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과 추억] 몸소 겪은 전쟁·이산 기록한 분단 문학의 큰 별, 소설가 이호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기사 이미지

한국 분단 문학의 큰 별로 평가받는 소설가 이호철씨(사진)가 18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인민군 → 포로 → 월남, 굴곡진 삶
분단의 비극을 세련된 언어로 표현
문인간첩단 사건 연루 한때 투옥

올해 6월 뇌종양 판정을 받은 뒤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고인은 이날 오후 7시32분쯤 가족과 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한국전쟁에 인민군으로 동원됐다. 전쟁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뒤 이듬해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직접 체험한 전쟁과 이산이 그의 소설의 주된 소재가 됐다. 1955년 자신이 직접 경험한 부두 노동자의 삶을 다룬 단편소설『탈향』으로 등단했다. 이후 60여 년간 장편소설 『소시민』,『서울은 만원이다』, 중·단편소설 『퇴역 선임하사』, 『판문점』등에서 전쟁의 고통과 분단의 아픔을 기록했다.

기사 이미지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압축된 필치와 세련된 언어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의 소설은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독일·프랑스·폴란드·헝가리·러시아 등 유럽과 영미권에서 번역 출간돼 호평을 받았다. 2004년에는 독일어로 번역된 소설 『남녘사람 북녁사람』으로 독일 예나대학이 주는 국제 학술·예술 교류 공로상 ‘프리드리히 실러’ 메달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1974년 유신헌법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했다가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문인간첩단 사건은 법원의 재심으로 2011년 무죄 판결이 났다.

고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한국소설가협회 공동대표, 한국문인협회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민자 여사와 딸 윤정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이며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는 광주광역시 국립 5·18 민주묘지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