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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특별회견 전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3면에서 계속>
김 국장=우리나라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우리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 대통령=나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저력과 강점에 대해서 각별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외 운동경기에서도 여성 팀이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가정생활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컸는데, 특히 오늘날에는 교육기회가 확대되는데 따라서 사회적으로도 남성들에게 못지 않은 지위를 차지해가고 있지요.
그리고 어떤 조직에서든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서 더 적극적이고 성실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아내가 민단이면 남편도 무조건 민단이라지 않습니까.
나는 우리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확대되고 그 역할이 커질수록 나라발전이 훨씬 빨라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김 국장=각하께서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민심동향을 어떻게 파악하십니까.
전 대통령=일상적인 세상사나 민심의 동향은 나 역시 신문과 라디오·텔레비전과 잡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파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만인이 공유하는 매스미디어에만 의존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집무시간이거나 아니거나 가리지 않고 가급적 각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국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정 사안이나 관심사에 관해서는 늘 각종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만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보좌관들로 하여금 직접 확인하도록 해서 보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접 밖에 나가서 살아있는. 민의에 접하는 기회를 가급적 많이 가지려고 노력을 해왔고, 가능한 한 현장 확인을 통해서 국정의 흐름을 파악하느라고 애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다니는데는 기본적으로 제약이 많아서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김 국장=요즈음 독서는 어떻게 하시며, 무슨 책을 주로 읽으시는지요. 그리고 학창시절에 보신 책 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기억하고 계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전 대통령=지난여름에는 이문열인가 하는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어린 시절의 훈훈한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요즈음에는 틈나는 대로 한국 문화사를 보고있습니다. 젊을 때는 역사 쪽에 흥미를 느껴서 민족의 흥망성쇠를 다룬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 국장=앞으로 1년 반이라는 남은 임기는 각하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나라의 장래에 대단히 중요한 기간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은 임기에 임하시는 자세를 말씀해 주십시오.
전 대통령=집권자는 바뀌어도 조국과 민족은 영원하다는 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1년 반 남은 대통령 임기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복리를 위해서 엄청난 일을 할 수도 있고 반면에 개인의 안위나 걱정하면서 세월을 헛되이 보낸다면 나라가 엄청난 위기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임기 중에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평화적인 정부이양이야말로 우리 역사에 선례가 없는 전혀 새로운 경험입니다.
이와 같은 선례를 세우는 일도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새로운 역사창조의 좋은 방향으로 전개되어야지 이것이 정권투쟁의 호기로만 인식되어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국민이 불안하게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들을 생각해서 나는 요즈음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대통령직을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할 것을 거듭 다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어떤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고 해서 인심이나 쓰고 적당히 일해온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서 직무수행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자세로 국정에 임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임기를 마무리짓는다고 해서 당장의 피상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요즈음 그런 점을 스스로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의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진다면 나라의 기강은 더욱 해이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의 구심점이 흔들려서 결국 나라와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게 된다는 점을 깊이 명심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내게 주어진 책무를 추호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나의 확고한 결심을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두고자 합니다.
김 국장=대통령직을 마치고 퇴임하신 후 가장 먼저 하시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전 대통령=그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서 털어놓고 담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목적지가 없이 가볍게 전국을 여행했으면 하는 소망을 그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나그네처럼 민박을 하면서 주인장에게 저녁대접도 받고 세상얘기도 하면서 일주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김 국장=각하께서는 신문과 텔레비전을 많이 보고 계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신문의 어느 면을 주로 보십니까.
전 대통령=신문은 각 면을 빼놓지 않고 훑어보는 편입니다만 사설과 논설 등은 정독을 합니다.
사회면의 미담기사는 아무리 작게 나더라도 찾아서 읽습니다.
텔레비전은 주로 저녁에 주요 뉴스를 봅니다.
그밖에 시사성 있는 특집프로그램을 보고 그 중에서도 경제에 관한 프로그램은 거의 빠짐없이 보는 편입니다.
김 국장=각하께서는 언론의 책임과 기능에 대해 항상 강조해오셨는데 요즘 우리나라 언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전 대통령=제5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안정과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이해와 협조가 큰 힘이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나는 대통령으로서나 개인적으로나 언론인 여러분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은 임기 중에 다스리지만 언론은 영원히 다스린다』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같은 선진 산업사회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사회가 다원화하고 발전할수록 언론의 역할과 책임은 더 크고 무거워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내가 우리 언론에 바라는 것은 지금과 같이 나라의 장래를 가름하는 중대한 상황에서는 언론이 국가이익을 위한 대도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내외의 처지를 잘 살피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확고히 인식하는 가운데 비판과 계도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공기로서의 역할을 다하자면 무엇보다 이성적인 판단과 균형감각이 발휘되어야 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언론이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양자가 함께 국익을 위해 일한다는 공통의 인식과 상호이해가 확고하게 전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풍토는 그 동안 국가이익을 위해서 진지한 자세로 협력하기보다는 우리끼리 험담하고 불화 하는데 열중해온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언론이 무엇보다 국익과 공익을 항상 먼저 생각하면서 사회의 건전한 기풍과 국민화합의 분위기를 북돋워 줄 것을 기대합니다.
김 국장=우리나라가 당면한 세 가지 대사의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안게임이 역사적인 개막을 본데 대해 온 국민이 모두 기쁨을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애써오신 대통령께서 특별히 갖고 계신 소감이나 감회를 말씀해 주십시오.
전 대통령=그 동안 국민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로 각종 경기의 준비가 마무리되고 어제 개회식이 우리 모두의 민족적 자부심을 드높인 아름답고 훌륭한 한마당 잔치로 끝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비가 오는데도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 학생들을 비롯한 출연자와 질서정연하게 식을 관람하고 진행시킨 관중들과 대회관계자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리면서 대회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국민여러분들이 계속 한마음으로 애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가오는 21세기를 가리켜 흔히 「태평양시대」라고도 하고 또는 「아시아의 세기」라 고도 합니다.
우리가 서울에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은 비단 한국민이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발돋움한 것을 의미하고 있을 뿐 아니라 21세기를 여는 아시아인의 힘찬 전진을 상징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아시아경기대회의 개회를 선언하면서 금세기 초까지만 해도 약소국으로서 억압과 설움을 겪었던 우리가 이제 아시아의 화합과 번영을 이끄는 중추로 부상하게된데 대해서 가슴 벅찬 감격을 느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에 아시안게임을 유치했다가 반납했던 지난 일을 상기하면서 내가 새삼 느낀 것은 우리 국민은 한때의 좌절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있다는 점이였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아픈 경험을 딛고 일어서서 기어코 자랑스런 위치에 섰고 이제는 전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88서울올림픽을 훌륭하게 치러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세계에 과시하는 기회이기도해서 더욱 의의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더우기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각계각층에서 이 국가적인 대사에 합심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민족의 저력을 모은 슬기를 보인 것을 나는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슬기와 노력이 남은 국가과제의 구현에도 흐트러짐 없이 발휘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김 국장=우리나라가 처해있는 현재의 상황과 또한 앞으로의 2, 3년을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불안하게 생각하고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전 대통령=다시 한번 말씀드리게 됩니다만 우리 국민에게는 무한한 저력이 있고 또 어려운 경우를 당하면 모두 힘을 합쳐서 현명하게 극복하는 지혜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만한 안정과 발전을 이룬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앞으로 닥칠 여러 가지 큰 일들도 그런 점에서 잘 되어갈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날을 공정하게 되돌아본다면 우리의 정치사에서 제5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지난5, 6년만큼 안정된 기간도 없었다는 점을 인정해야할 겁니다.
안정이 안되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만큼 발전을 하고 큰일을 치러내고 또 국제적으로 우리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특히 지금 우리 경제는 정부가 나서서 경기과열을 억제해야할 만큼 호기를 맞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 정권 때는 힘의 행사를 통해서 정권을 유지해갔던 점을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서 국민의식과 정부의 자세가 성숙되어 있고 또한 자신감과 신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국운의 도약을 더욱 확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지금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정부와 국민사이를 이간하고 갈등과 혼란을 부채질하려는 사람들이 우리사회 일각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일신과 일파의 사리사욕 때문에 나라와 사회의 화합과 안정을 파괴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사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만 된다면 우리는 앞날을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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