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 강행 처리로 빚어진 국정감사 파행 사태가 나흘째다. 사상 초유인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 사태도 이어지고 있다.
정계 원로·정치학자 7명에게 듣다
“정 의장이 먼저 이 대표 찾아가야
이 대표, 단식 아닌 대화로 해결을
여당 국감 거부는 국민 배신 행위”
중앙일보는 최악의 국회 공전을 풀기 위해 정계 원로들과 중견 정치학자 7명에게 해법을 물었다. 중앙일보 취재에 응한 원로와 학자들은 ▶새누리당은 즉각적으로 국정감사에 복귀하고 ▶정세균 국회의장은 새누리당에 대한 설득에 나서야 하며 ▶이정현 대표는 단식을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쪽 국감 먼저 정상화하라
국회는 29일에도 야당만의 ‘반쪽 국감’을 계속했다. 새누리당의 전면 보이콧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새누리당 내에선 국감 보이콧 대열에서 첫 이탈자가 생겼다. 김영우 국방위원장이 이날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장에 입장해 사회를 봤다. 새누리당 내 국정감사 복귀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 확산됐다. 김무성·정병국·유승민·나경원 의원 등 3선 이상 중진을 포함한 의원 23명이 이날 긴급회동 후 국감 복귀를 포함한 국회 정상화를 촉구했다. 모임은 나경원 의원이 주도했다.
하지만 정국은 풀릴 기미가 없다. 오히려 확전될 조짐이다. 이날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 129명 전원의 명의로 정 의장이 김 장관 해임안을 처리한 것이 직권남용·허위공문서작성·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며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했다. 해임안 처리를 무효화하기 위해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도 청구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긴급 최고위원회를 주재한 뒤 “새누리당이 법적 근거 없이 정 의장을 형사고발한 것은 법적 질서와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행위”라며 “우리 당도 법적 대응 등 엄중조치에 나설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여당이 국정감사를 안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배신행위”라며 “새누리당은 국감에 즉각 복귀하라”고 말했다. 박명호 한국정당학회장(동국대 교수)도 “당론에 갇힌 ‘정당집단주의’ 때문에 투쟁 일변도인 최악의 상황”이라며 “ 국감을 계속 거부하는 것은 명분이나 실익이 전혀 없고 여론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경식 헌정회장은 “여소야대 4당체제였던 13대 국회(1988~92년)에서도 협상을 중단한 적이 없다”며 “정국안정을 위해 여야는 조건 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의장이 나서라
이날 새누리당 국감 복귀파인 나경원 의원은 회동 후 브리핑에서 “누구보다 더 현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 의장이 나서야 한다”며 “국민의 걱정을 감안해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회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정 의장에겐 새누리당 설득에 적극 나서줄 것을, 새누리당 지도부에는 국정감사 복귀를 해법으로 제시한 셈이다. 원로들과 학자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신경식 헌정회장은 “새누리당의 국정감사 복귀를 위해선 정 의장이 새누리당에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종 전 수석은 “정 의장이 ‘오해가 있었다면 잘못’이라고 한마디 하면 끝날 일”이라며 “정 의장이 왜 자존심 싸움을 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장이 되면 당적을 버리는 건 오로지 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존재하라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윤광일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누구보다 국회정상화의 책임이 큰 국회의장이 먼저 단식 중인 이 대표를 찾아가 손을 내밀어 단식을 중단시키고 타협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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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대표는 극한 투쟁 중단을
이 대표가 “정 의장이 사퇴하거나 아니면 내가 죽겠다”며 극한 단식투쟁에 나선 데 대한 우려도 높았다. 새누리당에선 이날 이 대표 외에 정진석 원내대표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동반 단식에 들어갔다. 한국정치학회장인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내대표 협상이 막히면 여야 대표 채널을 가동해 문제를 풀어야 할 사람이 앞장서 투쟁을 외치면 협상의 가능성을 아예 닫아버린 꼴”이라며 “ 단식을 중단하고, 정 의장과 만나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집권당 대표가 정치적 소수파의 극단적 방식인 단식으로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국회에서 대화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정효식·강태화·박유미 기자 jjpol@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