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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사물인터넷 시대 ‘보물’ 만들기…손정의, 113조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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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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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59)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함께 최대 1000억 달러(약 113조200억원) 규모의 투자 펀드를 만들겠다는 승부수를 던지면서 그의 승부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60세 은퇴 계획’ 취소와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인수에 이은 행보다. 일본의 초고속인터넷 시장 개척, 미·일 이동통신사 인수, 야후·알리바바 초기 투자 등 글로벌 IT 산업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손 회장이다. 그의 ‘100조원 연합군’이 찾아갈 시장은 어디일까. 한국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있을까.

‘IoT 두뇌’ 만드는 ARM 인수 뒤
오일머니와 ‘비전 펀드’ 합작
시장 판도 바꾸는 M&A 노릴 듯

펀드 이름은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 말 그대로 손 회장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에 투자한다. 소프트뱅크가 250억 달러(28조3000억원)를, 사우디 국부펀드를 비롯한 중동 및 글로벌 유수 투자자들이 450억 달러(50조9400억원) 등을 출자해 5년간 투자하는 사모펀드(PE)다. ‘탈석유’를 위해 경제구조를 개혁 중인 사우디는 손 회장의 경험과 비전에 펀드의 전권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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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꿈’ ARM 인수로 탄력=손 회장은 지난 6월 자신의 60세 은퇴계획을 번복하고 나온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역량을 넘어서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특이점)가 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에 대비해 사물인터넷(IoT)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며 “앞으로 10년은 더 일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나온 게 35조원 규모의 ARM 인수다. 손 회장은 지난달 일본 닛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스티브잡스가 구상하는 휴대폰의 CPU는 인텔이 아닌 ARM으로 가능하단 걸 알고 난 지난 10년 간 줄곧 ARM 인수를 꿈꿨다”고 말했다.

‘ARM 인수’로 100조원대 펀드의 투자 계획도 가능해졌다. IoT 시대에 스마트폰이나 PC에만 들어가던 반도체가 거의 모든 사물에 탑재되는 만큼 ARM을 통해 산업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36년간 통신·인터넷 산업에서 성장해온 소프트뱅크도 사업 범위를 전방위로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손 회장의 투자 지역이나 산업에 대한 경계도 사라졌다. 소프트뱅크 관계자는 “2040년쯤엔 1인당 1000개 정도의 기기와 연결된다”며 “ARM은 손 회장의 비전을 실현할 마지막 퍼즐이자 새로운 엔진”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10년’ 통합 M&A 주도할 듯=60세에 은퇴하고 골프를 치겠다던 손 회장은 현재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소프트뱅크 그룹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 18년간 알리바바·야후·슈퍼셀·겅호 등에 투자해 거둔 성과(내부수익률 44%)로 산업 흐름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다. 실패한 M&A라는 평가를 받던 미국 통신사 스프린트도 실적을 회복하며 손 회장의 자신감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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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비전 펀드를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대형 인수합병(M&A)에 풀 가능성이 높다. 특정 기업을 사들이는 M&A를 넘어, 특정 산업군이나 플랫폼을 두고 경쟁하는 업계 1, 2위의 통합을 유도하는 M&A도 가능하다. 손 회장 스스로 롤 모델을 일본 무사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로 꼽을 만큼 그는 ‘통합’이란 키워드에 관심이 많다. 료마는 일본 에도시대에 대립하던 여러 번(藩)을 통합해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놨다. 가령, 현재 뚜렷한 기술 표준이 없는 IoT 분야에서 M&A 펀드의 위력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손 회장은 최근 “나는 플랫폼이라는 콘셉트에 폭 빠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바일 운영체제(OS)가 안드로이드나 애플 iOS로 정리된 후 거대한 앱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처럼 IoT에서도 플랫폼의 중요성은 커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포진한 반도체 산업의 혁신도 그의 관심이 높은 분야다. 반도체와 클라우드·이동통신 등 업종을 아우르는 거대 M&A도 가능하다. 최근 10년간 치킨게임 후 패자 걸러내기용 M&A가 이뤄졌지만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은 오히려 축소됐다는게 그의 생각이라고 한다.

소프트뱅크 관계자는 “손 회장은 ARM과 100조원대 펀드 등을 통해 30년 후 미래 시장에 씨를 뿌리고 있다”며 “개별 기업에 대한 투자보다도 글로벌 IT 산업의 큰 패러다임 변화를 염두에 둔 투자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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