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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쉬운 과학만으론 4차 산업혁명 못 넘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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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 과학 영재들의 경연장인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지난 7월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는 종합 1위, 지난달 화학·지구·정보 올림피아드에선 각각 2·3·4위를 했다. 하지만 역대 영재들의 절반 이상은 의대로 진학하거나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파괴적 혁신을 요구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창의·융합형 과학도 배출이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그런데 현행 대입 제도와 교육 풍토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오세정 의원(국민의당)이 어제 내놓은 수능 과학탐구 영역 응시생 자료를 보면 왜 그런 지적이 나오는지를 알 수 있다. 기초과학의 토양인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Ⅱ 선택 비율이 최근 5년 사이 최대 10분의 1까지 급감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출신인 오 의원은 “학생들이 암기를 통해 점수 따기가 쉬운 과탐Ⅰ 과목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를 보면 2012학년도 화학Ⅱ 응시생은 3만6238명(5.58%)이었으나 2016학년도엔 3936명(0.67%)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물리Ⅱ는 2.94%→0.59%, 생물Ⅱ는 11.14%→4%, 지구과학Ⅱ는 3.85%→1.78%로 각각 줄어들었다. 오 의원은 “심화과목 기피는 이공계 학생들의 실력 저하로 이어진다”며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그의 지적대로 심화학습 외면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과탐Ⅱ는 서울대 등 일부 대학만 요구해 모든 학생이 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올림피아드 출전자나 과학고생조차 내신·수능·논술 3중고에 파김치가 돼 기피한다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도 학생부에 기재하면 탈락시키는 코미디 같은 제도 속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같은 창조적 인재가 나오겠는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면 교육 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그 첫 단추가 과학교육 혁신이다. 23년째 시행 중인 수능을 비롯한 대입의 문제점과 암기·필기·점수 만능의 ‘죽은 과학 교실’ 추방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