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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⑫170년 전 모습 그대로…호텔에서 즐기는 시간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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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대왕 두웨성이 살았던 저택도 호텔로 개조됐다.

상하이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중 하나는 조계 시대에 지어진 호텔에 묵는 것이다. 와이탄과 옛 프랑스 조계에는 1850년대~1940년대에 지어진 유럽식 건물이 많은데, 이중 일부는 매력적인 호텔로 탈바꿈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외관도 그렇지만, 켜켜이 묻혀있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롭다. 찰리 채플린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묵었던 호텔, 상하이의 악명 높은 마피아 두웨성(杜月笙)이 살던 집을 개조한 호텔, 재즈 음악과 얽힌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호텔, 중국 최초로 전기를 사용한 150년 역사의 호텔 등 저마다 고유한 역사를 갖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호텔로 손꼽을 수 있는 곳은 페어몬트 피스 호텔(Fairmont Peace Hotel)이다. 톡톡 튀는 초록색 고깔 지붕으로 유명하다. 밤이면 야간 조명이 화려해 마치 와이탄 북쪽을 가리키는 등대처럼 보인다. 호텔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29년으로, 당시에는 캐세이호텔(Cathay Hotel)이었다. 외국인 친구가 많았던 유대인 사장은 9개 나라의 특색을 담은 테마 스위트룸을 만들었는데, 다수의 유명 인사가 이곳을 거쳐갔다. 대표적인 사람이 찰리 채플린이다.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즈’를 연출한 채플린은 영화 주인공이자 여자친구였던 파울레트 고다드와 인도룸에 머물렀다. 9개의 스위트룸은 지금도 원형 그대로 보존돼 VIP 고객이 묵는다. 닉슨 대통령은 1972년에 중국 비밀 방문 당시 미국룸에 머물기도 했다.

페어몬트피스 호텔은 등대처럼 와이탄의 표지 역할을 한다. 초록색 고깔 지붕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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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는 1930년대 상하이 문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도 많다. 차를 마시며 왈츠를 출 수 있는 자스민 라운지 카페, 매일 밤 평균 연령 76세의 세계 최고령 밴드가 공연하는 더 재즈 바가 있다. 호텔에서 묵지 않더라도 1930년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티댄스와 재즈 공연을 보러가는 것도 좋겠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인 아스터하우스 호텔. 1846년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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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터하우스 호텔(Astor House Hotel)은 1846년 문을 연, 중국 최고령 호텔이다.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석유 가스, 수도꼭지, 24시간 온수 시스템 그리고 전기를 이용해 전통 여관에서 서구식 호텔로 일대 숙박 혁명을 이룬 곳이다. 1882년 7월26일 저녁에는 변발을 한 중국인과 중절모를 쓴 서양인이 모여 호텔 현관문에 중국에서 최초로 전깃불이 개통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중국 최초의 서양식 서커스, 야외 영화 상영도 이곳에 처음 상륙했다.

아스터하우스의 3층과 4층 사이에 미니 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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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내부는 아무나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건물 한쪽이 안뜰처럼 뚫려있는 게 보인다. 이곳이 아스터하우스의 미니 박물관이다. 빛이 들어오는 가운데 공간에는 오래된 골동품을 전시했고, 객실 문 옆에는 특별한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1922년 아인슈타인이 묵은 방’, ‘1920년 버트런드 러셀이 묵은 방’, ‘1931년 스콧 조플린이 묵은 방’이다. 과학·철학·음악 분야의 거장들을 상하이의 낡은 호텔에서 만날 줄이야. 왠지 방문 너머엔 100년 전 시간이 그대로 멈춰있을 듯한 망상이 들었다. 닫힌 문 너머로 스콧 조플린의 경쾌한 ‘스팅(Sting)’ 연주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1940년대를 풍미한 상하이의 재즈싱어 ‘야오리’는 양쯔 호텔 댄스홀에서 4년간 공연했다. 객실 선물로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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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몬트 피스 호텔과 아스터하우스 호텔이 외국인을 위한 초호화 호텔이었다면, 중국 자본으로 설립된 양쯔 호텔은 상하이 시민이 애용하는 사교장이었다. 양쯔 호텔에는 상하이에서 제일 가는 댄스홀이 있어 영화배우, 예술가, 장사꾼이 모두 모여들었다. 3층 규모의 거대한 댄스홀에는 늘 200명 가까운 사람이 꽉 들어찼고, 이들은 북새통 속에서 매일 밤 신나게 스윙 춤을 췄다. 음악은 라이브였는데, 대체로 빅밴드 연주자는 외국인, 가수는 중국인이었다. 그때 그 시절 양쯔 댄스홀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던 노래는 ‘메이구이 메이구이 워아이니’라는 곡이었다. 이 노래는 몇 년 뒤 미국에서 크게 히트를 치게 된다. 재즈싱어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걸쭉한 목소리로 번안해 부른 ‘Rose, Rose I love you’의 원곡이 바로 이 노래다.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중국 최초의 아이돌 가수라는 야오리(姚莉)는 양쯔 댄스홀에서 4년동안 ‘메이구이’를 불러 스타가 됐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이 호텔 주인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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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양쯔부티크 호텔 로비.

1934년에 세워진 양쯔 호텔은 지금도 건재하다. 현재 명칭은 양쯔 부티크 호텔(The Yangtze Boutique Shanghai)로 시내 중심인 인민광장 앞에 있다. 호텔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노력도 돋보인다. 호텔 객실에선 자동으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번안곡을 틀어주고, 호텔 로비를 장식한 싱싱한 장미꽃은 로맨틱한 기운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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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션호텔 로비에는 두웨성의 사진과 골동품이 전시돼있다.

앞서 소개한 호텔들은 모두 역사가 오래됐지만,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시설이 깔끔하다. 이 밖에도 상하이에는 두웨성이 살았던 맨션 호텔(Mansion Hotel), 독일인이 딸의 꿈에 나온 성을 본떠 만들었다는 몰러빌라 호텔(Moller Villa Hotel) 등 유서 깊은 호텔이 많다. 페어몬트피스 호텔과 몰러빌라 호텔을 제외하면 가격은 하룻밤 15만~20만원 선이다.

※ 두웨성은 조계시대 상하이의 암흑가를 지배한 마피아다. 그는 아편대왕이라는 별명처럼 아편을 밀매해 막대한 돈을 벌었고, 장제스(蔣介石)를 후원해 육해공군 총사령부 참의까지 올랐다. 그의 범죄조직 청방은 세계 3대 범죄 조직인 삼합회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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