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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웅진 신부가 일군 꽃동네 설립 40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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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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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 꽃동네를 설립한 오웅진 신부(오른쪽)가 8일 오후 ‘꽃동네낙원 묘원’에서 열린 꽃동네 설립 40주년 기념행사에서 박명숙 수녀의 안내를 받으며 기념사를 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76년 방 5칸 '사랑의 집'으로 시작
노인·장애인 등 2000여 명 생활

충북 음성군의 꽃동네를 설립한 오웅진(72) 신부는 8일 꽃동네 설립 40주년을 맞아 ‘거지 성자’로 불렸던 고 최귀동(?~1990)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는 꽃동네 설립 계기를 마련해 준 인물이다. 최 할아버지는 음성군 금왕읍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일제 때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와 음성 무극천 다리 밑에서 걸인 생활을 했다.

오 신부가 그를 만난 건 1976년 9월 무극천주교회에 부임하고 나서다. 오 신부는 “깨진 유리조각과 고철을 챙기고 깡통에 밥을 한 가득 담아 다리 밑 움막으로 향하는 최 할아버지를 따라가 보니 자신보다 불편한 18명의 걸인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며 “당시 1300원이란 작은 돈으로 무극리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 칸짜리 ‘사랑의 집’을 지어 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출발한 꽃동네는 현재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로 성장했다. 82년 3만2000여 ㎡의 부지를 매입하고 그해 익명의 독지가로부터 임야 6만6000㎡를 기증받으면서 지금의 꽃동네 모습을 갖췄다. 꽃동네에는 장애인·노인·어린이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 20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350명으로 구성된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자매회’ 소속 수도자와 800여 명의 꽃동네 직원들이 이들을 돌본다. 국내외 봉사자들도 연간 30만 명이나 다녀간다. 이같은 모델은 해외에도 수출돼 93년 중국에 꽃동네가 만들어진 데 이어 필리핀·방글라데시·인도·우간다·아이티 등 해외 12개국에도 설립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 때 꽃동네를 찾았다. 오 신부는 “교황께서 ‘나는 꽃동네에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며 “꽃동네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작은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나누는 보금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꽃동네는 지금까지 5400여 명의 장례식을 치러 ‘꽃동네낙원(꽃동네 법인묘지) 묘원’을 조성했다. 이곳에는 설립 40년을 맞아 꽃동네 가족과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봉안 시설이 신축되고 있다. 시설의 이름은 ‘추기경 정진석 센터’로 하고 건물 안에서 예배를 할 수 있는 ‘성 니콜라 오 경당’도 만든다.

이날 오후 꽃동네낙원에서 진행된 설립 40주년 기념행사에는 장봉훈 천주교 청주교구 주교, 오스발도 파딜리아 주한 교황청 대사와 전국 꽃동네 회원 및 시설 가족 등 5000여 명이 참석했다.

음성=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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