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 편" 일본 가서 시진핑 뒤통수 친 두테르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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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 중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경제·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올해는 양국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 대해 “우리는 일본과 같은 상황에 있다. 법 지배에 따라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고 항상 일본 편에 설 생각”이라고 화답했다. 회담이 끝난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필리핀의 해상경비 능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이 대형순시선 2척을 제공하고 ▶낙후 지역의 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엔 차관을 공여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일본의 파격적인 환대는 영유권 분쟁 중인 중국을 견제하려면 필리핀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중국은 위대한 국가이며 양국의 오랜 우의는 흔들릴 수 없다”고 말했다. 교민 간담회에서는 “미국과 작별을 말할 시간” “군사·경제적으로 미국과 분리해야 한다”는 대미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미국의 최대 우방국가인 일본으로선 필리핀이 친중·반미 노선을 굳히는 상황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을 찾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은 예상을 깨는 것들이었다.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선 “(중국과의 관계는) 경제적인 것이지 군사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일본·필리핀 우호의원연맹 소속인 자민당의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중의원 의원과 만난 자리에선 “중국이 커지면 미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 고 말했다.

그러나 반미 강경 발언만큼은 이어갔다. 25일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필리핀을 목줄 맨 개처럼 다루고 있다. 정말 어리석다”고 비난하며, “우리나라에서 필리핀 군인 아닌 다른 나라 군인은 보고싶지 않다. 내가 대통령직을 오래 유지한다면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은 잊어버려야 할 것”이라고 미국을 협박했다.

2014년 미국과 필리핀이 체결한 EDCA로 미군은 필리핀 군사기지에서 훈련하고 미군 배치지역에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26일 도쿄에서 열린 ‘필리핀경제포럼’에서도 두테르테 대통령은 “외국군이 필리핀에서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철군 시점은 2년 이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여기서 외국군은 미군을 의미한다. 같은 날 재일 필리핀 교민을 만난 자리에선 “미국은 정말 깡패”라고 비난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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