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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외침 LOUD] 비어 있어도 앉지 마세요…임산부 배려석에 분홍 방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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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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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관련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사진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9호선 곰돌이 인형’을 아십니까.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곰돌이 인형이 ‘임산부 배려석입니다. 저를 안고 앉으시고 내리실 때는 제자리에…’라는 문구를 들고 있는 사진입니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이 10월 10일 임산부의 날을 맞아 진행한 캠페인의 일환입니다.

지하철 9호선 시민들 뜨거운 반응
“배려석 존재·가치 확실하게 느껴”
출근 시간에도 앉는 사람 없어
“임산부 배려는 최고의 출산 장려책”

이 곰돌이 인형은 지난 4월 LOUD가 제안한 ‘핑크카펫, 테디베어 프로젝트’에서 비롯됐습니다. 최근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를 비롯, 각 지역의 지하철 운영주체는 좌석 54개짜리 열차 한 칸에 두 자리 정도를 임산부 배려석으로 지정했습니다. 다른 노약자석처럼 임산부 배려석도 임산부를 위해 비워두길 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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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LOUD가 준비한 분홍 방석을 올려뒀다. 시민들은 붐비는 출근 시간에도 자리에 앉지 않고 비워뒀다.

하지만 임산부 배려석에 스티커를 붙이고, 바닥에 분홍색 표시까지 해도 그냥 앉는 승객들이 꽤 많습니다. 많은 이가 선호하는 가장자리 자리이다 보니 옆 좌석을 비워두고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출퇴근 시간 등 차량이 혼잡할 때는 빈자리를 그냥 두는 것이 어렵겠죠. 이럴 때는 잠깐 앉아 있더라도 임산부가 오면 자리를 비켜주면 되지만 그런 경우가 흔하진 않습니다.

석 달 전 출산한 최현정(36)씨의 말을 들어 보시죠.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있어도 자리를 차지한 승객이 스마트폰에 집중하거나 이어폰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은 ‘임산부라 어지럽고 힘들다’고 직접 얘기하라는데 자발적으로 양보해주면 모를까 일부러 비켜달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힘들어도 참고 서 있던 적이 많았지요.” 임신 19주째인 김호정(33)씨는 “임산부라고 써 있는 배지를 가방에 달고 서 있어도 양보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배지를 못 알아보는 건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특히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초기 임신부의 경우 육체적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지만 임신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아 자리를 양보받지 못합니다.

작은 외침 LOUD는 임산부 배려석 두 번째 프로젝트로 ‘임산부를 위한 분홍 방석’을 제안합니다. 임산부 배려석에 푹신한 방석을 올려놓는 겁니다. 자리를 차지한 승객이 ‘내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다’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거죠. 일반 승객이 임산부를 위한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변을 의식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자리를 양보할 것이라는 취지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입니다.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LOUD팀은 지난 7일 오전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 차량 내 임산부 배려석에 분홍 방석을 올려뒀습니다. 시중에서 5000원에 판매하는 분홍색 도넛형 방석에 ‘임산부 방석’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고교생 이수민(18)씨는 “예전 같으면 그냥 앉던 자리였는데 방석을 보고 임산부가 앉아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앉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주현(27)씨도 “임산부 배려석이 있어도 별다른 인식을 못했는데 방석 하나로 배려석의 존재와 가치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임산부 손소연(28)씨는 “간만에 배려석이 비어 있는 모습을 봤다”며 “방석까지 깔려 있으니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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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보건복지협회가 8월 24일부터 9월 8일까지 2531명의 임산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라서 배려받은 적이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59.1%에 그칩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은 1.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입니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최고의 출산 장려책입니다.

으레 비워두는 자리, 잠깐 앉아 있더라도 금방 양보할 수 있는 자리. 임산부 배려석을 이런 자리로 남겨두면 어떨까요. 세상에 나올 미래의 주인공을 위해 양보해 주세요. 그 주인공을 위해 힘겨운 열 달을 보내는 임산부들을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상 속 작은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보내 주세요

e메일(loud@joongang.co.kr), 페이스북(facebook.com/loudproject2015)으로 보내 주시면 개선책을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중앙일보(joongang.co.kr), 중앙SUNDAY(sunday.joongang.co.kr)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그동안 진행한 LOUD 프로젝트를 볼 수 있습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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