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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휠체어 투혼 발휘하는 윤석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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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가 밖까지 나가는 건 무리에요, 어떡하죠 연출님?"

5일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개막 이틀을 앞둔 연극 '마스터 클래스'의 막판 연습이 한창이었다. 눈길을 잡은 건 휠체어였다. 잠시 소품처럼 있는 게 아니라 리허설 내내 무대 중앙에서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 앉아 있는 이는 배우 윤석화(6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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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탄 채 연기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배우 윤석화. [사진 샘컴퍼니]

작품은 당초 '윤석화 연극 인생 40년 앙코르'로 기획돼 9월 27일부터 올라갈 예정이었다. 개막 1주일전, 방송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윤석화가 서울 한남동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좌회전을 하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에 그대로 치인 것. 탑승자중 뒷좌석 오른쪽에 앉아 있던 윤석화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즉시 119에 실려갔고, 진단 결과 갈비뼈 6대가 부러지는 전치 6주였다. 곧바로 입원했고, 공연 취소는 불가피해 보였다.

하지만 윤석화는 "어떡하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고집을 피웠다. 병원에선 "고통스러워 무대 서 있기도 어렵겠지만, 설사 선다해도 더 나빠진다"며 극구 말렸다. 결국 고심끝에 그는 개막을 열흘가량 늦춰 7일부터 개막하기로 했다. 전체 일정의 절반이라도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토록 강행하는 데엔 관객과의 약속을 어기는 게 꺼림칙했을 것이다. 일정을 비워둔 다른 배우나 스태프에게 미안함도 컸을 것이다. 리허설 뒤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윤석화는 조금 더 절실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여기서 포기하면 뭐랄까, 앞으로 영영 무대에 서지 못할 거 같더라고. 트라우마가 생기는 거지, 겁이 나는 거지. 아, 죽기 살기로 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연극 배우 윤석화는 끝이다."

휠체어는 윤석화의 아이디어였다. 통증이 강해 그는 상체를 잘 움직일 수 없었다. 서서 연기해봤자 어차피 부자연스러웠다. 차라리 휠체어에 앉아 있는 설정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다행히도 그가 20여년전 연극 '하나를 위한 이중주'를 하면서 휠체어에 앉았던 경험이 큰 도움을 줬다. 동선도 달라지고, 설정도 바뀌었지만 윤석화는 꽤 능숙하게 적응해갔다. 그는 "이 참에 휠체어 연기라는 새 영역에 도전해 볼 참"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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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스터 클래스`엔 윤석화 이외 뮤지컬배우 양준모, 서울시뮤지컬단 박선옥, 소프라노 윤정인, 테너 이상규·김현수 등이 함께 출연한다. [사진 샘컴퍼니]

연극은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다룬다. 러닝타임 2시간 내내 윤석화는 퇴장 없이 거의 혼자서 작품을 끌고 간다. 마지막 독백 대목에선 직접 일어나 연기한다. 27일 퇴원했고, 3일부터 무대 리허설을 시작했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했는데 "정신이 혼미해져 자꾸 대사를 까먹는다"며 5일부턴 진통제도 끊었다. 연습 현장에서 그는 옷을 갈아입을 때 얼굴을 찡그렸고, 툭하면 "아이고"를 연발했다. "그래도 막상 무대 오르면 언제 아팠느냐는 듯 멀쩡히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병원에선 퇴원한 뒤에 훨씬 경과가 좋아졌다고 신기해 해요. 역시 무대가 최고 보약인 거죠."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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