 후에 정권이 바뀌었을 때마다 세무 조사, 국세청 조사, 검찰 조사가 있었다고 들었다. 샅샅이 조사를 했는데, 그 때 누가 저를 봐줄 때가 아니었다. 잘못했다면 그 때 당연히 감옥소에 가던지, 법적 조치를 받아야지요. 왜 그렇게 안 했는가,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 대통령의 따님과 관계됐던 사람의 비리에 대해서 조사를 해서 언론에 공개된다던지, 그 사람을 구속하면 그 여파가 대통령 따님께도 영향을 미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에게까지 파장을 받게 되는데, 그 점이 염려가 됐지 않았겠나?
"그런 문제가 있다면 단호하게 법적 조치를 취하고 형벌을 받을 것은 받고 하는 것이 확실한 해결책이고, 그것이 아버지의 평소 하시던 방법인데, 그렇게 안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 후에 정권은 아버지를 매도하던 시대였는데, 오히려 그런 것이 있으면 더 내세워서 퍼스트레이디 대역했던 사람이 이런 사람에게 속아서, 이런 비리가 있었다고 더 크게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왜 그렇지 않았는가, 오히려 제가 의아하게 생각이 되는 부분이다."

- 최태민씨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은 일이 있나?
"그 분은 저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할 형편도 아니다. 그런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제가 요청한 적도 없다."

- 후보는 최태민씨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최태민씨와 관련된 의혹을 제기하면 '천벌을 받을 짓'이라든지, 실제 이런 취지로 말한 적이 있나?
"최태민 목사가 이런 비리가 있고, 나쁜 사림이다, 공격을 딱 해놓은 다음에 저에게 연결해서 주변 사람이 나쁜 사람이니까 제가 뭘 잘못한 것으로, 이런 식으로 그동안 저를 공격했다.
그런 음해성 네거티브가 많은데, 나중에 어떤 얘기까지 나왔냐면 애가 있다는 등 이런 얘기까지 나왔다. 아무리 네거티브를 해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천벌 받을 일 아니냐,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남을 음해하기 위해서 이런 얘기까지 지어내느냐,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한 것이다.
만약에 애가 누가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그 애를 데리고 와도 좋다. 제가 DNA 검사도 다 해주겠다. 그런데 멀쩡하게 사는 애를 어디에 있다고 해서 만약에 그 애를 지목해서 누가 자손이 아니니, 어쩌니 하면 그 아이와 부모한테는 얼마나 날벼락 같은 얘기인가. 아무리 남을 음해하기 위해서 지어내는 얘기더라도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최태민씨가 지금도 결백하고 모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생각이 달라졌나?
"의혹이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지 않느냐, 저는 그렇게 알고 있다. 현실이 그러니까. 그러나 지금이라도 또 앞으로라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면 그것은 제가 몰랐던 일이니까, 굉장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일이다. 지금까지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다."

-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인가?
"아버지 시대, 또 아버지가 어떤 분인데, 잘못이 있는데 처벌을 안 했겠나. 검찰도 누가 봐달라고 요청한 사람도 없는데 왜 봐주겠는가. 또 역대의 모든 정권에서 불리한 상항에 있었고, 그 때마다 세세한 조사가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일이 있으면 더 크게 불려서라도 형벌을 줬을 것인데,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실체도 없는 일 아니냐고 제가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실체가 없는 것 아닌가, 앞으로는 모르겠다. 제가 모르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요."

(보광 스님)

- 근화봉사단에서 최태민씨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나?
"최태민 목사는 거의 연세가 80이 다 된 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할 입장은 아니었고, 새마음봉사단, 구국봉사단 때 일을 했던 분이라서, 근화봉사단을 결성했던 분들이 서로 알고 있지 않나. 같이 하시자고 해서, 최 목사도 관여가 됐다."

- 언론에서는 고문의 역할이라고 하던데?
"그 봉사단에서는 굳이 고문이니 뭐니 직책이 필요한 단체가 아니다. 연세가 80이나 됐던 분으로 그렇게 예우해서 고문으로 불렀다."

- 후보는 최태민씨에 대해서 굉장히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특히 박 전 대통령도 그에 대해 걱정했다는 것이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의 인터뷰에서 나오고 있다.
"구국기도회를 통해, 선교단을 통해, 구국봉사단을 해오면서 연결선상에서 일을 했고, 여러 의혹은 있지만 실체로 나온 것은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강훈 변호사)

- 재단 운영과 관련 영남투자금융 회장 김정옥씨, 영남투자금융 전무 조순제씨, 영남의료원 관리부원장 손윤호씨, 영남대 사무부처장 곽완석씨, 4명을 다 아나?
"김정옥씨만 안다."

- 조순제씨는 최태민 씨의 전처의 아들이고, 손윤호씨는 조순제씨의 외삼촌이라고 한다. 김지택 전 총장도 검증위원회에 제출한 확인서에서 '이들 4인을 박 후보가 전부 임명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4인을 박 후보가 임명한 것이 아닌가?
"아니다. 저는 손윤호씨가 누구인지 모르고, 조순제씨가 제 비서출신이 아니다. 유족들도 조순제씨를 전혀 모른다고 한다. 이것은 전부 학교장이나 재단 법인에서 이사장 또는 총장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지, 저는 결재하고 임명하고 하는 선상에 있지 않았다.”

-1988년 2월경 후보가 영남대 교수협의회 의장단과 총재를 면담한 것으로 안다. 그 때 교수협의회 의장단이 '재단에서 임명한 이들 4인의 학교 운영에 끼치는 폐해와 부당월권 행위가 있다, 퇴진을 시켜 달라'는 내용이 평의회 의사록에 있다. 후보께서는 '부당한 월권 행위의 구체적인 예를 말해 달라, 확신이 없는 한 풍문만 갖고 인사조치를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답변했다는데, 기억나나? 
"학교 일은 총장이, 이사회 일은 이사장이 하는 일이지, 제가 결재 라인에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를 임명하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 대통령 되신 후 인사관리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묻는다. 다수가 주변의 어떤 인물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조치 할 것인가?
"본인에게 확인도 하고, 주변에도 물어보고,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이런 문제점이 있는 사람이구나'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많은데, 다 희생정신으로 봉사도 하고 돕고 있는데, 어디서 들은 얘기 하나로 '나쁜 사람이다' 하고 인사조치를 해버리면 어떻게 저를 믿고 많은 분들이 일할 수 있겠나. 실체도 없는데, 함부로 판단을 해버리면 큰 희생을 많은 사람들이 치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겁이 나서 일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인명진 목사)

-박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냈던 선우련씨가 비망록에서 '박 대통령이 최씨를 거세하고 구국봉사단 해체를 지시했다'고 적었다.
"비서관이라도 사실에 입각한 증언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헌 변호사)

-박 후보가 이후 육영재단 이사장을 퇴임한 이유와 관련해 최씨와 딸 최순실이 박 후보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전횡을 일삼아 직원들이 반발한 게 원인이라는 말도 있다.
"어머니 기념사업을 육영재단에서 같이 했고, 당시 최 목사가 기념사업일을 도왔다. 오해가 있어서 '최태민 물러가라'는 식으로 데모가 있었지만 최순실 씨나 최태민 목사나 이런 분이 결코 육영재단 일에 관여한 적이 없다."

-최태민씨 문제로 이사장을 그만두고 동생 근영 씨가 이사장에 취임하지 않았나?
"소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생에게 물려준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최씨가 육영재단 고문의 직함을 갖고 이사장인 박 후보에게 결재를 받기 전에 먼저 결재를 받을 정도로 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제가 무능하다거나 일을 잘 못한다고 폄하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최 목사가 고문직을 직접 한 것이 없고, 최 목사가 연로해 고문으로 예우해서 부른 것뿐이다."

-최태민씨의 자녀들이 강남에 수백 억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데 육영재단과 관련해 취득한 재산이 아닌가? 
"천부당 만부당하다. 말이 안 된다. 육영재단은 개인사업체가 아니라 공익재단이다. 매년 감사를 받고 감독청의 감사를 받는다. 단 한 푼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정옥임 선문대 교수)
-최씨에 대해 국민이 혼란스럽게 생각할 것 같다.
"실체가 없는 일에 대해 똑같은 얘기를 열 번 하면 실체가 있는 것으로 되나."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
-2016년, 최순실 PC에서 대통령 연설문 파일이 발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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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유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중앙포토]

2016.10.25 대통령 대국민사과
"최순실씨는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 등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최태민 일가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것은 지난달 25일. JTBC가 최순실 씨 태블릿PC에 담긴 대통령 연설문 파일을 보도한 다음날이다.

30년 간 '실체가 없다'고 말해 온 대통령 뒤 최태민 일가의 이름이 대통령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사람"이라는 최씨 일가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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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최순실-장시호에 이르는 3대의 전횡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이었다.  '박근혜에게 최태민은 누구인가' 질문을 대통령 앞에 다시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3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도 필요하면 검찰 수사를 받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대통령이 '최태민은 누구인가' 검찰 앞에서 답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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