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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범우사 '思鄕의 念'(196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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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제목에서 범우사의 역사가 물씬 풍긴다. 김대중 전 대통령.국문학자 양주동.영화배우 박노식.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정치인 김상현 등의 글을 묶은 수상집이다. 김 전대통령이 고향을 그리며 쓴 글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썼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고 그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목포에 대한 사랑은 전생명을 바친 사랑이요 피흘린 전우애로 결부된 사랑이다. 나는 내고향 목포를 한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한없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생각한다." 김 전대통령의 글 마지막 부분인데, 지금도 그에게서 이런 글이 나롤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책이 나온 것은 1967년 12월. 출판 등록 후 1년 4개월만의 일이었다. 그때까지도 월간 '신세계'와 '고시계'등에 관여하던 윤형두(사진)사장이 출판사 간판을 메고 이리 저리 떠돌던 신세였기 때문에 첫 작품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도시로, 도시로'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이 뚜렷해지고,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안정애의 '대전 부르스' 같이 애조 띤 유행가가 다시 불리기 시작하던 사회분위기를 잘 겨냥한 기획이었다.

원래 이 책은 '한국저명인사 수상록'이란 제목으로 발간되었으나 출판사가 망하고 그 지형이 인쇄소에 저당잡혀 있었다. 그것을 정우사라는 인쇄소에서 근무하던 서영두씨(홍문각 사장)의 소개로 지형을 사들여 필진 중 일부를 빼고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대중.김상현.양정규씨 등의 원고를 추가로 넣었다. 정치인을 선택한 이유는 이들이 지역구에 뿌리기 위해 책들을 많이 사줬기 때문이다. 이 때의 인연으로 김 전대통령의 '내가 걷는 70년대''대중경제 100문 100답'을 범우사에서 출간했다.

이 수상집을 판돈으로 '자동차 정비고장수리'라는 실용서를 냈는데 예상 외로 많이 팔렸다. 그래도 윤사장은 기술서적 쪽에는 마음이 끌리지 않아 교양서로 방향을 돌렸다. 그 후 범우사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같은 스테디셀러를 포함해 3천여 종을 출판하면서 고전 전문 출판사라는 인식을 심었다. 지금도 5백여 종이 팔리고 있다.

윤사장은 범우사를 운영하면서도 잡지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았다. 1970년 당시 의원이던 김상현씨가 창간한 계간 '다리'에 주간으로 관여하다가 문학평론가 임중빈씨의 논문 '사회 참여를 통한 학생운동'을 게재했다가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잡지는 폐간되는 필화를 겪었다.

이 때를 회고하며 윤사장은 "'사향의 념'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범우사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책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리'로 끝날 잡지 인생을 출판인생으로 더 키워준 책이어서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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