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준]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선거 의미 및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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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 선거에 해당하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및 도 시 군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오는 8월 3일 동시에 실시된다. 핵문제로 인한 북 미간 갈등과 경제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라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통국가에서는 일상화된 정치일정인 북한의 주민대표 선출행사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북한을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보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한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수령체제'인데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질 것이지, 선거 후에는 어떤 '엉뚱한' 정책이 나올지 등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 핵문제로 인해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금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제11차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에서는 반드시 적확한 기간을 두고 실시된 것은 아니지만 대의원 선거가 정기적으로 실시돼 왔다. 물론 최고인민회의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의회처럼 자율적 권한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를 무조건적으로 추인하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다. 그러나 북한도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형식적이지만 삼권분립이 되어 있고,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예산 결산 심의나 법안을 통과시키며, 중요한 정책결정을 한다. 비록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라 할지라도 이러한 절차를 거쳐야만 명실상부한 법적 효력을 갖기 때문이다. 다만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법안이나 정책은 김일성 김정일의 정책방향이나 의중이 반영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및 제11기 제1차 회의에 대한 관심은 북한이 핵문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요미우리' 신문이 지난 7월 19일 보도한 대로 경제난 해결을 위한 어떤 특단의 결정이 나올 것인지 등에 모아지고 있다.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및 제11기 1차회의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첫째, 정치적으로 '김정일 우상화'를 한층 공고히 하면서도 후계문제에 대한 암시가 있을 수 있다. 김정일은 미국의 부시 정부 등장 이후 신변에 대한 위협을 강하게 받고 있다. '김정일 제거론'까지 등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회의에서는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맹세하는 결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김정일 이후'를 대비할 어떤 조항이 채택될 지도 모른다. 김정일에 대한 위험이 고조될 수록 이를 안정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헌법에는 최고지도자 유고 시 권력승계 조항이 없다. '희망사항'에 불과하지만 김정일은 중국에서처럼 전문가 출신이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근거를 적시할 가능성도 있다.

둘째, 향후 2, 3년은 북한으로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핵문제와 경제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 김정일은 충성심 전문성 참신성 등을 갖춘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용할 가능성이 있다. '공화국 창건 55돐'인 9월 9일 이전에 제1차회의를 개최, 국가지도기관에 대한 세대교체를 단행함으로써 '핵 이후'를 대비할 지도 모른다. 이미 김정일은 이러한 교체작업을 시작하였다. 인민보안상에 최룡수, 교육상에 김용진, 과학원장에 변영립, 농업상에 리경식, 남포시 인민위원장에 리호연, 개성시인민위원장에 김일근,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에 계승해, 전기석탄공업상에 주동일 등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1992년 664명이 승진한 것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24명의 군장성 승진인사도 단행하였다. 현재 지방단위의 책임자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것으로 낙인찍혀 주민들이 그들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함께 도 시 군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도 함께 치루는 것은 그 동안 문제가 된 지방관료들을 퇴진시키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넘치면서도 주민들의 신망을 받는 인물들을 등용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10기 대의원 선거 시에는 64%의 대의원 교체율을 보였다. 물론 김정일의 간부정책은 '노 장 청 3합구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급격한 세대교체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8월중에 '핵사태'가 원만히 해결될 기미가 보인다면 김정일은 과감히 과거의 관행을 버리는 조치를 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셋째, 통일문제에 관한 새로운 결정이 있을 지도 모른다. 북한은 제1차 핵위기가 몰아치던 1993년 4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회의를 통해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제시한 바가 있다. 이 '강령'의 핵심은 '민족의 단합'이었다. 당시 핵문제로 미국의 압박을 받던 북한이 뭔가 전향적인 조치를 추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었지만 북한은 역으로 정면돌파를 택했고, 이에 남한이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현재 핵문제로 인해 극심한 '피포위' 의식에 사로잡힌 북한이 '민족공조'를 통해 이를 돌파해 나가자는 내용의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지도 모른다. 아울러 만일 제1차 회의 시까지 '핵위기'가 원만히 해결될 기미가 없을 때는 강도 높은 대미 규탄 성명이 채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역사적으로 최고인민회의는 여러 중요한 국가적 방향을 제시하는 결정을 해왔기 때문에 당대회 및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개최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금번에도 어려운 대내외 환경을 타개할 뭔가 의미있는 결정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98년 제10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에서는 헌법개정이 있었던 바와 같이 제11기 1차회의에서도 부분적인 헌법개정이 있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2002년 도입한 '경제관리 개선' 조치, 신의주 특구 개성특구 도입, '회계법'을 비롯한 각종 개혁법 등을 헌법적으로 추인하는 조항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주민들은 '7 1 경제관리 개선' 조치 이후 물자부족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그 이전보다 생활이 더욱 악화됐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은 보다 과감한 조치를 통해 '7 1조치'를 보완할 가능성이 있고, 이의 달성을 위한 '전망목표'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북한은 '경제개혁' 이나 '종합시장'이라는 용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만일 8월 중에 북 미간 핵협상이 긍정적인 결과를 낸다면 '자본주의 초급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들이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현준(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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