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 ④ “샤넬 파티 ‘삼계탕 롤’, 이곳에서 영감 받았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 맛은 골목 안에 있더라

셰프 스테파노 디 살보의 ‘성북동 누룽지 백숙’

“샤넬 파티 ‘삼계탕 롤’, 이곳에서 영감 받았죠”

기사 이미지

‘성북동 누룽지 백숙’의 외관. 김현동 기자

장모님의 추천 맛집, 이탈리아인인 내겐 신선
살살 녹는 닭고기, 독특한 식감 메밀전 추천
예약도 안 받지만 한 달에 한두 번 꼭 방문

기사 이미지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가 삼계탕이다. 워낙 각종 닭요리를 좋아하는 데다 특히 한국 삼계탕은 맛이 좋으면서도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보양 음식이라 더욱 자주 찾는다. 9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삼계탕을 처음 맛봤는데 그 뒤 때론 동료, 때론 친구와 함께 여러 삼계탕 식당에 다니며 맛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성북동 누룽지 백숙’은 내 한국인 아내의 어머니, 그러니까 우리 장모님이 “매우 유명한 맛집”이라며 소개해주신 집이다. 장모님은 요리를 잘 하실 뿐만 아니라 미식에 일가견이 있다. 그런 분이 소개를 했으니 맛이야 당연히 믿을만하다. 한 번 가본 후 누룽지와 삼계탕의 깊은 맛에 반해 가족 모임이 있을 때는 물론이요, 한달에 한 두번 삼계탕이 생각날 때마다 꼭 방문할 정도로 단골 레스토랑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닭 요리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고 이탈리아에서도 다양하게 해 먹는다. 그런 닭 음식을 평생 접한 이탈리안인 나에게 한국 삼계탕은 매우 독특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삼계탕에서 영감을 받아 내가 근무하고 있는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호텔(이하 동대문 메리어트)에서 삼계탕 롤을 만들기도 했다. 삼계탕 고유의 정통성은 유지하되 외국인들이 파티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입 크기의 핑거푸드로 만든 것이다. 지난해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DDP)에서 열린 샤넬 크루즈 컬렉션의 애프터 파티에서 처음 선보였고, 당시 참석한 국내외 관계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동대문 메리어트의 뷔페 레스토랑 ‘타볼로 24’에서도 선보이고 있다.

기사 이미지

이 곳의 대표 메뉴인 누룽지 백숙 세트. 백숙과 누룽지, 메밀전이 함께 나온다. 김현동 기자

내가 가본 많은 다른 삼계탕 전문점에서는 영계와 닭 육수가 곁들여진 전형적인 삼계탕을 판매한다. 하지만 성북동 누룽지 백숙은 그런 곳과는 완전히 다른 삼계탕의 신세계(!)를 보여 준다. 영계 대신 살이 푸짐한 닭을 푹 고아 내어 맛이 깊다.

기본 찬은 겉절이 배추김치, 오이, 고추, 깍두기 등 여타 삼계탕 집에서 볼 수 있는 기본 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하나 같이 신선하고 맛이 좋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누룽지 백숙’은 누룽지가 담긴 큰 솥 위에 닭 백숙이 함께 곁들여 나온다. 살이 꽤 많은 닭에 쫄깃한 찹쌀과 대추 은행 밤 등이 어우러져 나오는데 솥 위에 백숙을 올려두면 백숙과 누룽지 모두 오래도록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나는 먼저 닭의 뼈를 다 제거한 뒤 칼칼한 배추 김치를 곁들어 먹는다. 입에서 살살 녹는 닭고기와 김치가 어우러진 맛이 정말 일품이다.

이 식당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누룽지! 살짝 구어진 누룽지가 바삭바삭해 아주 맛이 좋다. 삼계탕과 곁들어 먹으면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백숙과 누룽지 외에 메밀 전이 한 세트라 서너 명이 같이 나눠 먹을 수 있다. 이 식당의 베스트 셀러이자 내가 가장 즐겨먹는 메뉴이다.

이 곳에는 세트인 ‘누룽지 백숙’ 외에도 단품으로 메밀 전, 메밀 들깨 수제비 등의 다양한 사이드 디쉬가 있다. 이것 또한 꼭 먹어봐야 할 메뉴다. 사실 밀가루에만 익숙했던지라 처음에 메밀은 조금 생소했다. 그런데 얇고 바삭하게 부친 메밀전은 담백한 맛 때문에 자꾸 생각난다. 메밀전 위에 각종 나물을 얹고 돌돌 말아 먹으면 독특한 식감을 낸다.

‘메밀 들깨 수제비’는 누룽지 삼계탕 다음으로 이 집에서 좋아하는 메뉴다. 부드럽게 갈린 고소한 들깨가 입안 가득 퍼지는데, 쫄깃한 메밀 수제비와 한 입에 넣으면 정말 환상적이다. 가끔 매운 메뉴가 간절히 먹고 싶어질 땐 매콤하게 양념한 독특한 풍미의 ‘메밀 비빔국수’를 먹는다.

기사 이미지

‘성북동 누룽지 백숙’의 내부. 보통 삼계탕집과 달리 천장이 높고 벽마다 소나무 그림이 걸려 있어 꼭 갤러리같기도 하다. 김현동 기자

맛 뿐 아니라 식당 내부 역시 보통의 다른 한국 식당과 달리 매우 독특한 편이다. 천장이 높고 그림이 많아 마치 교외에 있는 한적한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특히 창가 쪽에는 벽마다 나무 결을 살린 액자 판에 소나무 그림들이 걸려 있어 더욱 이색적인 분위기를 낸다.

이렇게 다양한 메뉴와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삼계탕이 생각 날 때에는 이젠 항상 이곳만 방문한다. 예약을 받지 않아 식사 시간 때면 사람이 몰려 긴 줄을 서기도 하지만 다행히 비교적 회전율은 빠른 편이다. 직원들 모두 분주한 가운데서도 친절하고 빠르게 서빙을 하기에 방문 할 때마다 언제나 맛있고 기분좋게 식사를 할 수 있다. 또 성북동 끝자락에 있어 도심에서 보기 드물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발렛주차를 무료로 해줘서 가족끼리 편하게 외식하기에도 좋다.

성북동 누룽지백숙 (메밀수제비)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81-1(성북로31길 9)
● 전화 : 02-764-0707
● 영업시간 : 오전 11시30분~밤 10시(명절휴무)
● 주차 : 무료
● 메뉴 : 누룽지백숙 세트(4만2000원), 메밀전(8000원), 들깨메밀수제비(7000원)

이주의 식객

기사 이미지
스테파노 디 살보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호텔 총괄셰프.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으로 15세 때 요리에 입문했다. 방콕·푸켓·상하이의 특급 호텔을 거쳐 2007년 파크 하얏트 서울 총주방장으로 왔다. 미식가 집안에서 자란 한국인 부인을 둔 덕에 한국 음식을 제대로 배웠다고. 한국 그릇을 사모으는 게 취미. 한국인보다 더 한국미를 알아보는 눈썰미가 있다.

자랑질과 허세가 난무하는 인증샷 시대다. 지금 이 순간도 SNS엔 끊임없이 일상을 자랑하는 포스팅이 올라온다. 소셜미디어 분석업체인 다음소프트가 2010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SNS에 올라온 인증샷을 분석했더니 맛집(4만 6017건)이 여행(11만 8632건)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경험’을 자랑하는 포스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디 가서 먹고 노는 걸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잠깐. 이렇게 남에게 과시하려는 노출 욕망은 결국 다른 이의 삶을 훔쳐보려는 관음적 욕망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맛집이야말로 그렇다. 입맛은 정말 제각각인데 남들이 어디서 뭘 먹는지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맛 자체보다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가 궁금해서일지도 모른다.
오늘(10월 5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맛집 소개 시리즈다. 각 분야에서 나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멋스런 삶을 사는 8인의 명사들이 각각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 번 본인이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 이번 주엔 패션 디자이너 요니 P와 정신과전문의 윤대현(서울대) 교수, 모델 이현이, 셰프 스테파노 디 살보가 본인의 개성은 물론 직업적 특성까지 드러낸 독특한 맛집 칼럼을 보내왔다.
의도치 않게 이들의 추천 맛집 리스트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의 외식문화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첫 회에 등장하는 맛집 4곳 중 2곳이 각각 이탈리아와 남아공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처럼 다양한 미식을 선보일 수 있는 도시라는 걸 새삼 알 수 있었다.
안혜리 부장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ahn.hai-r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