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브로커가 행세하는 풍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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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거의 해마다 계속되는 「법조 주변 부조리 사범」단속에서 이번에도 1백49명이 적발돼 95명이나 구속됐다.
이들이 저지른 부조리 유형도 예외 없이 예년과 비슷했다. 구속된 면면들도 변호사와 법률사무소의 사무장 아니면 사건 브로커들이고 유일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법망에 걸려든 사범들의 수가 대규모라는 점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법조 부조리 사범들의 수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법률상식의 무지로 애를 태우는 서민들의 피해가 심해지는 것은 적이 안타까운 노릇이다.
검찰이 분석한 부조리 유형을 보면 변호사의 명의 대여행위를 비롯, 광산촌이나 법원 등을 맴돌면서 사건을 물어오는 브로커와의 결탁과 승소 또는 석방을 미끼로 한 사건 브로커 등의 횡행이다.
엄청난 돈을 받고 무자격자에게 변호사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나 일정한 댓가를 주고 분쟁지역에서 사건을 가져오게 하는 행위는 모두가 파렴치한 소행이다. 변호사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이 지경이 된데는 배금주의의 사회풍조나 변호사 수입의 영세성 탓도 없지 않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직업윤리가 얇다는 것이 주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서울 변호사회가 지난2월 소속회원들에게 실시했던 자체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변호사의 기능과 사명이 인권의 옹호와 사회 정의의 실현인데 그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변호사들이 16%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돈만 아는 직업」이라고 대체로 수긍한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이는 우리주변의 변호사들이 자기직업에 대해 얼마나 회의적이고 도덕적·윤리적 직업의식이 결여되어 있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의 법의식도 정상이 아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법률 전문가를 찾아가 조언을 받고 자기 권리를 정정당당하게 주장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승소 또는 석방을 변호사 대신에 사건 브로커에게 의뢰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경향 때문이다.
자기주변에 법적 문제가 생기면 우선 고위층이나 권력층에 하소연하는 등 법 이전의 힘에 의지하려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풍조는 변호사를 찾아 정상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오히려 돈도 적게 들고 손쉽게 해결되는 「신통련」을 발휘하는 측면이 있어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는 바꿔 말해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에 대한 일반의 신뢰도가 그만큼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법과 법을 다루는 기관이 국민의 권익을 철저히 옹호해주고 법익을 제대로 정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변칙적인 방법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 변호사 사무실 등의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법의 대중화와 생활화가 안되고 있는 실정에서는 법조 부조리는 근절되기 어렵다.
법조 부조리는 이처럼 여러 요인이 복합해서 생기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하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뿌리째 뽑혀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당국의 법조 부조리 척결도 사후적 단속이나 처단기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 사전적, 예방적 대응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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