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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백리길, 한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에 탄성 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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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이 있다면 한려수도엔 ‘바다 백리길’이 있다. 2012년 국립공원관리공단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가 경남 통영시의 미륵도·한산도·비진도·연대도·매물도·소매물도 등 6개 섬의 둘레 42.1㎞를 이어 만든 길이다. 이 바다 백리길은 제각각 특색이 있다. 어느 섬에서나 원시림, 명불 허전의 비경,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다. 본지 취재팀은 지난 8월 29~30일, 9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6개 섬의 바다 백리길을 취재했다. 동부사무소 탐방시설과 김아름(29·여) 주무관이 동행했다.

일출·일몰이 장관인 섬 ‘미륵도 달아길(1구간·14.7㎞·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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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길의 시작은 미륵도(彌勒島·면적 3290만㎡, 인구 3만1084명)다. 미륵도는 섬이지만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다. 통영에서 연결된 통영대교와 충무교가 있어 자동차로 건널 수 있어서다.

통영대교·충무교를 빠져나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미래사부터가 길의 시작이다. 절 옆 등산로 입구 바닥에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이라는 파란색 글자가 적혀 있다. 편백 나무숲을 따라 40~50분 정도 올라가면 미륵산(461m) 정상이다. 이곳에 온 탐방객들은 탄성부터 질렀다. 정상에서 360도로 둘러보면 대마도, 지리산 천왕봉, 전라도 여수 돌산 등이 펼쳐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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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도 달아길 코스는 바다백리길 중 가장 길고 힘들다. 그래서 산행이 힘든 사람은 미래사부터 오르지 않고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간 뒤 내려가거나 산행을 이어가면 된다. 이어 미륵고개와 야소마을을 지나 희망봉(230m)과 망산(253m)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번갈아 나타나 쉽지 많은 않다.

희망봉과 망산에서 바라보는 곤리도·욕지도·매물도 등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등산의 피로를 잊게 해 준다. 이후 달아공원까지의 등산로는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해질녘에 달아공원에 도착한다면 남해바다 최고의 일몰을 경험할 수 있다.

과거와의 소통과 사색의 섬 ‘한산도 역사길(2구간·1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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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로 20분 정도면 한산도(閑山島·면적 1470만㎡, 인구 1073명)에 도착한다. 선착장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가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 직무를 수행했던 제승당, 왼쪽으로 200m 정도의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역사길이 시작되는 오솔길이 나온다. 역사길은 능선마다 임진왜란 때 격전이 펼쳐졌던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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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길 초입은 100여m 종려나무·동백나무 숲 길이어서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10여 분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학익진 전망대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학이 날개를 펴듯 적을 둘러싸 대승을 거둔 한산대첩의 현장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망산교까지 2시간 정도의 길은 인생의 굴곡처럼 다채롭다. 호흡이 가빠지는 짧은 오르막이 나타난 뒤 편안한 산책길이 이어지고 잊을 만하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다시 망산(293m)으로 올라가는 40분 정도의 숲길은 가파르다. 한산도에서는 가장 험한 길이어서 산행 초보자들에게는 힘들 수 있다. 망산은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망대를 만들고 병사를 두어 대마도 등 인근 해안의 적선의 동태를 감시했던 곳이다. 이어 곰솔 군락지를 지나 봉수대에서 1시간 정도 내려오면 종착지인 진두(津頭)마을이다.

산호빛 바다를 품고 있는 신비의 섬 ‘비진도 산호길(3구간·4.8㎞·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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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도와 한산도가 통영에서 가까운 섬이라면 비진도(比珍島·면적 277만㎡, 인구 181명)는 통영항에서 뱃길로 40분 정도 걸리는 먼 섬이다.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이 도로로 이어져 멀리서 보면 숫자 ‘8’처럼 보인다. 도로 한쪽은 모래 해수욕장, 반대쪽은 몽돌해수욕장이다. 이들 해수욕장은 산호빛 바다를 품고 있어 외항 선착장에 내린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하기 일쑤다.

비진도의 진경은 산호길을 걸어야만 볼 수 있다. 선착장의 파란색 안내 글씨를 따라 왼쪽으로 100여m 정도 가면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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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길 초입의 오솔길을 지나면 45도가 넘는 경사의 오르막이 계속된다. 20분 정도 올라가자 탐방객들이 여기저기 주저앉아 거친숨을 몰아쉬었다.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망부석 전망대쯤에서 산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었다. 그만큼 오르막이 가파르다. 하지만 조금 더 올라 미인도 전망대에 서서 해수욕장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 힘들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씻겨져 나간다. 성스레(28·여·경기도 파주시)씨는 “이곳에 안 올라왔으면 후회했을 것”이라며 “산호빛 해변이 진풍경이다”고 했다.

일부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러나 10여분 정도 더 올라 선유봉 전망대에 도착한 이후는 내리막 산책길이다. 특히 해안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길과 각종 기암절벽들은 왜 산호길이 바다백리길 중 손꼽히는 구간인지를 보여준다. 노루여 전망대와 비진암을 지나 출발지점에 도착할 때 쯤 벌초를 하던 마을 주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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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곤(60)씨의 부인은 기자가 이런 섬에 살고 싶다고 하자 “낚시대 하나만 들고 오면 살 수 있어, 말만 잘 들으면 여기 사람들이 마늘 등 각종 필요한 것 다 줄 건데 머시 걱정이고”라며 웃었다.

동화같은, 인간미 넘치는 섬 ‘연대도 지겟길(4구간·2.3㎞·1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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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산양읍 삼덕항에서 배로 20여 분 거리인 연대도(烟臺島·면적 54만㎡, 인구 93명)는 바다백리길 중 가장 짧다. 선착장에서 시작된 지겟길은 연대마을을 통과하면 뒷쪽으로 태양광 발전소가 보인다. 이어 몽돌해변과 북바위전망대로 해안을 낀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원래 예전에 섬 주민들이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다니던 길이어서 지겟길이라 붙여졌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다. 여기서 연대봉(220m)을 지나 오곡도 전망대까지는 바다 전망을 보면서 갈 수 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에코체험센터가 있고, 수변데크를 따라 10여 분 가면 다시 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은 동화속 세상 같다. 문패만 봐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칠공주의 집- 이박삼일동안 춤을 춰도 끄덕없습니다’, ‘허우두리 할머니 댁-젊을 때 한 미모하셨답니다’ 등의 식이다. 이런 문패와 집 담벼락에 그려진 동화같은 벽화를 보면서 마을 길을 걷고 있는데, 한 주민이 깜짝 놀란 듯 집 밖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좋은날 오지, 얼릉 가이소 배 끊길라~.” 연대도주민 홍종균(71)씨였다. 궂은 날씨에 혹시 배가 끊겨 취재진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달려나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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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도 몽돌해변에는 주민들의 재치가 담긴 입간판이 있다. “아이구 허리야, 너거는 놀고 가모(가면) 그마이지만(그만이지만) 우리는 (쓰레기) 치운다고 억수로(많이) 욕본다(힘들다) 아이가.”

한번 걷고 나면 다시 가고 싶은 섬 매물도 해품길(5구간, 5.2㎞·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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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백리길 중 단 한 곳만 꼽으라면 매물도(每勿島·면적 141만㎡, 인구 121명) 해품길(바다를 품은 길)을 추천하고 싶다. 해품길과 비진도 산호길은 코스 상당 부분이 바다 풍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 많다. 여기다 해품길은 강원도 양떼목장 같은 초원도 있다.

당금 마을 선착장에서 길이 시작된다. 지금은 폐교가 된 매물도분교와 동백터널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해안과 산 사이로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마을을 벗어나는 언덕길 외에는 경사가 심하지 않다. 바다전망이 멋진 홍도전망대를 지나면 내리막길이 800m 가량 이어진다. 끄트머리에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까지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면 대항마을, 다시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10여 분 올라가면 장군이 말을 탄 모습을 한 장군봉(210m)이다. 장군봉에서는 선유도·욕지도·사량도가 보이고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해품길의 진정한 비경은 장군봉에서 내려가는 길부터다. 인근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바라보며 초원지대를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종착지인 대항마을에서 만난 이응식(67)씨는 “여름엔 피서객들이 오는데 겨울엔 적막하다”며 “앞으로 이 길(해품길)을 보러 사람들이 더 많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다백리길의 백미, 소매물도 등대길(6구간, 3.1㎞,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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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小每勿島·면적 51만㎡, 인구 58명) 등대길은 바다백리길의 화룡점정(畵龍點睛·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이다. 소매물도 등대섬은 TV 광고나 ‘1박 2일’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바다 백리길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길이다.

등대길은 ‘천당과 지옥’을 맛볼 수 있다. 소매물도 망태봉(152m) 전망대에서 등대섬을 바라보면 이국적인 느낌에 천당에 온 듯 행복해진다. 1㎞ 정도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가 바다 건너 등대섬으로 갔다가 망태봉까지 되돌아 가려면 오르막 길이 너무 힘들어 마치 ‘지옥’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망태봉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가파른 길을 하염없이 내려간다. 바다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열목개’를 향해서다.

길은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시작된다. 남매바위를 지나 소매물도 분교까지 1시간 거리다. 이곳에서 나무계단을 올라 망태봉(152m)정상에 있는 관세역사관을 지나면 등대섬이 보이는 망태봉 전망대다. 등대섬을 보는 순간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평소에는 바다 때문에 갈라져 있다. 그러나 하루 두 차례 2~3시간 물때에 맞춰 70m 길이의 열목개가 열리면서 몽돌로 된 길이 드러난다. 유환우(28)씨는 “공룡전망대에서 보이는 등대섬과 열목개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무작정 내려왔는데 저 길로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벌써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일생에 한번은 꼭 와도 좋은 곳인 것 같다”고 말했다.

통영=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사진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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