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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그 한 줌의 흙은 티베트인의 고향이자 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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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망명자 2세인 아들 텐진 릭돌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고향 땅을 선물하기 위해 목숨 건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전 세계 수많은 티베트 망명자들에게 고향의 흙을 선물한다.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브링 홈:아버지의 땅’(원제 Bringing Tibet Home, 9월 1일 개봉)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텐진 체탄 초클리 감독은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자신들의 땅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가지고 산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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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 체탄 초클리 감독 & 텐진 릭돌 사진=라희찬(STUDIO 706)


[인터뷰] 그 한 줌의 흙은 티베트인의 고향이자 조국


‘브링 홈:아버지의 땅’ 텐진 체탄 초클리 감독 & 텐진 릭돌

'브링 홈: 아버지의 땅' 텐진 체탄 초클리 감독&텐진 릭돌

티베트 망명자 2세인 아들 텐진 릭돌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고향 땅을 선물하기 위해 목숨 건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전 세계 수많은 티베트 망명자들에게 고향의 흙을 선물한다.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브링 홈:아버지의 땅’(원제 Bringing Tibet Home, 9월 1일 개봉)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텐진 체탄 초클리 감독은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자신들의 땅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가지고 산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1년 10월 26일, 인도 다람살라 TCV 학교 운동장에 20톤의 흙이 깔렸다. 미국 뉴욕에서 현대미술가로 활동하는 텐진 릭돌이 티베트에서 가져온 흙이었다. 릭돌은 망명자로 살다 끝내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고향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티베트 난민들을 위해 ‘우리 땅, 우리 국민(Our Land, Our People)’ 전시를 기획했다.

릭돌은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도 없었고, ‘고향 땅을 밟아 봤으면 좋겠다’는 소원도 들어 드릴 수 없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소원을 이뤄 드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티베트의 흙을 가져와 망명자들이 밟게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흙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릭돌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달했고, “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친구 텐진 체탄 초콜리 감독, 톱텐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목숨을 건 흙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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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홈:아버지의 땅` 스틸. 영화사 제공

흙 프로젝트의 계획은 이렇다. 티베트에서 흙 20톤을 구해 다람살라로 가져오는 것. 짧게는 2주, 길어도 두 달 안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이 프로젝트는 무려 17개월 동안 계속됐다. 텐진 감독은 “흙을 가져오는 게 마약이나 총기를 구입하는 것만큼 위험했다”고 말했다.

“티베트와 가까운 네팔에 갔지만, 비자를 받지 못해 인도 델리에서 육로로 네팔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네팔 사람인 척 카트만두까지 비행기를 타고 넘어갔다. ‘네팔에 사원을 짓는다’고 둘러댔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20톤의 흙을 가져올 수 없었다. 결국 불법 밀수 경로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티베트는 1950년부터 중국의 탄압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독립국이 되지 못했고, 수많은 티베트 망명자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세계 각지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다. 티베트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없다.

중국의 간섭 때문에 네팔과 인도에서조차 티베트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하면 안 된다.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고 흙을 공수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하지만 힘들수록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이 더 강해졌다.” 릭돌의 말이다.

밀수업자를 통해 티베트의 흙이 네팔로 넘어왔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네팔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결국 흙은 또다시 2000㎞를 달리고, 두 개의 국경을 지나, 50개의 검문소를 통과한 후에야 다람살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흙을 밀수하는 과정이 담긴 영상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기록용이었다. 텐진 감독은 “납치되거나 중국 쪽에 잡혀갔을 때를 대비해, 국제앰네스티에 불법적인 의도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촬영한 것이다. 촬영을 계속하며 이 과정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예술이 삶에 전한 작은 위로



흙이 전시되기 전날 밤에야 조심스럽게 홍보용 플래카드를 걸었지만, 입소문이 퍼져 인도 전역에서 수천 명의 티베트 난민들이 찾아왔다. 릭돌은 그 모습이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고 당시의 감정을 전했다.

“망명자 2세인 나는 태어날 때부터 조국이 없었다. 구석에 서서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나라가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싶더라. 원래 나라가 없었지만 ‘정말 내게 나라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결혼식과 장례식이 동시에 이뤄지는 장소에 참석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시 첫날 다람살라 TCV 학교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이 흙을 밟으며 “나 비록 어리지만 열심히 공부할래요. 우리 조국 티베트로 돌아갈래요. 난 어린 학생 티베트의 씨앗. 우리 힘으로 자유를 찾아 티베트로 돌아갈래요” 하고 노래했다.

텐진 감독은 “이곳은 고아원이자 기숙 학교다. 부모님이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자식만이라도 티베트인으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아이를 이곳에 보낸다. 나와 릭돌도 어릴 때 여기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텐진 감독과 릭돌, 톱텐은 달라이 라마의 초대를 받았다. 이 영화에도 그들이 달라이 라마와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릭돌은 “정말 만나고 싶은 분이었는데, 초대받고 깜짝 놀랐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러 갈 때 티베트에서 가져온 흙을 담아 갔다. 그가 흙 위에 ‘티베트’라 적어 줘 가슴이 뭉클했다”라고 전했다.

전시 3일째, 인도 전역에서 전시 기간을 하루만 더 연장해 달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바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인도 정보국에서 당장 떠나라 했기 때문이다. 릭돌의 전시는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과 CNN, 영국의 BBC에 보도됐다.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중국 정부가 모든 상황을 알게 됐다.

“계속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릭돌은 당시 상황이 떠오르는 듯 심호흡한 뒤 말을 이었다. “내 주변의 변호사들이 ‘중국 쪽에 잡히면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인도에서 잡히면 7~9년 정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바로 미국 뉴욕으로 돌아왔고, 톱텐도 더 이상 네팔에 살 수 없어 뉴욕으로 오게 됐다.”

정치적 이야기가 아닌, 한 아들의 사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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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홈:아버지의 땅` 스틸. 영화사 제공

실제로 이 영화의 상영을 막기 위한 중국의 압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티베트 커뮤니티와 연계해 뉴욕에서 극장 상영을 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계획이 취소된 적도 있었다.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중국 쪽에서 ‘정치적 표현이 담긴 광고를 게재하지 말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담당자였던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독특한 소재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며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사부곡이자,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예술로 확장시킨 다큐멘터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충분히 상영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텐진 감독과 릭돌도 “‘브링 홈:아버지의 땅’이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릭돌은 “예술이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라 생각해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이 영화를 통해 티베트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다면 기쁠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현재 릭돌은 5년째 1세대 티베트 난민들이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와 그들이 일할 때 부르는 노래 등을 수집 중이다. “1세대 난민이 몇 안 남았다. 그들이 사라지면서 역사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 자료를 모으고 있다. 2년 정도 더 작업할 예정이다.”


| 텐진 감독과 한국의 인연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AFA(아시아 필름 아카데미) 전 과정을 수료했고, 장학생으로 뽑혀 이듬해 KAFA(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24기)을 전공했다. KAFA 졸업 후 인도에서 티베트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활동했고, 2011년 릭돌을 만나 ‘브링 홈:아버지의 땅’을 촬영했다. 그리고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됐다. ‘브링 홈:아버지의 땅’은 9월 1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텐진 감독은 “한국은 나에게 인도 다음으로 ‘제2의 고향’이다. 나중에 한국에서 친구들과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글=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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