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본 문부대신이 또 망언을 했다.
지난7월말 국사왜곡사건에 대해 『불만을 말하는 「놈들」은 세계사중에서 그러한 일을 한 적이 없는가』라는 발언을 하여 크게 문제가 되었던「후지오」가 이번에는 일본의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일합방은 형식적으로나 사실상으로나 양국의 합의 위에 성립되었다. 한국 측에도 얼마간의 책임이 있다』 고 일본의 한국침략행위를 정당화한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누구보다 도덕적이고 지성적이어야 할 한나라 교육의 최고 책임자가 잇따라 이런 발언을 의도적으로 일삼는 일본의 「본심」 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오늘날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과거 인류에게 저질렀던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속죄하는 뜻에서라도 보다 겸손하고 협조적으로 이웃과 세계를 도와야 하는 마당에 걸핏하면 독선과 오만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번 「나카소네」수상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력히 요구하는 자민당 우파의 압력을 받고 신사에는 2차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전범) 들이 있기 때문에 참배할 수 없다고 거절한 일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태평양전쟁은 분명히 일본의 침략이다」 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위선」 이란 당의에 싸인 일본의「본심」을 맛보는 것 같아 식상감을 금할 수 없다.
일본의 문부대신이 거듭 문제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사견이나 개인의 고집스러운 신념을 넘어 은연중에 계산된 무엇이 있다는 음산한 느낌마저 준다.
문교행정의 최고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의 언행은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가령 그의 망언이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서였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틀림없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퍼내티스트의 망상에 불과하다.
오늘날 세계의 여론은 「일본은 이웃이 없는 나라」라고들 한다. 몇 안되는 주변 국가들과 참다운 선린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과거 역사와 함께 그 국민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이웃을 잃고 일본이 과연 진정한 세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으며, 또 민주국가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일본을 위해서도 결코 플러스가 아니다.
역사는 왜곡과 미화만으로 기록될 수 없다. 그런 역사를 배우고 자란 다음 세대들은 또다시 그런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지오」문부상의 발언은 그가 문부상이기 때문에 더욱 엄중한 책임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최근 일본은 경제적 축적을 배경으로 강력한 군국주의 부활의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다.
이 극우 세력들은 이웃이야 무엇이라고 하든 역사를 뜯어 고쳐서도 일본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되살리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민족적·지역적 경계를 초월하여 전지구촌을 포함하는 협력과 이해가 요구되는 시대다. 그런데도 아직 일본은 자국의 경제와 그 이익에만 급급하고있다. 그것은 일본을 위해서도 이웃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