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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밀레니얼 세대에 다가간 샴페인 술병마다 음악을 넣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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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년 노후 브랜드 크루그의 ‘혁신 해결사’ 매기 헨리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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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의 최고경영자 매기 헨리케즈. 28세, 32세의 두 아들을 둔 60세의 나이지만 스키·테니스·사이클링·승마를 즐기는 열정과 에너지의 소유자다.

1843년 조셉 크루그가 창립한 크루그는 ‘샴페인계의 롤스로이스’로 불린다. 전 세계 샴페인 시장에서 차지하는 양은 0.01%에 불과하지만 ‘프레스티지 퀴베’(최상급)샴페인만 생산하는 데다 독자적인 맛과 노하우 덕분이다. 선박왕 오나시스도 “파티에선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돔 페리뇽을 마시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집에서 크루그를 마신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늘 이런 대접을 받았던 건 아니다. 2008년엔 판매량이 전년 대비 34%나 줄었다. 이때 구원 투수로 등장한 사람이 현 최고경영자(CEO) 매기 헨리케즈(60)다. 6대손인 올리비에 크루그가 여전히 샴페인 메이킹을 이끌고 있지만, 경영권은 1999년 모엣 헤네시(MH)에 인수합병된지 오래. 말하자면 헨리케즈는 MH에서 크루그로 급파한 해결사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그는 35년 간의 커리어 중 26년을 와인과 증류주 분야에서 일했다. 아르헨티나 MH에서 일한 8년 간 남미 와인 비즈니스를 성장시킨 공을 인정받아 2009년 크루그 하우스 대표 및 최고 경영자로 취임했다. 그 후 7년, 그는 173세 된 노후 브랜드를 밀레니얼 세대에 맞는 혁신적이고 젊은 브랜드로 바꿔놓았다.

-올드한 브랜드를 변화시키기 위해 처음 한 일은 무엇인가.
“취임 첫 해는 럭셔리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 헤리티지를 공부하며 보냈다. 매출은 점점 더 떨어졌고, 그 해 임원 평가에서 D를 받았다. 평생 최악의 점수라 절대 잊을 수가 없다. 하하.”

크루그는 2010년 성장세로 돌아서 2009~2015년 연 평균 성장률 11%를 기록하고 있다.

-취임 첫 1년 동안 브랜드를 공부한 후 찾아낸 결론은 뭔가.
“오래된 브랜드인데도 소비자들이 존재 자체를 잘 모르더라. 너무 오랫동안 왕실이나 유명 인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닫힌’ 브랜드가 된 탓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오만이다. 좀 더 많은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모던하게 바꿀 전략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전략을 세웠나.
“샴페인 자체를 개혁할 수는 없으니 소비자들이 샴페인을 ‘즐기는 방법’을 개혁해보자고 생각했다.”

그 방법으로 샴페인마다 어울리는 스토리텔링이나 음악·음식을 매치하는 ID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창립자 조셉 크루그의 꿈은 ‘매년 달라지는 기후와 상관없이 해마다 최상의 샴페인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년 10여 가지 빈티지 와인과 그 해 포도로 만든 120여 가지 베이스 와인을 블렌딩한 다음 6년 이상 숙성시켜 논빈티지 샴페인 ‘그랑 퀴베’(‘프레스티지 퀴베’와 같은 의미)를 만들어왔다. 헨리케즈는 이 특별한 그랑 퀴베 스토리를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병마다 각각의 ID를 부여했다. 6자리 숫자로 구성된 ID를 크루그 모바일 앱이나 웹사이트에 입력하면 샴페인의 숙성 기간, 블렌딩 된 베이스 와인의 수, 사용된 리저브 와인(오래 숙성된 고급 와인)의 최고&최신 연도, 어울리는 음식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이 샴페인을 마시면서 듣기딱 좋은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샴페인과 어울리는 뮤직 페어링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 지 궁금하다.
“샴페인은 소리와 밀접한 술이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기포 때문이다. ‘소리로 즐기는 샴페인’이라는 데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2013년부터 매년 새로운 샴페인이 만들어지면 유명 음악가 1명을 초빙해 그 샴페인과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하게 했다. 지난해부터는 ‘샴페인과 어울리는 재료’라는 주제로 ‘쿡북(cook book)’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지난해엔 감자, 올해는 달걀이 주제다. 전 세계 크루그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셰프들로 하여금 개성 있는 레시피를 만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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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는 매년 하나의 식재료를 선정, 세계적인 셰프들과 협업해 특별한 페어링 메뉴를 만들고 `쿡 북(cook book)’을 발간한다. 올해의 식재료는 달걀이다.

-브랜드 홍보대사로 왜 셀럽이 아니라 셰프를 선택했나.
“유명인들 사이에선 이미 ‘크루기스트’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소비자와 더 밀접하게 만나는 셰프가 홍보대사로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크루기스트(Krugists)? 어떤 사람들인가.
“크루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오른 단어다. 작가 헤밍웨이, 오페라 디바 마리아 칼라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과 조르지오 아르마니,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과 케이트 모스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몰래 반입할 만큼 크루그 매니어였다.”

-앱·음악·음식…. 모두 요즘 젊은 층의 취향이다.
“크루그만의 샴페인 스토리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선 밀레니얼들에게 친숙한 트렌드와 방법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럭셔리 브랜드는 무엇을 생산하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우선이다. 젊은 층은 정보에 민감하고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 그들을 겨냥하려면 호기심을 이용해 브랜드의 장인정신을 전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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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 뒷면의 ID 숫자를 앱에 입력하면 음악·음식 페어링 등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샴페인을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일단 집에 있는 플루트(flute·목이 긴 샴페인 잔)를 모두 버려라. 입구가 좁은 잔으로는 좋은 샴페인이 가진 미묘한 향을 충분히 감상할 수 없다. 마치 콘서트장에서 이어폰을 끼고 감상하는 꼴이다. 그리고 너무 차게 마시지 마라.역시 향기가 잘 퍼지지 않는다.”

-샴페인의 아름다움은 긴 잔을 따라 끊임없이 올라오는 기포인데, 그걸 포기하라는 건가.
“비싼(좋은) 샴페인일수록 기포가 적다. 대신 질감이 섬세해서 목 뒤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훨씬 좋다. 샴페인의 시각적 효과보다 향과 입안의 경험에 더 집중해보길 바란다.”

-첫 방한이라고 들었다. 혹시 한식을 접해봤는지.
“한국은 모든 게 정돈되고 현대적이더라. 어제 저녁 샴페인을 곁들여 한식을 먹었는데 아주 잘 어울렸다. 궁합이 잘 맞는다. 덕분에 어젯밤 너무 많이 먹었다. 하하.”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크루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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