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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사기꾼 남자가 마음으로부터 원하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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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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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살면서 품었던 의문 하나. 농부는 땡볕에서 김매며 고추를 가꾸지만 유통업자는 고춧가루에 이물질을 섞어 부피를 키운다. 파도와 싸우며 조업하는 어부와 달리 유통업자는 생선 배 속에 납덩이를 넣는다. 자식처럼 보살피며 소를 키우는 축산업자와 달리 유통업자는 무게를 늘리려 소에게 물을 먹인다. 모든 유통업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속임과 비리가 대체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언젠가 이 지면에서 사기당하기 쉬운 사람의 성격 특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자신이 특별한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나르시시즘, 세상이 좋은 것을 거저 주리라 기대하는 의존성, 내면 환상과 외부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현실 검증력 부재 등이 결합되면 사기꾼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정신분석학은 사기 피해자뿐 아니라 사기꾼의 심리도 연구했다. 1950년대 독일 정신분석학자들은 ‘자기를 거짓되게 드러내는 사람들’을 연구해 그들이 다양한 수준의 성격장애를 갖고 있음을 밝혔다. 사기꾼이 의식적·의도적으로 반사회적 행동, 비리 행위를 범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 정체성이 거짓되게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기 양육자와의 동일시가 온전하게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거짓 자기’를 만들어 가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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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자기로 살아가는 이들이 속임 행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일확천금이나 수퍼카가 아니다.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절박하게 원하는 것은 거짓 자기를 그대로 인정받는 일이다. 거짓 자기를 인정받는다는 말에는 약한 자아를 보호받는 것, 자기애적 만족감을 얻는 것, 중요한 욕구가 충족된 듯 느끼는 것 등의 의미가 포함된다.

카를 G 융의 원형 이론에서는 “마술사 원형이 현대 사회에서는 사기꾼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과학과 합리의 시대가 비전을 풀이하는 마술사의 창의적 기능을 폄훼하는 바람에 사기꾼이라는 왜곡된 형태만 남았다는 것이다. 저 이론에서 핵심은 ‘창의성’으로 보인다.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어떤 작업에서든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힘쓰지만 거짓 자기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방이나 거짓 꾸미기를 선호한다. 작업 과정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은 노동을 통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맛보지만 창의적 요소가 결여된 노동에서는 생생한 삶의 느낌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소에게 물 먹이기, 생선 배 속에 납덩이 넣기 등은 그들이 나름대로 고안해 낸 창의적 작업 요소가 아니었을까, 엉뚱한 의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구한 적이 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