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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견제 없는 중국 공산당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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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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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중국법학과 교수

부패는 제어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력에 불가피하게 따라다니는 하나의 악령이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로드 액턴은 갈파했다. 절대 부패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세상 이치이기도 하다. 한데 중국 공산당 일당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왜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그 세(勢)를 확장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비결이 있나.

절대 권력 휘두르는 공산당 감독은
내부 조직인 기율검사위가 맡아
기검위 수장엔 총리급 인사 임명
정보기관의 공직자 감찰은 배제

규정된 시간·장소에서 조사하는
쌍규 처분은 탐관오리 무덤 해당
우리도 감사원 기능 적극 활용해
권력형 부패 척결에 힘 모아야

현대 우주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는 전체 우주의 4%(물질 0.4%, 에너지 3.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신비한 암흑물질(23%)과 암흑에너지(73%)가 차지하고 있다. 이 암흑에너지는 기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암흑에너지는 중력(重力)과 반대인 척력(斥力·두 물체가 서로 밀어내는 힘)으로 우주의 시공간을 팽창시키고 있다. 이 우주이론에 빗대어 중국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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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국가주석(左),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右)

중국은 ‘모든 권력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나오는’, 즉 공산당이 주인인 ‘당주(黨主)’ 국가다. 언제든지 야당으로 전락할 수 있는 여느 민주국가의 집권당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중국 공산당은 헌법상 영구 집권당이다. 헌법 위에 중국 공산당 당장(黨章)이 있고 법률 위에 당규(黨規)가 있다. 국민의 심판에 의한 정권 교체는 꿈에서도 불가능하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 중국 공산당은 누가 견제하나. 자체 감독 시스템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 존재가 바로 기율검사위원회(紀檢委)다.

한데 이 기검위와 관련해 중국 헌법과 법률에선 단 한 개의 조문도, 또 단 한 개의 글자로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마치 우주의 암흑물질과도 같다. 이 기검위가 뿜어내는 암흑에너지가 바로 중국 공산당 일당제에 의한 절대 권력이 절대 부패로 흐르지 않게 막아 주는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2300년 역사의 총리급 감찰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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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천하를 제패하고 제도는 강산을 안정시킨다(英雄打天下 制度定江山)’.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권력자들은 법제를 부국강병과 체제 안정의 가장 유효한 도구로 간주했다. 그들은 이공계의 발명품이나 예술계의 창작품처럼 법제를 창조하길 즐겼다. 서양보다 1200년이나 앞선 공무원 시험인 과거제도나 역시 서구보다 400~500년은 이른 지폐와 어음 등이 그런 예다. 감찰기관의 수장이 정승급인 감찰제도 역시 세계 최초로 중국의 첫 황제가 창설했다. 진시황(秦始皇)은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한 뒤 행정은 승상(丞相), 감찰은 어사대부(御使大夫), 군부는 태위(太衛, 비상설 기관)에 맡겨 분담 통치하는 3정승제를 고안해냈다.

이 같은 통치 방식은 조직의 명칭과 형식을 조금씩 달리했을 뿐 현대에까지 이어졌다. 인민복을 입은 공산왕조의 초대 황제 마오쩌둥(毛澤東) 역시 자신의 역사적 멘토인 진시황을 벤치마킹했다. 마오는 진시황처럼 당권과 군권은 자신이 직접 장악한 채 자신의 양팔인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주더(朱德)는 각각 승상 격인 총리와 어사대부 격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中紀委) 서기로 임명했다. 이후 역대 중기위 서기는 모두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상무위원회의 한 위원(총리급)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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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의 지위가 높으니 조직의 힘이 셀 수밖에 없다. 현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부패 공직자들의 염라대왕’으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 중기위 서기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중기위가 중국의 5대 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공안부·최고인민법원·최고인민검찰원·사법부·국가안전부 등을 영도하는 중앙정법위원회를 지휘, 감독하고 있는 게 바로 중국의 현실이다. 중기위는 중앙과 지방의 모든 당·정·군 조직뿐 아니라 언론기관, 대형 국유기업 등에 촘촘히 심어놓은 수십만 명을 동원해 모든 공산당원에 대한 감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공직자 감찰 배제

중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정말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것’인지 그 지위와 권력이 의외로 낮다. 국가안전부는 중국의 오너 격인 공산당 소속이 아니라 청지기 격인 국무원 소속으로 돼 있다. 역대 국가안전부장의 당 직급이 25개 각 부·위원회 수장 중 제일 낮다. 소련의 KGB나 동독의 슈타지,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등 여타 공산주의 국가들의 그것들에 비해 존재감이 크게 떨어진다.

실제로 중국 국가안전부는 대만 관련 업무와 반체제 인사, 분리주의자 등과 연관된 정보 수집과 단속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보기관에 고위 공직자의 사찰을 맡기면 부패가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부패를 조장하는 등 국기(國紀) 문란의 엄청난 폐단만 초래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탓으로 보인다. 이는 동창(東廠)과 서창(西廠) 등 특무기관이 횡행하며 명(明)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던 역사에서 배운 교훈 덕분으로 추론된다.

중국의 투 트랙 반부패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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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은 고속철도에서, 일반 기차는 일반 철도에서 달리듯 중국은 부패 혐의 피의자의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기관에서 처리하는 투 트랙 시스템을 운용한다. 부패 사건에 연루된 자가 공산당 당원이면 기율검사위원회가, 일반인일 경우엔 공안과 검찰에서 맡는다. 기검위는 출발역인 사건 접수에서 시작해 초동 조사→입건→사건 조사→검찰 송치→검찰의 공소를 거쳐 종착역인 법원의 판결에 이르는 죽음의 전 여정을 진두지휘한다.

중국 탐관오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옥 구간은 세 번째 역인 ‘입건’과 다섯 번째 역인 ‘검찰 송치’ 사이에 자리한 ‘쌍규(雙規)’ 처분이다. 쌍규란 말은 기검위가 피의자에 대해 ‘규정한 시간에 규정한 장소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데서 유래했다. 쌍규 처분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피의자의 모든 직무가 정지되고 인신 자유가 박탈된다. 압수·압류·계좌추적과 동시에 피의자의 모든 재산이 동결된다. 쌍규 기간엔 일반인은 물론 가족과 변호사의 접견조차 제한된다. 쌍규 기간은 3~4개월에서 2년까지도 연장이 가능하다. 쌍규를 견뎌내는 혐의자는 거의 없다. 평생의 모든 죄를 털어놓게 된다. 사형당하기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미쳐버리는 이 또한 부지기수라 한다.

기검위의 약점 세 가지

중국이 자동차라면 기검위는 브레이크다. 국가가 전복되는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는 고성능 잠김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ABS)이긴 하지만 완전무결하다고 볼 수는 없다. 나름대로 취약점이 있다. 크게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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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유독 강조하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의 ‘법’에 공산당 당장이나 당규도 포함되는가의 문제다. 아마 중국 내에선 그런 논리가 위대한 학설로 치켜세워질 수 있을지 몰라도 보편적인 문명국가에선 궤변일 뿐이다. 헌법과 법률에 전혀 근거가 없는 기검위는 엄밀히 말해 법외단체 또는 비선조직체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 시대를 열려는 중국의 위상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두 번째는 당장과 당규가 국법을 대체하기엔 법으로서의 자격이나 안정성, 투명성, 공개성 등 모든 면에서 취약하다는 점이다. 당장과 당규는 최고 권력자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권력은 견제 받아야 하고 경쟁은 엄격한 룰에 따라야 하는데 기검위엔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문제다. 기검위가 부패하면 속수무책이다. 한 방에 훅 간다. 거인 중국을 돌연사시키는 원흉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감사원 살려 부패 잡아야

현재 중국의 급속한 부상 배경엔 정책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하고 이를 강력히 실천하는 지도부의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3대 권력기관인 감찰기관과 사법기관, 정보기관에 각각 공직자 부패, 민형사 업무, 정보 업무를 맡겨 전담케 하는 통치 시스템은 우리도 참조할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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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중국 공산당은 중국 공자당이 될 것인가
② 유럽연합 두 배나 되는 중국이 분열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기검위는 무명유실(無名有實)한데 우리 감사원은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다. 기검위가 정체불명의 흑기사라면 감사원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다. 헌법에도 없는 기검위가 막강 권력을 휘두르는 데 반해 헌법에 엄청난 권한이 부여된 우리 감사원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이제는 감사원을 활성화할 때다. 헌법정신에 걸맞게 감사원에 권력형 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준사법권을 부여하고 감사원장은 국무총리에 준하는 지위와 권한을 갖추도록 하는 등 국가의 감찰기관인 감사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강효백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12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 했다. ‘학문은 세상의 모든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중국의 슈퍼리치』 등 중국 관련 18권의 저서가 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중국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