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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北인권결의안 기권 논란에 "박 정부, 노무현 정부에 배울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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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 시절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기권에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깊숙이 개입했다며 비판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문 전 대표는 15일 "노무현 대통령은 양측(외교부와 통일부)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다수의 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기권 논란은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펴낸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2007년 11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뇌부 회의에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견해를 문재인 당시 실장이 수용했으며,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의 뜻을 존중해 기권했다"고 적으면서 촉발됐다.

문 전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10.4 정상선언이 있었고 후속 남북 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격론이 벌어졌다"며 "외교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찬성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통일부는 당연히 기권하자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대부분 통일부의 의견을 지지했다. 심지어 국정원까지도 통일부와 같은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인권 문제 등 대북정책과 관련해 외교부와 통일부는 주로 대립해왔다.

반대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이 있던 2006년에는 외교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했다는 게 문 전 대표의 설명이다.

문 전 대표는 이어 "정부, 특히 청와대의 의사결정과정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정할때뿐 아니라 대북송금특검, 이라크 파병,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등 주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매번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고 문 전 대표는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나 토론을 모두 경청한 후 최종 결단을 내렸다"며 " 그리고 마지막 결정할 때 반대하는 참모들에게 결정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모두가 승복하여 대외적으로 하나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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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문 전 대표의 페이스북 전문.

<노무현 정부에게서 배워라>

송민순 전 장관의 책을 보면서 새삼 생각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참으로 건강한 정부였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대북송금특검, 이라크파병,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등 중요한 외교안보사안이 있을 때 항상 내부에서 찬반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사안의 성격상 필요하면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후엔 시민사회수석실), 국민참여수석실 등 비외교안보 부서까지 토론에 참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나 토론을 모두 경청한 후 최종 결단을 내렸다.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는 법이 없었다. 시스템을 무시하고 사적인 채널에서 결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할 때 반대하는 참모들에게 결정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모두가 승복하여 대외적으로 하나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다. 나도 여러 사안에서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결정된 후에는 그에 따랐다.

치열한 토론이 있었기에 단순한 찬반 결정을 넘어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라크 파병의 경우, 내부의 치열한 반대가 있었기에 결국 파병하면서도 규모를 최소화하면서 전원 비전투원으로, 그리고 비전투지역에서 전후 재건복구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국익을 최대한 반영한 파병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라크 파병동안 단 1명의 장병도 희생시키지 않고 전원 무사귀환 할 수 있었고,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게 됐다. 미국도 당초의 요구나 기대와 많이 달라졌는데도, 내부의 반대가 강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 결정을 양해했고 감사를 전해왔다.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부터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추진되고 2006년부터는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추진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그 결의안에 불참 또는 기권했고, 2006년에는 찬성, 2007년에는 다시 기권했다.

2003년부터 2005년 동안에도 외교부는 늘 찬성하자는 입장이었던데 비해, 통일부는 기권하자는 의견이었다. 외교부와 통일부는 대북정책에 관해 의견이 다를 때가 많았는데, 한미동맹과 대미외교를 중시하는 외교부와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통일부의 입장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 기간 동안에는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상황이 고려되어 큰 격론 없이 통일부의 의견대로 결론이 났다.

격론이 시작된 것은 2006년이었는데, 그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외교부는 강력하게 결의안 찬성을 주장했고, 통일부는 여전히 기권을 고수할 것을 주장했다. 당시 여당도 기권의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찬성을 결정했다.

2007년에 또다시 격론이 되풀이 됐는데, 그 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10.4 정상선언이 있었고 후속 남북 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찬성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통일부는 당연히 기권하자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대부분 통일부의 의견을 지지했다. 심지어 국정원까지도 통일부와 같은 입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다수의 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했다.
정부, 특히 청와대의 의사결정과정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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