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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운|순풍·역풍따라 엇갈린 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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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운칠기삼」이란 말도 있지만 사업에는 운이 따라야 한다.
아무리 경영능력이 탁월하고 뒤가 든든하다 해도 사업운이 없는 기업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제때에 운이 맞아 떨어져 흥성한 기업들도 있지만 꼭 필요한때 운이 따르지 않아 쇠망한 기업들도 많다.
지난해 초 무너진 국제그룹과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성과 1,2위를 다투던 삼호의 경우가 운이 등진 케이스다.
그런가 하면 다른 기업과 합병직전까지 가는 불운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기아도 퍽 운이 좋은 경우로 꼽힌다.
또 최근의 증시활황이나 전자수출붐을 볼때 과거지사를 새삼스럽게 불운으로 여기며 안타까와하는 기업들도 있다. 효성이 그렇고, 대한전선이 그렇다.
○…「3저호기가 1년만 빨리왔어도 국제가 그처럼 허망하게 쓰러지지 않았을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국제는 무역·건설에서 해운·금융·레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업종을 망라한 23개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83년까지만 해도 국내그룹중 매출액순위 6위에 랭크됐던 그룹이다.
국제그룹이 힘없이 해체되고 1년이 지난 지금 국제의 주력업종이었던 신발(국제상사)·철강(연합철강)·기계(국제종합기계)·섬유(국제방직·조광무역·성창섬유)등이 3저의 순풍을 타고 보기드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신발은 올들어 수출이 50%이상 늘어나는등 주문이 밀려 한계수준까지 갔던 신발업체마저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는 상태고 자동차와 기계등의 수출호조에 따라 철강은 없어서 못파는 실정이다.
84년에 57억원의 흑자를 낸 연철이 올해는 몇백억원의 흑자를 낼 것이라는 얘기고 보면 국제가 조금만 더 버텼던들 해체의 비운을 안당했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연철도 참 운수사나운 기업이다. 창업주 권철현씨가 정치적 난기류에 휘말려 국제로 넘어갔다가 다시 동국제강에 넘어갔으나 창업주 권씨는 아직 40%가까운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요즈음 섬유경기가 호황을 맞고 있다.
국제의 섬유계열사였던 국제방직(동방이 인수)이나 성창섬유(동양고무)·조광무역(서우)이 지금은 남좋은 일만 해주고 있으니 모두 다 국제의 불운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제일은행 관리하에 있는 동서증권도 그렇다. 국제의 손에 있을 때만 해도 별볼일 없던 동서증권이 지금은 증시열기에 편승, 올 상반기에만 3백13.5%의 가장 높은 주가상승을 기록했다.
올초만해도 3백60원하던 주가가 연일 상종가를 치면서 6월말에는 1천5백30원으로 올라선것.
○…정부는 80년 국보위시절 사회개혁의 차원에서 과잉·중복투자의 모델케이스로 지목돼온 중화학공업에 대한 대대적인 칼질을 단행한바 있다. 이른바「8·20 중화학투자조정」이 그것이다. 관련기업들의 운을 판가름한 것이다.
우선 현대·새한·기아로 3원화되어있던 승용차 부문을 1원화해 현대로 몰아주고 기아는 5t이하의 소형트럭 및 버스만 전담토록 한다는것.
그러나 새한의 주식 50%를 갖고있던 미국의 GM(나머지 50%는 대우)과 현대와의 통합교섭이 난항에 봉착,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자 이듬해 2월 정부는 소위「2·28」자동차공업합리화조치」라는 것을 발표했다. 내용인즉 현대와 새한의 통합은 없던 일로 하고, 대신 기아를 동아에 합병시켜 5t미만의 트럭과 버스 및 특장차 생산을 전문화한다는것. 또 기아의 오토바이 부문을 대림에 넘긴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기아는 4천억원 가까운 은행부채를 안고 있는데다 누적적자때문에 사실상 자기자본을 거의 잠식당한 상태에 있던터라 동아는 자본금규모에 따른 1대1 합병에 적극 반대하고 나서는 한편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기아측 경영진들은 모두 퇴진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다.
양사의 합병협상이 타협점을 찾지못한채 공전을 거듭하던 82년7월 합병조치가 백지화됨에 따라 기아는 동아에 합병되는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게 되었다. 그후 기아는 오토바이와 승용차생산은 금지되고 5t미만의 중소형 화물트럭과 버스의 생산만 전담케됐다.
기아는 이러한 조치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전기를 마련하는 행운을 잡았다. 사람과 짐을 함께 실을 수 있는 코치류의 봉고차가 레저붐을 타고 날개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던것.
그 결과 80, 81년에 5백억원의 적자를 냈던 기아가 82년엔 39억원, 83년엔 2백91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12월말결산 상장회사중 매출액 랭킹19위(5천6억원), 순익랭킹 5위(1백75억원)로 부상했으니 역시 행운의 여신은 기아편이었다.
○…「8·20 중학학투자조정」에 따라 승용차 시장에서 현대에 밀려 후발업체로 전락하는 불운을 맛본 것이 대우.
현대와 대우는 당시 승용차부문과 발전설비부문을 1원화해서 둘중 하나를 택하지 않을 수 없게되어있었다. 현대가 먼저 승용차를 택했고 대우엔 발전설비가 떨어졌다.
이에 따라 현대양행·현대중공업·대우중공업·삼성중공업으로 4원화 되어있던 발전설비부문이 한국중공업으로 1원화돼 대우에 넘어가게 됐고 대우는 새한자동차의 주식 50%를 현대에 넘겨야 했다.
그러나 대우의 많은 지원요청이 발단이 돼 정부는 3천6백억원을 출자한 대신 한국중공업을 국영화함으로써 결국 대우는 발전설비부문을 잃는 것은 물론 자동차부문에서도 현대에 뒤지는 후발업체로 뒤처지게 됐다.
그때 만일 대우가 자동차를 잡았더라면 오늘날 승용차시장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비교적 현대그룹에는 운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편이었다.
현대의 성장과정은 그룹의 모체인 현대건설이 물같이 일어난 행운으로 설명된다.
재계에 이름도 없던 현대건설이 6·25이후 전쟁복구경기를 타고 서서히 등장하더니 60년대의 개발정책에 따른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하면서부터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또 70년대의 8·3 사채동결조치는 빚에 허덕이던 현대건설에 더할나위없는 행운이었으며 오일쇼크이후 불붙기 시작한 중동건설경기는 현대를 돈방석위에 올려놓았다.
또 중화학조정때 현대가 세상의 예상과는 달리 발전설비대신자동차를 잡은 것도 오늘날 현대를 일으키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한전선이 79년의 제2차오일쇼크와 그에 따른 불경기를 버티다 못해 가전부문을 대우에 넘긴 것은 83년초.
그때만 해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가전경기가 지난해부터 회복세로 돌아서더니 급기야 엔고가 몰고온 수출바람은 물건이 없어서 못팔 상황으로 이어졌다.
대우에 넘어온 가전부문(대우전자)은 지난해 대우그룹 상장회사중 매출액 순위 3위의 주력기업으로 부상했고 43억원의 순익을 냈다. 올해는 수출호조에 힙입어 50%이상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될 정도다.
○…효성그룹은 지난 83년 봄 토지재매입사건과 관련된 위기를 맞아 파격적인 효성그룹정상화방안을 발표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24개 계열기업을 통폐합해 8개로 줄이는 한편 조석래회장 개인 소유의 유가증권·부동산등을 모두 팔아 재무구조개선에 나섰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당시만 해도 자본금 70억원의 별볼일 없던 효성증권을 쌍룡에 팔아치웠다.
그러나 쌍룡투자증권(효성증권을 인수한후 개명)은 요즈음 증권붐을 타고 쌍룡그룹중 가장 유망한 기업의 하나로 자리를 굳혀가고있다.<배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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