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달리 연해주 발굴 자유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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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유적 발굴의 길이 막혀 있는 중국과 달리 이번에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지역에서 자유롭게 발해 유적을 발굴할 수 있었다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지난 2일부터 러시아 연해주 소재 체르냐치노 5 고분군 발굴조사에 참여하고 30일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온 한국전통문화학교 정석배(38.문화유적학과.사진)교수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이번 현지 발굴 참여는 지난 6월 전통문화학교가 러시아 극동국립기술대학과 맺은 공동 발굴조사에 관한 협약에 따른 것. 국내 발굴단의 발해유적 조사는 예전 성터와 절터 등만을 대상으로 한 부분 참여에 그쳤으나 연해주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고분 발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해 고분군의 위치는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도시 우수리스크에서 북서 방향으로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로 중국 국경과 인접한 지역이다. 정교수는 "과거 발해의 솔빈부가 있던 곳으로 라즈돌냐야 강변 10만~12만평 면적에 거대 고분군을 이루고 있었다. 수백 개 규모로 추정되는데 이번 발굴에서 석실분 1기와 토광묘 3기 조사를 완료했다" 고 말했다.

토광묘에서는 발해의 토기.화살촉.사람뼈.철제 칼 등이 나왔고, 석실분에서는 토기편 몇 개만 출토됐다. 석실분은 횡혈식이라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이는 땅을 파지 않고 평지 지표 상에 돌을 쌓아(적석) 여러 조각의 개석을 덮은 것을 말한다. 장례는 다른 데서 화장 등으로 치르고 인골을 넣고 무덤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석실의 크기는 길이 4.6m, 폭 3.4m, 무덤의 깊이(높이)는 70~80cm, 돌은 6단으로 쌓았다.

러시아가 최근 4년간 발굴한 결과와 비교할 때 고분 안에서 발견된 유물은 발해의 것이 확실하다.

정교수는 "고분의 형태가 중국 둥닝(東寧)의 대성자 발해고분의 고분 형태와 비슷하다"고 전제, "이는 바로 발해 고분임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둥닝 유적과는 40km 거리에 있는 이 무덤의 주인을 가리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다만 이 인근이 고분.주거유적.산성으로 구성돼 있음을 감안할 때 8~10세기 광활한 발해의 세력권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교수를 비롯한 이번 발굴팀은 석실분의 명칭을 46호로 명명했다. 46호에 인근한 토광묘(49호)는 10cm 깊이의 토광 네 귀퉁이에 길이 1.2m, 폭 30cm 크기의 돌을 하나씩 박아놓은 모습이 기존 발해고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라는 평이다.

일부 고분은 시간이 부족해 발굴 도중 덮었다. 하지만 전통문화학교는 러시아 측과 내년까지 추가적인 공동 조사를 합의한 상태여서 기대를 모으게 한다.

정교수는 청동기 말 초기 철기가 전공으로 1994년 러시아 카프이토 유적 답사, 95년 마리아노브카 유적 발굴을 통해 발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이번 발굴에 주체로 나서게 돼 뿌듯하다. 발해 유적은 조사할 수 있을 때 조사해야 한다"면서 "러시아도 언젠가 그 길을 막을 것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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