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강경 5000자 쓰는 데 8시간씩 꼬박 50일 걸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기사 이미지

김경호씨는 전통사경을 재해석해왔다. 그의 몸에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을 비쳤다. [중앙포토]

전시장 벽 한 면이 한 작품이다. 길이 15m에 높이 3m, 『금강경』 5000여 자를 또박또박 적었다. 김경호(54) 한국사경연구회장이 20년 전 완성한 것이다. 그간 작품을 걸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다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 “50여 일간 하루 8시간 이상 썼습니다. 당시 몸무게가 12~13㎏이나 빠졌죠. 외로운 구도이자 수행인 셈이죠.”

사경(寫經) 40년 김경호 회고전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 5층이 불법(佛法)으로 물들었다. 지난 40년 사경(寫經) 외길을 걸어온 김씨의 회고전(11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신라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에 나오는 말로, 우주만물이 각기 특성을 간직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경지를 뜻한다. 글씨와 그림, 금빛과 먹빛이 어울리는 전시장 풍경을 그대로다.

불경을 옮겨 적는 사경은 한국 불교미술의 정수다. 고려시대 전성기를 이뤘다. 김씨는 조선시대 단절된 사경 전통을 오늘에 되살린 주인공으로 꼽힌다. 고려 사경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도 있다. 대표작 20여 편이 나온 전시의 백미는 역시 금니(金泥·금가루) 사경이다. 짙은 남색 종이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것도 2~4㎜ 안팎의 깨알 같은 글씨와 0.1㎜ 남짓 가늘고 가는 선이 빚어내는 세상이 황홀경을 닮았다. 일례로 ‘묘법연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 가로 6m63㎝, 세로 7.5㎝ 종이에 5층·7층탑 463개를 그리고, 각 층에 경전을 옮겨놓았다. 성경·코란·만다라 등 서양·이슬람 전통을 접목한 작품도 있다. 김씨의 내일을 예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