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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 평창 시상대, 노란 보름달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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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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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 [사진 애슬릿 미디어 www.atmz.co.kr]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적어도 김보름(23·강원도청)에겐 그렇다.

쇼트트랙서 빙속 전향 김보름 선수
스피드·경기운영 능력 모두 갖춰
2월 매스스타트 세계선수권 2위

쇼트트랙에서 좌절을 겪었던 김보름은 스피드스케이팅로 전향한 뒤 꽃길을 걷고 있다. 지난 2월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따낸 김보름의 목표는 뚜렷하다. 499일 뒤 개막하는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시상대 맨 위에서 자신의 머리 색깔처럼 ‘노란’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김보름은 지난 2월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세계선수권 개인 종목에서 여자 선수가 메달을 획득한 건 이상화(금3·은1·동2) 이후 처음이다. ‘평창 올림픽 기대주’란 타이틀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김보름은 “세계선수권이 끝나면서부터 올림픽에 대한 욕심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했다.

김보름은 중2 때 빙상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빙상부 중 달리기를 제일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땅에선 느렸지만 얼음 위에선 빨랐다. 같은 대구 출신이자 2006 토리노 올림픽 쇼트트랙 3관왕 진선유처럼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쇼트트랙 세계 최강인 한국에서 국가대표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 번번이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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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 [사진 애슬릿 미디어 www.atmz.co.kr]

김보름은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선택했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남자부 이승훈(28·대한항공)이란 모범사례도 있었다. 이승훈은 2009년 쇼트트랙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스피드스케이팅에 도전해 2010년 밴쿠버 올림픽 5000m 금메달, 1만m 은메달을 따냈다. 김보름은 “예전부터 스피드스케이팅을 하고 싶었는데 이승훈 선배를 보면서 자신감을 가졌다. ‘나도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고 했다.

2010년 5월, 김보름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서울로 떠났다. 운동에 대한 의욕이 강하지 않았던 김보름이 달라진 건 이때부터였다. 집에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기에 자연스럽게 단체 훈련이 끝나면 개인 연습을 했다. 2011년 마침내 태극마크를 단 김보름은 그해 아스타나·알마티 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3000m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하늘도 김보름을 도왔다. 매스스타트가 평창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다. 매스스타트는 여러 선수가 동시에 400m 트랙을 16바퀴 도는 경기다. 기록보다 순위가 중요한 쇼트트랙(111.1m) 경기를 롱트랙(400m)에서 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김보름은 올림픽 종목이 된 뒤 열린 2015-16시즌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우승했다. 2차 대회에서 넘어져 허리 부상을 당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 2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매스스타트는 쇼트트랙보다 선수 숫자가 많아 몸싸움이 더 치열하다. 키 1m65㎝의 김보름이 자신보다 큰 체구의 선수들과 치열한 다툼을 이겨내는 건 폭발적인 스피드와 쇼트트랙에서 습득한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 덕분이다. 세계선수권이 그랬다. 김보름은 마지막 바퀴까지 5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코너에서 세 명을 제치고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마치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을 연상케하는 스퍼트였다. 김보름은 “쇼트트랙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다. 매스스타트는 내게 구세주 같은 종목”이라고 말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강점이다. 김보름은 “누구나 지는 건 싫어하지 않나. 1등을 해도 기록이 맘에 안 들면 분해서 잠을 못 잔 적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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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위에선 ‘파이터’ 기질이 강하지만 링크 밖에선 조용한 성격이다. 김보름은 “어머니한테도 자주 전화를 안 하는 편이다. TV도 잘 안보고, 연예인들을 잘 몰라서 후배들이 답답해 한다”고 했다. 유일하게 튀는 건 ‘노란 머리’다. 김보름은 “금메달을 의식한 건 아니지만 염색을 한 뒤 성적이 쭉 좋았다. 주변에서도 ‘잘 어울린다’고 해서 노란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며 “올해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당면 목표다. 그 다음? 당연히 평창이다.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라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사진 애슬릿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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