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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캐디·택배기사 쉬는 게 낫겠네요…‘배보다 큰 배꼽’ 실업급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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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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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생명보험설계사가 5만원짜리 보장성보험 한 건을 유치하고 받는 돈(수수료)은 회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보험료의 9개월치인 45만원 정도다. 3년 동안 월평균 1만2500원씩 받는다. 많이 유치하면 억대 연봉도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0명 중 3명 가량은 50만원도 못 번다. 소득이 워낙 적다 보니 3년도 안 돼 56% 정도가 그만둔다. 그러나 이들은 실업급여나 직업훈련을 못 받는다. 회사와 계약을 맺고 수수료를 받는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고용보험 의무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미콘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퀵서비스기사,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특수형태고용종사자라고 부른다.

특수고용종사자 고용보험료도
내년부터 일반 근로자와 같아져
평균 소득보다 많아진 실업급여
도덕적 해이, 일자리 이탈 우려

한데 내년부터 특고종사자도 고용보험에 의무 가입하고 실업급여를 받게 될 전망이다. 생명보험설계사의 경우 월 141만80원을 실업급여로 수령할 수 있다. 상당수가 소득보다 훨씬 많은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얘기다.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새누리당 장석춘 의원을 통해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직업훈련이나 육아휴직과 같은 혜택은 제외되고, 실업급여만 타는 조건이다. 물론 지금도 본인이 원하면 고용보험에 들 수 있지만 자영업자의 보험요율(소득의 2%)은 근로자(0.65%)보다 높다. 여기에다 소득이 노출돼 고용보험 이외에 건강보험과 같은 다른 사회보험료와 소득세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특고종사자 대부분이 고용보험 가입을 꺼렸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면 근로자와 똑같은 보험료를 내고 실업급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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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소득이 노출될 위험도 없다. 실제 보수와 상관없이 실업급여 수급액의 기준이 되는 보수액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어서다. 기준보수액은 이들의 실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정부가 추정한 금액이다. 산재보상보험료 징수에 관한 시행규칙에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생명보험설계사는 월 282만161원, 레미콘기사는 202만3080원, 퀵서비스기사는 135만원, 캐디는 194만3080원 등이다. 하지만 실제 소득은 이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퀵서비스 기사로 월 80만~120만원 정도를 버는 이정환(47·가명)씨가 생명보험설계사의 기준보수액을 선택해 월 0.65%인 1만8331원씩 1년간 총 22만원만 내고 일을 그만두면 월 141만80원의 실업급여를 받게 된다. 실업급여 수령액이 본인이 버는 수입보다 훨씬 많다. 같은 요율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월급여의 50%를 실업급여로 받는 근로자와 비교하면 형평성 논란이 인다.

더욱이 근로자는 자발적 이직일 경우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지만 특고종사자에게는 사실상 자발적 이직에 대해서도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소득이 감소해서 이직할 경우 자발적 이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모 생명보험사 임원은 “보험 유치건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고 그만두면 근로자 본인은 쉬면서 소득보다 많은 실업급여를 받고, 회사는 보험유치 건수가 적어져 경영상 불이익을 당하는 이상한 체계”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광호 사회정책팀장은 “특고종사자 상당수가 부업인 경우가 많다”며 “근로활동을 그만두면 사실상 수입이 늘어나는 시스템이 도입되면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고, 일자리 이탈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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