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아탈리 칼럼

우리는 박장대소하다 죽을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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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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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어쩌면 이렇게들 앞날 걱정이라고는 안 하고 살 수 있기를 바라는지….

기후변화, 실업률 증가, 기술 발전의 폐해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싶지 않다. 학교에서 나오는 길이나 비행기를 타러 간 공항에서 테러가 나면 어쩌나 두려워할 일도 없기를 바란다. 우리 국경이나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질 전쟁 걱정을 할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나 시골에서 행여라도 폭동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사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비극적인 시대라는 것을. 흉측한 재앙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비극이 아닌 역사는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잊으려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악을 부정하고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우리는 행복하니까 우리 머리 위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워질 일은 절대 없으리라 여기며, 심각한 일이 우리를 덮치는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고, 남들도 그렇게 믿게 만든다.

그 결과 벌써 몇 달 전부터 우리는 포켓몬 사냥이나 올림픽의 대단한 운동 경기 같은 소소한 주제에 열광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숨기는 중이다. 지난 7월 14일 혁명기념일에 니스에서 발생한 마지막 사건까지 연이은 테러로 긴장 국면이 촉발된 프랑스에서는 몇몇 해변 도시 시장들이 나섰다. 이슬람교 여성 중에는 자신들의 종교적 가치를 지키면서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상체와 팔다리, 머리 일부를 가리는 수영복인 부르키니 착용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옷의 착용을 금지한 것이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수영복의 길이에 대해,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열렬히 토론하는 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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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대선 캠프의 새 후보자 발표에 그 후보자가 돌아온 고참이든 야심 찬 햇병아리든 당을 막론하고 있는 대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정작 그들이 펼치려는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돼야 마땅한데 말이다. 주요 선거 일자가 임박하면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과거에 비해 힘이 약하다. 시장의 논리가 국가의 논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현실 주제를 놓고 행동할 수단이 없으니 이제는 사소한 것들에 연연하고, 국경의 장벽 건설이나 옷 입는 방식 같은 지엽적인 주제들 쪽으로 토론을 몰아간다. 그리고 미디어가 부추겨 놓은 이 주제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주제라고 시민들은 믿고 만다.

그런데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중 어느 것도 우리가 결집해야 할 정도의 일이 아니며, 전부 그저 경박하고 시시한 코미디일 뿐이라는 것을. 끔찍한 불행이 우리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비장하고도 순진하게 우리는 믿어 보려 한다. 우리가 그 불행들을 몰아냈다고. 맑은 정신이라면 단 한순간의 관심도 아까울 테지만 미디어와 사적인 대화 속에 난무하는 이야기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불행을 저 바깥으로 최대한 멀리 몰아냈다고 생각한다.

이다음 테러, 이다음 금융위기, 이다음 가뭄처럼 비극적 역사가 만들어낼 또 다른 재앙이 우리를 정말 중요한 문제 앞에 다시 데려다 놓을 때까지 말이다. 세상은 너무 나쁘게 돌아가고 있다. 진실은 이런 것이고 무엇도 이 사실을 영원히 은폐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금 닥쳐왔던 불행의 물결이 사라지고 그 모든 애도 의식과 예를 마칠 즈음 우리는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지속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방파제를 쌓는 일을 시작하기는커녕 새로운 흥분거리, 또 다른 가상의 스캔들,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경박한 게임을 찾아 나설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행동하지 않기 위해 그것들에 매달릴 것이다.

언제가 돼야 깨닫게 될 것인가. 정치인들은 오로지 정책과 행동에 대해서만 말하고, 기자들은 미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실들에만 관심을 갖고, 기업들은 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정말 쓸모 있는 제품만 생산하도록 요구하는 일을 저버림으로써 우리 손으로 인류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것을. 의미 없는 것들에 연연하는 전략에서 벗어나자.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으니 모든 게 그렇게까지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를 멈추자.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저 또 지나가는 일이라 여겼던 불행의 물결 뒤로 결국에는 마지막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도락(道樂)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영원한 어둠이 내려앉을 것이고, 우리는 걱정도 없이 박장대소하다 죽을 것이다.

그때 가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지 않길 바란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정치는 장기 전략을 최우선 과제로 재수립해야만 한다. 정치는 게임이나 공연이 아니다.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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