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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페셜 칼럼D

대중은 모던, 조영남은 포스트모던?

중앙일보

입력

“제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인데 제가 정통 미술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쩌다가 이런 물의를…”

지난 3일 검찰에 출석한 조영남 씨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그가 말한 “정통 미술”은 대체 뭘까. 그가 자신의 그림 종류로 정의한 ‘팝아트(Pop art)’는 정통 미술이 아니라는 얘기인가?

1960년대의 팝아트, 정확히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보면서 철학자 아서 단토가 “(근대적 관념에서의) 예술의 종말”을 이야기한 이후, 포스트모던 아트(탈근대미술) 혹은 컨템퍼러리 아트(동시대미술)에 더 이상 정통과 비정통의 구분은 없다. 그런데 조영남 씨는 자신이 가수 못지 않게 화가로서 진지하며 각종 경계 짓기에 저항한다고 해왔으면서, 왜 지금은 “정통 미술”이 아니라고 선을 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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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브릴로 박스

조영남 씨는 또 “끼리끼리 노는 현대미술은 대중을 왕따 시키고 대중은 현대미술에 관심을 접으면서 왕따를 시키고 있다”면서 현대미술과 대중의 괴리를 비판해왔다. 과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 간극을 잇는 다리를 자처해온 사람이, 미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념은 아직 탈근대(Postmodern)가 아니라 근대(Modern)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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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여전히 대중이 생각하는 미술가의 전형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모던아트 시대의 반 고흐와 피카소다. 그들처럼 예술가는 순수한 내적 충동에 의해 자신이 재해석한 세계를 고유한 스타일의 손길로 화폭에 구현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작가의 분신으로서 아우라(aura)를 가진다는 것이, 예술에 대한 근대적 관념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근대적 관념의 예술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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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자화상

더 옛날인 중세에는, 예술가는 일종의 장인(匠人)으로서 교회와 귀족의 주문에 따라 건물을 장식하고 종교적·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그림과 조각을 공방 시스템으로 생산했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하지 않았고, 여러 제자 겸 조수와 함께 공동으로 작업했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가들이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고 장인에서 비주얼 인문학자의 위상으로 옮겨가고자 몇 백 년 동안 애쓴 끝에 근대적 예술의 위상이 성립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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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천장화

단토는 근대적 의미의 예술이 탄생한 시기를 르네상스 때부터로 보고,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같은 미술사학자는 좀더 늦은 시기로 보아서, 심지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도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천장화가 아름답지 않거나 훌륭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작가의 영감에 의해 그의 분신으로 창조된 순수한 예술’이라는 근대적 관념의 예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교황의 주문에 따라 성당의 건축 데코레이션이자 종교 프로파간다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화가의 전형대로, 오로지 스스로의 창작 욕구에 따라 자신이 구상을 하고 자기 손으로 완성하는 미술가들의 시대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꽃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미술이 전통적 요소인 미(美)와 술(術), 즉 아름다움 및 테크닉과 가지는 관계는 다소 헐거워지고, 작가의 독창적인 개념이 더욱 중요해지지만, 미술작품은 작가의 손길이 닿은 그의 분신으로 아우라를 갖는다는, 또 그래야만 한다는, 믿음은 더욱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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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의 샘

그런 관념에 처음 도전한 사람 중 하나가 마르셀 뒤샹이었다. 그는 1917년 기성품 변기 하나를 골라 사인을 하고 ‘샘’이란 제목을 붙여 미술전시장에 갖다 놓았다. 단지 튀고 싶거나 욕 먹는 것이 취미여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예술의 정의가 정확히 무엇이냐는 질문 - 뭔가가 미술관에 전시되면 미술작품으로 인정받는 식으로 예술이 제도의 산물이 아니겠느냐는,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즉 그의 ‘샘’이라는 작품은 사실 변기라는 물건이 아니라 이 질문 자체였고, 그래서 컨셉트가 그대로 예술이 되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의 시초로 불리게 되었다.

뒤샹의 후예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브릴로 세제 박스와 캠벨 수프 깡통을 일부러 아무 변형 없이 똑같이 재현해서, 미술이 아닌 일상의 인공 이미지와 미술의 차이를 질문한 앤디 워홀을 포함해서 말이다. 작가의 고유한 손길과 아우라를 중요시하지 않고 단지 개념만을 중시하는 이들의 작품은 모던아트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겨지며 포스트모던 아트 혹은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불리게 되었다.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이 영어이름을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에서 더욱 더 길다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로 바꾼 것도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를 별개의 것으로 본다는 미술사적 관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들 포스트모던 아트는 시각적 구현을 타인에게 맡기거나, 어떤 행위 또는 기성품의 배열로 개념을 실현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창조적 개념이기에, 요제프 보이스(독일 미술가이며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했다. 조영남 씨가 작품의 외주(?)를 “관행”이라며 정당화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조영남 씨가 방송에서 붓을 들고 모던아트적 아우라를 연출하며 소개한 화투 그림이 과연 포스트모던 아트에 해당하는지이다. 미술계에서도 이것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고 논쟁이 치열하다. 내가 만난 어떤 작가들과 평론가들은 회화는 설치미술 및 미디어아트와 달리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한 붓질과 그 붓질에 의해 개성적으로 체현된 작가의 생각 혹은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붓질이 강조된 조영남 화투 그림이 그런 식으로 제작된 것은 상당히 문제 있다고 말했다. 앤디 워홀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워홀은 일부러 붓질의 개성을 제거하고 캠벨 수프 깡통 레이블을 고대로 똑같이 그림으로 그려서, 미술이 아닌 일상의 인공 이미지와 미술의 차이를 질문했고, 바로 그러한 질문, 그러한 컨셉트 자체가 그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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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캠벨 수프

그리고 미술계에서 별로 문제로 삼지 않는, 그러나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조영남씨의 구매자를 포함한 대중은 그가 당연히 모던아트적으로 작품을 창작했다고 생각했으리라는 것이다. 미술계에 있지 않고서야, 한국어에서 ‘현대미술’로 뭉뚱그려지는 모던아트와 포스트모던 아트(혹은 컨템퍼러리 아트. 사실 두 용어는 완전히 일치하는 뜻의 말은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뜻으로 혼용된다.)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의 정규교육에서 빈약한 미술사 교육을 거치고 모던아트적 관념에 익숙한 일반 사람들에게 포스트모던 아트 이론을 모르는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림 한 점 사려면, 아서 단토의 책이라도 읽고서 사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아무래도 구매자 중에는 조씨의 팬이 많을 텐데 그들은 모던아트에 익숙한 세대가 아닌가? (한국의 포스트모던 아트는 80년대 후반부터로 보는 견해가 많다.) 조영남 씨가 ‘현대미술’과 대중의 괴리를 좁히고 싶었다면, “대중을 왕따 시키지 않는 예술”을 원했다면, 그것부터 구매자에게 명확히 했어야 하지 않을까? 조영남 사건과 관련해 내가 가장 불쾌한 부분은 이것이다. 그는 현대미술과 대중의 괴리를 비판해왔으면서도 바로 그 괴리를 이용했다.
컨템퍼러리 아트가 모던 아트와 차별화되는 점 중 하나로, 철저히 컨셉트 위주라는 것뿐만 아니라, 관객의 반응에 의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 또한 맥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있다. 조영남 사건에 있어서 대중의 예술에 대한 인식은 아직 모던아트적 관념에 있다는 그 맥락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문소영 코리아 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