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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부작용엔 눈을 감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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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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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김영란법을 시행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도입 초기의 혼선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정착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가장 심각한 게 ‘관계 단절’과 ‘투명성(공정성) 저하’의 문제다. 인맥이 정상적 절차를 뛰어넘는 부정청탁의 관행을 바로잡고, 이를 통해 사회 전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게 김영란법의 도입 취지다. 그러나 김영란법 대상자 400만 명 중 한 사람으로서 며칠 지내보니 오히려 끼리끼리 문화는 강화하고 투명성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요소가 많다.

 김영란법과 관련한 ‘3·5·10규칙’은 대상자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한 걸림돌은 아니다. 당장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각자 내고 , 안 주고 안 받고 , 과도한 인사치레 를 안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캔커피 하나도 문제 삼을 정도로 지나치게 엄격한 ‘직무 관련성’ 적용 탓에 정작 정상적인 업무와 꼭 필요한 소통을 위축시키는 건 심각한 문제다. 특히 미디어와 관련해서는 규제 사각지대로 우회하는 부작용을 낳을 게 불 보듯 뻔하다.

 가령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 그룹 한국지사는 미디어 대상 신상품 설명회 등 정상적인 홍보활동도 부정청탁으로 비칠 수가 있다며 정통 미디어 대신 김영란법 대상이 아닌 유튜버나 연예인 같은 SNS 인플루언서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구독자를 많이 확보한 1인 미디어 스타는 지금도 한 건에 수천만원의 돈을 받고 콘텐트를 올리면서도 방송법 등을 적용받지 않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이름 난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노골적으로 제품 사진을 올린 후 해시태그(#)에 해당 브랜드와 제품 이름을 노출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디에도 돈 받고 올린 것이라는 표시는 없지만 한 건에 많게는 1000만원까지 받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선 연예인 등 의 SNS 포스팅 역시 돈을 받았다면 광고라는 사실을 밝히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도입한 제도가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투명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정통 미디어의 취재가 위축되는 사이 업체 돈을 받고 제작한 노골적인 광고 콘텐트가 소비자를 호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김영란법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 뻔히 보이는 부작용까지 눈감는다면 문제가 아닐까.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