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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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짜」는 돈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 거저 얻는 것을 뜻하지만 「무료」와는 좀 다르다. 일종의 뇌물이요, 선물이다.
한국인의 「공짜」 선호벽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지경이란 것이 통념이 되고 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극한적인 속담도 있다.
조선조의 청백리로 뽑힌 1백 10명이 어떻게 선발되었는가 보면 그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1등 청백리는 나라에서 주는 봉녹 이외엔 손을 대지 않았고 남으면 놓고 돌아갔다. 정말 공짜를 모르는 이들이다.
2등 청백리는 녹봉 이외에 명분이 있는 것만 받되 남은 것은 집으로 보낸다.
3등 청백리는 대개 선례가 있는 것은 비록 바르지 않더라도 받되 그렇지 않은 것은 사양한 사람일뿐이다.
『흥부전』에 보면 놀부는 공짜로 벼락부자가 되고 싶어서 일부러 제비의 다리를 분지르고 다시 매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흥부전』에는 가난한 흥부가 양식을 벌기 위해 돈 많은 죄인 대신 곤장을 맞으려 관가에 갔으나 그 자리도 뇌물을 준 놈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애절한 대목도 있다.
이는 오히려 몸으로 때우면 때웠지 공짜로 양식을 얻으려고 하지 않은 흥부의 뜻을 엿보게 한다.
실제 우리 선조 들은 공짜를 옴처럼 피한 경우가 많았다.
고려의 지방관이었던 유응규의 처는 해산한 몸으로 그저 나물국만 먹는 처지에 있자 아전이 남몰래 꿩 두 마리를 가져다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주인이 평소에 남의 선물을 받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주인의 맑은 덕에 누를 끼칠 수 있겠소』하는 것이었다. 작은 뇌물도 거절하는 판이니 공짜가 통할 리 없다.
다산의 『목민심서』에는 『관부의 물건은 모두 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을 엄정히 회계하지 않는 것은 민을 해침이 심한 것이라 하늘에서 비오듯이 내리거나 땅에서 샘솟는 것은 없는 것이니 절용하고 폐해를 살펴 백성을 이롭게 해야할 것이 아닌가』라는 경구도 있다.
우리의 옛 법도가 그랬거늘, 오늘 아시안게임 선수촌에선 난데없이 「공짜」 풍년이 들었다. 이발소, 미장원, 다방, 디스코테크, 전자오락실, 당구장…모두가 공짜다. 신문 가십을 보면 이발소에 공짜로 여드름 짜러 가는 외국 선수도 있었다.
이쯤 되면 공짜를 고맙게 알기보다 우습게 볼 것도 같다. 아무리 외국 손님맞이를 융숭하게 하기로서니, 우리 자존심에 침을 뱉는 일은 삼가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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