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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모셔야” 10명 중 3명뿐…윗세대보다 못사는 자식 세대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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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가가 노인을 부양하는 제도가 기초생활보장제다. 다만 부모가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녀의 부양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자녀(4인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월 504만원을 넘지 않아야 노모가 국가 지원을 받는다. 이 기준과 관계없이 자녀가 부모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경우 국가 보호를 받는다. 이런 경우라도 인정받으려면 부모가 어릴 때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거나 학대한 경우, 연락을 끊고 사는 등의 사연이 있어야 있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28만2609가구가 자녀의 부모 부양 거부·기피가 확인돼 기초수급자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의 부양 거부(기피)가 1만3340가구, 관계 단절이 26만9269가구다. 매년 이런 집이 늘어 지난해는 5년 전(11만9254가구)의 2.4배로 증가했다.

명절에 되돌아보는 자식의 도리
부모 돌보지 않거나 연락 끊어
노년층 28만 가구가 기초수급자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사는 안모(74)씨는 과거 사업을 하다 망해 자녀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이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졌다. 자식들은 “더 이상 부모에게 휘둘리기 싫다”며 사실상 부양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 조사에서 자녀의 소득이 의외로 높은 것으로 나와 차상위 의료비 경감도 받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부양의무 제도가 “잔인한 조항”이라며 폐지를 주장한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빈곤층의 복지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부양하지 않는 자식 때문에 117만 명의 노인이 사각지대에 빠져 있는 현실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게 발의 취지다. 하지만 박재만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이 조항을 폐지하면 효 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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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양을 당연히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1998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10명 중 9명(89.9%)이 노부모 부양 책임은 자녀(가족)에게 있다고 응답했다. 이게 매년 줄어 2014년 3.1명이 됐다. 대신 정부·사회·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이 2006년 28.4%에서 2014년 51.3%로 급증했다. 30~40대 는 이런 생각이 강하다.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인 데다 사교육비와 주거비 등에 억눌려서다.

부산의 편수진(30)씨 역시 같은 생각이다. “부모 부양은 자녀 형편에 맞춰서 적절하게 하면 된다고 본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자식이 부모를 부양해야 하지만 상황이 어려우면 못하는 거고 여유가 있으면 넉넉하게 돈을 드리거나 모셔야 한다. 부양비도 장남·차남 상관없이 균등하게 부담하는 게 맞다.”

부모가 부양 않는 자녀에게 행동으로 나서기도 한다. 9일 오후 경기도에 거주하는 김모(84)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1년 전 국회 ‘불효자 방지법(민법개정안)’ 토론회에서 자녀들을 성토했고 소송까지 냈다. 1년 만에 생활이 더 악화된 듯했다.

▶기자=할아버지 어떻게 지내세요.

▶김씨=하루 한두 끼 먹어. 복지관 가서 얻어 먹고 살아. 남는 밥을 가져다 아침에 먹어.

어깨·머리·다리 …. 아픈 데를 열거했다. 이날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당뇨약을 타왔다고 한다. 1만3000원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기초연금(20만4010원)을 받고, 복지관 주차관리해서 20만원 벌어. 방세·전기료 내고 20만원으로 한 달 살아.

▶기자=따님한테 “6000만원을 돌려달라”고 소송 낸 건 어찌 됐나요.

▶김씨=증여라고 인정돼서 끝났어 . 부모가 자식한테 돈 주면서 근거를 남기겠어.

김씨는 둘째 딸이 “평생 모실 테니 집을 사서 같이 살자”고 해 6000만원을 줬다. 그 후 딸이 내쳤고 아들은 폭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김씨는 “전화번호를 바꿨는지 통화가 안 돼. 이게 사기가 아니고 뭐냐”고 목청을 높였다.

아쉽게도 재산을 받고 나서 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면 재산을 환수하는 내용을 담은 민법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부양비 소송이 239건에 달했다. 승소율이 높지 않아 44건만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법무법인 강호 장진영 변호사는 “부모 세대보다 자식이 못사는 세대가 처음으로 나온다. 부모 재산을 두고 자식끼리 싸우는 일이 늘 것”이라며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녀에게 재산을 주지 않거나 덜 줄 수 있게 상속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못할 정도면 국가가 나서야 하며 효를 장려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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