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발 묶고 눈·귀 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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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홍성호 특파원】『프랑스 인들은 21일 암흑의 하루를 보냈다.』
6백만 명이 총파업을 벌여 국민들의 발이 묶이고 귀와 눈마저 가려진 것을 파리의 르피가로 지는 이렇게 표현했다.
「시라크」 정부 출범 후 최대 규모인 이번 파업으로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 교통 수단 종사자들이 일제히 일손을 놓는 바람에 가뜩이나 혼잡한 파리 시내는 곳곳에서 승용차들이 뒤엉켜 2∼3시간씩 체증을 빚었고 가뭄에 콩 나듯 운행된 지하철과 버스를 얻어 타려고 기다리던 시민들은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할 만원 차량 속에서 출·퇴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또 우편배달부가 오지 않아 신문 한 장 받아 보지 못했고 3개의 국영TV·라디오방송마저 일제히 침묵을 지켜 시민들의 귀와 눈까지 멀게 했다. TV방송들은 이날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방송시작 전의 조정용 화면만 내보낸 채 24시간 파업에 동참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출근을 하지 않아 학생들은 등교조차 하지 못한 채 집에서 무료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밖에 해운·전화·전기·가스등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서비스분야도 완전히 마비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이번 파업은 지난4월 취임한「사라크」수상이 내세운 임금정책과 고용대책에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경고 성격을 띤 파업으로 풀이되고 있다.
파리시내 4개소에서 대대적 시위를 벌이기로 한 파업 근로자들은『83년이래 근로자 평균임금의 구매력은 6∼7%나 떨어졌다』면서『정부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를 해고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고 반박했다.
경고성격을 띤 파업만으로도 몸살을 앓을 만큼 심각한 타격을 받은 일반 시민들은 정부와 노조간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70년대처럼 또다시 브뤼셀로 우편물을 찾으러 가거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암스테르담까지 자동차를 몰고 가야 할 사태가 오지 않나 하고 우려하고 있다.
9월까지 계속된 잇단 테러사건으로 궁지에 빠졌던「시라크」 정부가 10월 들어 한시름 놓는가 했으나 이번에는 국내 근로자들의 소요로 또 다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사회당의 「미테랑」대통령 집권 5년 사이 잠잠했던 파업의 망령이「시라크」의 우익정권 등장과 함께 되살아나고 있는 조짐이 뚜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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