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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롯데 상장 무산 100일…글로벌 성장 동력 꺾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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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이 20일 소환 조사를 받는 등 검찰의 수사가 정점을 찍고 있다. 호텔롯데의 상장이 무산된지도 꼭 100일이 됐다. 원래 7월 상장 예정이었던 호텔롯데는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시작한 지 사흘 만인 지난 6월13일 스스로 상장 신청을 철회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업공개(IPO) 과정은 예비심사부터 4개월여가 걸린다. 따라서 호텔롯데의 올해 안 상장은 불가능하다. 내년 일정 역시 불투명하다.

‘일본 중심 롯데 지배 구조 개선’
신동빈 회장의 회사 개혁안 흔들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목소리도

호텔롯데의 상장은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신 회장이 내놓은 핵심 대책이었다. 현재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 지분의 99.3%를 일본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등 일본 롯데가 갖고 있다. 상장 후에는 이 비중을 65%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때문에 신 회장은 지난 6월 상장 철회 직후에도 “연말 까지는 상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꼭 상장하겠다”고 거듭 밝힐 만큼 상장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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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무산으로 롯데의 글로벌 성장 동력이 꺾였다. 당초 롯데는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 중 약 1조8000억원을 글로벌 인수·합병(M&A)에 쓸 예정이었다. 글로벌 3위인 면세 사업을 1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과 호주의 면세업체 인수를 추진했지만 상장 무산으로 포기했다. 프랑스 파리의 5성급 호텔과 체코 프라하의 190여 객실 규모 호텔, 미국의 골프장 리조트 인수 계획도 접었다.

기존의 유통 사업과 같은 비중으로 키울 ‘미래 먹거리’로 내세웠던 석유·화학 사업의 글로벌 확장에도 제동이 걸렸다. 미국 석유화학기업 액시올을 인수하겠다고 제안서까지 제출했지만 검찰 수사 직후 철회하고, 경쟁 업체인 미국 웨스트레이크사에 내줘야했다. 신 회장은 M&A를 통해 롯데의 몸집을 불려왔다. 해마다 7조원 정도를 꾸준히 투자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현재는 ‘올스톱’ 상황이고, 상반기 일부 투자 현황도 제대로 집계조차 안될 정도로 경황이 없다”고 했다.

‘상장 무산’은 당장 신 회장이 한·일 경영권을 유지하는데도 위협이 되고 있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신 회장을 소환하면서) 일본 주주가 동요할까봐 가장 걱정이 된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가 밝혀지고 형이 정해지면 그에 따라 대응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경우는 수사를 받고 기소되는 것만으로도 경영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혹시라도 신 회장이 구속되면 일본 주주들이 사임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72) 사장을 비롯한 일본인 임원들이 일본 롯데를 이끌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호텔롯데를 상장해 지배 구조가 개선된 이후였다면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줄어 들었을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롯데그룹 관계자는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적폐를 청산해서 상장 절차를 다시 밟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롯데그룹은 “신뢰받는 투명한 롯데가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변화하겠다”고 밝혔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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