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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인류] 밀레니얼 세대, 누구냐 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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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대든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신기하고 새로운 인류다. 세기말 1990년대에 20대를 맞았던 70년대생들은 놀 땐 놀 줄 알고 ‘나 자신’에 집중한다는 특징만으로도 기성 세대와 비교하여 신인류, X세대라 불렸다. 그랬던 X세대가 이제 기성 세대가 되었고, 새로운 신인류 ‘밀레니얼 세대’와 맞닥뜨렸다.

밀레니얼 세대가 지금 소비 문화의 중심이다보니 여기 저기서 이들을 분석하고 연구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정작 ‘특징이 없다’는 게 그들의 특징이다. 하나의 틀에 넣을 수 없을 만큼 작고 소소한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도 풀이할 수 있겠다. 그런 수수께끼 같은 밀레니얼 세대라도 분명 어떤 기호를 갖고 있고 어떤 트렌드를 선택해서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을까. 우선 패션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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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패션 브랜드 '베트멍'을 카피한 유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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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과 ‘유머감각’으로 젊은층과 소통하는 패션 브랜드 베트멍.

뎀나 바잘리아. 만약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데 아직도 이 이름을 모른다면 스스로 게으른 게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1990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공화국 그루지아 출신인 35세의 패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몇몇 친구가 의기투합해 만든 베트멍이라는 브랜드가 주목받은 것부터 시작해 지난해 10월엔 프랑스의 럭셔리 패션하우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까지 발탁되었다. 패션 평론가들의 용어를 빌자면 해체주의, 신비주의, 스트리트 힙 스타일 등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쉽게 말하자면 바잘리아가 보여준 베트멍의 룩은 놀랍도록 ‘현실적’이었다. 그는 온라인 패션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베트멍의 공동 디자이너들)가 처음 만났을 때 다들 너무 힘들고 지쳤다는 걸 알았어요. 패션이 유머 감각을 잃고 있었으니까요. 그냥 동시대적인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오늘과 맞닿은, 오늘과 소통하는 그런 옷이요. 우리가 만드는 옷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라면 ‘현실감’이죠. 현실 속의 옷이란 입었을 때 기분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오늘날 글로벌 패션의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는 바잘리아의 발언은 묘하게도 대한민국 밀레니얼의 마음을 정곡으로 찌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의 10대, 20대, 그리고 30대 초반 젊은이들은 때론 본격적인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담과 좌절부터 배우기도 한다. 성장이 급속도로 더뎌진 사회에서 젊은 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원래 극히 제한적이다. 꿈조차 사치가 되어버렸으니 이 세대가 바라는 것은 당연히 지극히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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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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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티크

그래서 소박하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 결혼생활을 택하느니 차라리 혼술혼밥(혼자 술 먹고 혼자 밥 먹기)을 하며 홀로 조용히 즐기는 삶을 택한다고 한다. 그들은 그래서 스타일도 지극히 소박하고 현실적인 걸 선호한다. 명품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열광하고 이를 좇았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스스로 소신있게 스타일을 고르고 꼬리표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절약부터 하고 봤던 그들의 조부모 세대와도 또 전혀 다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작은 사치(스몰 럭셔리)로 스스로를 만족시킨다면 얼마든지 주머니를 털 용기와 소신이 있는 인류들이다. 때론 십만원이 넘는 향초, 그리고 조말론런던이나 딥티크, 불리1803 등 흔하지 않아서 ‘니치 향수’라고 불리는 브랜드들이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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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 몬스터는 합리적인 가격과 신선한 개성을 특징으로 하는 ‘스몰 럭셔리’ 콘셉트로 인기 몰이중이다.

밀레니얼들의 스마트하면서도 소신있는 소비 습관으로 급부상한 브랜드들이 있다. 젠틀 몬스터가 대표적이다. 딱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컨템포러리한 감각과 합리적인 가격대의 선글라스 제품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패션 주요 마켓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물론 셀렙들의 착용(대부분 자발적 착용이었다고 한다)으로 인한 스타 마케팅이 주효했으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할 줄 알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서 손에 쥐어주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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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조회수 200만을 넘긴 투쿨포스쿨 광고. 여학생에서 무당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마스카라를 잘 바르려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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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브랜드 중엔 투쿨포스쿨(Too Cool For School)이라는 브랜드가 딱 그렇다. 아시아는 물론 북미와 남미, 유럽까지 K뷰티가 거친 항해를 리드하고 있는 요즘 가장 강한 개성을 발하고 있는 브랜드다. 전 세계 뷰티 멀티숍 중 최고인 세포라는 물론 파리의 패션 성지로 불리우는 콜레트 스토어, 그리고 최근에는 웬만한 럭셔리 브랜드도 입성하기 까다롭다는 파리 시내의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까지 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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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공룡을 캐릭터화한 디자인. [동영상 캡처]

스스로를 ‘컨템포러리 아트 코스메틱 브랜드’라고 정의할 만큼 투쿨포스쿨은 브랜드의 패키지 디자인부터 광고 등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까지 그 독특한 브랜딩에 섬세한 공을 들이고 있다. 고층빌딩을 등에 이고 있는 귀여운 공룡에 ‘다이노플라츠’라고 이름 붙여 캐릭터화한 디자인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감각적이고도 개성있게 다가갈 수 있었고, 탄탄한 제품력과 결합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유명 스타를 한 번도 내세운 적 없지만 밀레니얼들이 좋아할 만한 강렬한 디자인적 아이덴티티만으로도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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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조회수 200만을 넘긴 투쿨포스쿨 광고. 여학생에서 무당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마스카라를 잘 바르려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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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투브 조회수 200만을 넘긴 마스카라(트위스티테일 마스카라) 광고 하나만 봐도 투쿨포스쿨이 얼마나 대담하게 틀을 깨는 전략을 쓰는지 알 수 있다. 여학생에서 무당까지 각종 부류(?)의 여성들이 어떡하든 마스카라를 잘 발라보려고 사투를 벌인다. 배경 음악으로 장사익의 ‘이게 아닌데’가 흐른다. 보고 있는 동안 그야말로 ‘이게 뭔가’ 싶다. 기존 뷰티 브랜드의 마스카라 광고와 비교하면 상상도 못할 비주얼이다. 그러나 여기에 밀레니얼들은 열광한다. 가장 현실적으로 가장 날 것의 느낌을 당당하게 거짓없이 보여주는 태도, 그게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톤앤매너’다.

딱 이렇게 접근한 방송 드라마도 있었다. JTBC의 ‘청춘시대’다. 제목 만큼은 밀레니얼 세대적 감각이 떨어지지만 12부작 모든 에피소드마다 요즘 20대 젊은이의 고민과 갈등과 사랑과 미움과 현실을 과장이나 포장없이 소소하고 고스란히 담아 전달했다.

모바일에서의 콘텐트 소비 트렌드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다. 자고 일어나면 몇 개씩 생기는 SNS 기반의 모바일 매체들은 10대와 20대들이 좋아할 만한 현실적이게 ‘병맛’인 콘텐트를 쏟아내고 있다. 72초 드라마, 딩고 등이 이미 주목할 만한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늦었지만 주요 방송사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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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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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방송장면을 패러디한 JTBC 장성규 아나운서의 ‘짱티비씨’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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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눈에 띄는 신생 매체 하나는 JTBC 장성규 아나운서가 과감하게 1인미디어 BJ로 변신한 ‘짱티비씨’다. 앵커로 가는 버젓한(?) 길목에서 기성 세대가 아직까지 과소평가하는 ‘온라인 매체’를, 그것도 1인 미디어 형식으로 제작해보겠다고 나선 용기가 대단하다. 최근 디지털 콘텐트의 트렌드를 스마트하게 포착하여 코믹하면서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톤앤매너로 접근하는 짱티비씨 채널은, 앞으로 보도성 뉴스 콘텐트를 어떻게 밀레니얼 세대 입맛에 맞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름 기대를 걸게 한다.

저성장시대에 태어나 이제 소비 문화의 중심에 선 밀레니얼. 그들은 LTE 속도를 타고 쏟아지는 디지털 환경을 물처럼 마시며 성장해왔다.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로 문화와 콘텐트를 소비하고 어떤 이유로 구매 의사를 확정짓는지부터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더하여 꾸미지 않은 정면승부적 현실감각과 ‘있어보여야 하는’ 비주얼 감각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밀레니얼 세대 마음을 사로잡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닐까.

ELLE 편집담당 강주연

※ 이번 8월 10일을 시작으로 격주 수요일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섹션 '강남인류(江南人流)'가 옵니다.

평소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연히 시 창작 수업 내용을 시 형식으로 정리한『이성복 시론』을 펼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시'와 '시인'이라고 쓰여진 자리에 '기사'와 '기자'를 대신 써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성복 시인은 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상정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뭐 다르겠어요. "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

시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장황하게 시론(詩論)에 대해 늘어놓는 건 10일 독자 여러분들에게 처음 선보일 중앙일보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섹션 江南人流(강남인류)를 만든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소속 기자들의 마음가짐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언론환경을 탓하거나, 거꾸로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신문이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 고루한 접근을 하는 대신 오로지 독자가 원하는 것을 담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았습니다.

제호 江南人流에서 江南(강남)은 지역적 의미를 넘어 차별화한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로 썼습니다. 결국 江南人流란 남다른 취향과 눈높이를 가진 사람들(人)을 위해 일류(一流)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담은 신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10일부터 기존의 江南通新과 번갈아가며 격주로 발행하는 江南人流, 앞으로 기대해 주십시오.

안혜리 부장·라이프스타일 데스크 ahn.hai-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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