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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 파악·인명구조·측량 … 행정 현장 누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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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12면

1 지난 6월 21일 전북 김제 호남평야에서 열린 ‘융·복합 농업용 드론 시연회’에서 드론이 볍씨를 파종하고 있다. [사진 전북도]

2 지난 22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청사 공사 현장에서 청주시청 직원들이 공사 진행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드론을 날리고 있다. 16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한 이 드론은 100m 상공까지 올라 20분간 공사장 곳곳을 촬영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9일 오전 10시쯤 충북 청주시 오송읍 공북리 야산. 1200만 화소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무인항공기) 한 대가 ‘윙’ 소리를 내며 100m 상공으로 떠오른 후 숲 쪽으로 비행하며 촬영을 시작했다. 드론은 숲 촬영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상에 있는 청주시청 정보통신과 남기철 주무관에게 보냈다. 남 주무관의 태블릿 PC 화면엔 붉은색으로 표시된 고사목 3~4 그루가 나타났다.


10분 뒤 지리정보체계(GIS)와 연동한 또 다른 드론이 솟아올라 고사목들의 정확한 좌표를 찍어 전송했다. 청주시는 이날 소나무 재선충병 확산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드론을 띄웠다. 비행 시간은 20분 정도였지만 사람이 갈 수 없는 골짜기와 숲 구석구석을 촬영했다. 정민영 청주시 산림보호팀 담당은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걸릴 수색 범위를 드론은 20분 만에 완벽히 해냈다”며 “이제 끙끙대며 산꼭대기에 올라가지 않고도 재선충병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드론이 민간은 물론 공공 영역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활약하고 있다. 재선충 지역 파악에서 실종자 수색, 건물 안전진단, 재난·환경 감시, 병충해 방재까지 활동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는 것이다.


지난 7~8월 인천시 중구 왕산 해수욕장과 옹진군 십리포 해수욕장엔 ‘순찰 드론’과 ‘인명구조 드론’이 투입됐다. 순찰 드론은 피서객에게 “안전 라인을 벗어나지 말라”는 등의 방송을 했고, 실제 구조 요청이 접수되면 구명 튜브 3개를 장착한 인명구조 드론이 출동했다. 강원도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에도 드론이 투입됐다.


충북 영동군은 지난 2월부터 산간 계곡 추락 사고, 대형산불 등 재난현장에 드론을 투입하고 있다. 8월 말까지 출동 횟수가 50여 회에 이른다. 지난 5월 금강유원지 산불 당시엔 드론으로 산불 방향을 예측한 뒤 진화팀을 보내 조기에 불을 껐다. 이희자 충북 영동군 안전총괄팀장은 “앞으로는 사람의 체온을 감지할 수 있는 열화상 카메라를 드론에 장착해 야간에도 수색이 가능토록 할 것”이라고 했다.


드론은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구조물의 안전 점검과 환경 감시에도 활용된다. 인천시는 최근 강화도 초지대교(길이 1200m)와 서구 백석교(길이 749m) 안전점검에 드론을 투입했다. 교량 구조물에 드론을 날려 영상·사진을 촬영한 뒤 점검자가 결과물을 살펴봤다. 대구시도 83타워, 유니버시아드 테니스장, 와룡대교 등 대형 시설물에 드론을 띄워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지난 5월 드론으로 대형 택지개발지구 공사장 3곳을 적발했다. 건축폐기물을 제때 처리하지 않고 쌓아놓거나 덤프트럭의 세차 의무를 위반한 업체들이다.


예산 절감 효과도 상당하다. 충북도청 지적과는 지난해 10월 드론으로 청주시 주성동 일대 115만㎡ 부지를 항공 촬영해 측량기사 3명이 보름 정도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끝냈다. 정확도도 높다. 시범사업 결과 사람이 측량한 값과 3㎝ 이하의 차이가 났다. 이원성 충북도 지적재조사팀장은 “측정값 오차가 8㎝ 이내면 실제 적용이 가능하다”며 “드론 측량기술이 본격 도입되면 예산을 50% 이상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충북은 2012년부터 2030년까지 1025억원을 들여 224만 필지(7407㎢)에 대해 지적재조사를 하고 있다.

드론은 농업 분야에서도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6월 전북 김제 호남평야에서 열린 ‘융·복합 농업용 드론 시연회’에서 드론은 볍씨 파종부터 비료·농약 살포까지 차례로 수행했다. 이 드론은 1만㎡의 논에서 5분 만에 농약 살포 작업을 마쳤다. 보통 2명이 한 시간 정도 일해야 끝낼 수 있는 면적이다. 안동환 전북도 친환경유통과장은 “농업용 드론은 급속한 고령화로 인력난에 허덕이는 농촌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2018년까지 과수 병해충 방제에 적합한 드론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적용한 자동비행 방제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도 실종자 수색, 화재 현장 파악 등 공공 분야에 드론이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 우정국은 2014년 민간 기업과 손잡고 우편물 배달용 드론을 개발해 2㎞ 떨어진 곳에 시범 배송하는 데 성공했다. 이스라엘의 무인항공기 업체 어반 에어로노틱스는 응급환자 수송용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상업용 드론은 한발 더 앞서 있다. 미국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은 지난 8일 드론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시범 비행을 했다. 중국 알리바바그룹도 지난 2월 베이징·상하이 도심에서 무게 340g짜리 물건을 드론으로 나르는 시범 운행을 했다.


박관민 한국드론협회 회장은 “카메라 등 하드웨어와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가 결합할 경우 택배·수송·농업·건설 등 무려 200가지가 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7월 항공법 시행규칙상 비행 승인이 면제되는 드론의 무게를 기존 12㎏에서 25㎏ 이하로 완화했다. 일반인이 드론을 날릴 수 있는 전용공역을 22곳에서 올해 29곳으로 늘렸다. 정부는 지난해 말 민간의 드론 산업 지원을 위해 강원도 영월과 부산시 해운대 등 전국 5개 지역에 ‘드론 전용공역’을 만들어 별도의 허가 없이 드론을 날리며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재원 국토교통부 첨단항공과 사무관은 “드론 규제 완화를 통해 드론의 가시권 밖 운행이나 야간·장거리 운행 등의 테스트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드론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특히 안전사고와 사생활 침해 방지 대책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드론은 배터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행시간이 짧고, 추락사고 위험이 있다. 육동일 충남대(자치행정학과) 교수는 “드론을 다양한 행정 분야에 접목할 수 있도록 안전성·운항 관련 규정을 구체화하고 드론 연구개발 예산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주·인천·전주=최종권·최모란·김준희 기자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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