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젊고 화려해진 시…삶에 지친 가족·일상 그린 소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기사 이미지

시는 화려해지고 단편소설은 일상이 화두였다. 4일 예심을 마친 올해 중앙신인문학상 응모작들의 특징이다. 소설은 1052편 접수됐다. 왼쪽부터 문태준·정끝별·이신조·윤이형·전성태·이수형·김도연씨.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4일 오후 7시. 심사위원들은 초췌해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점심 먹는 1시간을 빼고 꼬박 8시간, 깨알 같은 활자의 응모작들을 들여다 본 탓이다. 소설은 감동적이지만 사람은 웃긴 전성태(47)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벌써 노안이 온 일부 심사위원들이 특히 고생이 심했다.” 물론 자신도 포함해서다. 제17회 중앙신인문학상 예심 심사장의 풍경이다.

시 758명, 소설 1052편, 평론 28편 심사
독특한 세계 가진 신세대 응모 많아
다채롭고 넓은 대신 깊이는 덜해

‘문단 최대의 가을 등용문’인 중앙신인문학상은 올해 응모작이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단편소설은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000편이 넘었다. 모두 1052편. 시는 758명이 응모해 숫자도 많았지만 작품 수준이 대체로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심의 마지막은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예심평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말의 성찬’ 속에 최근 한국문학의 경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다. 직접 인용으로 그 분위기를 전한다.

올해 시 예심은 정끝별·문태준 시인, 소설 예심은 소설가 김도연·전성태·이신조·윤이형씨, 문학평론가 이수형씨가 맡았다. 평론 예심은 평론서도 낸 정끝별씨, 이수형씨가 했다. 평론 응모작은 28편이었다. 당선작은 중앙일보 창간 기념일인 22일 즈음 신문지면을 통해 발표한다.

◆ 시 부문: 강박관념 없는 세대의 등장

문태준(이하 문)=1990년대생 젊은 응모자가 특히 많았다. 상당수가 자기세계가 독특하고 완성도도 높아 보였다. 다만 사적인 연상을 내장한 작품이 많았다. 작품 안에서 화자의 속마음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마련인데, 젊은 응모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굉장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진전시키다 보니 왜 이런 생각이 촉발됐을까, 하는 점이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경우가 많았다.

정끝별(이하 정)=언어들이 굉장히 매혹적이고 화려한데 태준씨 얘기처럼 왜 그런 생각이 촉발됐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인지 집중해서 다시 읽어 보면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시가 많았다.

문=작품들이 파편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극적이고.

정=파편적인데 비약적으로 연결을 잘한다. 상상력이나 시적 호흡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세대만 해도 사유든 감각이든 깊이 들어가는 걸 선호하는데 이 친구들은, 21세기적 특징일 텐데, 휙휙 건너뛴다. 화려하고 다채롭고 넓게 퍼지는 대신 깊게는 안 간다. 응모작의 절반 이상은 인터넷에 올려진 행갈이 잘 된 감각적인 시 같은 느낌이다.

문=어쨌든 이렇게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시쓰기를 익힌 창작층이 있다는 건 고무적이다. 차츰 자기 스타일을 찾을 것 같다.

정=시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이 없는 세대다. 시의 규범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언어를 무서워하지 않고 잘 반죽한다.

◆소설 부문: 일상의 복귀, 고개 숙인 남성

전성태(이하 전)=가족이 중심이 된 일상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아주 밝지는 않지만 자기 삶을 추스르려는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다. 다만 문장이나 문체가 스타일리시한 응모작은 많지 않다.

이신조=대학 강의를 나가다보니 습작품을 많이 보는 편인데 이야기 이외에 소설의 다른 요소들이 부족해 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미학적으로 가공하기보다 자기 사연, 이야기를 그대로 쓴 듯한 느낌이다.

윤이형=이야기들이 활기차고 재미있다기보다 대체로 무기력하고 지쳐 보였다.

전=인간 관계가 갈등으로 파탄나기보다 스스로 자멸해가는 느낌의 작품도 있었다.

이수형=여성 문제, 크게 보면 부부 문제, 가정 내 폭력을 다룬 작품들이 늘어난 것 같다.

김도연(이하 김)=자기도 모르게 삶이 금이 가는 소시민을 그린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소설 속 남편들은 갈수록 무기력해진다.

이수형=남성 무기력의 시작은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다.

김=어떤 여성 철학자가 그랬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할 일이 없으니 쪼잔해지고 찌질해졌다는 얘기다. 그런 느낌의 남자들이 응모작에 나온다.

이신조=응모자가 활자매체뿐 아니라 영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 느낌의 작품이 많다. 그런 사람의 글은 리듬이 다르다.

김=인터넷 소설 같은 응모작도 많은데 아직 문단 에 들어오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이수형=소설은 결국 언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문장력이 달리는 작품이 많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