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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암벽타기, 퍼즐 푸는 것처럼 멘털 중요…가끔은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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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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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의 인공 암벽을 오르는 시라이시 아시마. 그는 “여섯 살 때 암벽 등반을 처음 봤는데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m 높이의 인공 암벽 아래 붉은색 꽃무늬 바지를 입은 앳된 얼굴의 소녀가 서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동안 암벽을 바라보더니 마침내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어느새 절반 이상을 올랐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가벼운 움직임은 현란한 춤사위를 연상케 했다. 이내 꼭대기에 오르자 주위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그제야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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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에 오르기 전 손에 초크를 바르는 시라이시

지난달 31일 서울 금천구의 실내암벽등반장에서 세계적 클라이머(Climber·암벽 등반가) 시라이시 아시마(白石阿島)를 만났다. 올해 15세인 일본계 미국인 소녀에겐 ‘스파이더 걸(Spider Girl)’ ‘천재 클라이머’ 같은 별명이 붙어 있다. 그는 어떤 여성도 오르지 못한 최고난도의 암벽을 차례로 정복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 클라이밍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벌써부터 거론된다. 지난해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에도 뽑혔다. 뉴욕 맨해튼의 루돌프 슈타이너 스쿨 9학년인 시라이시는 바로 전날 2박3일 일정으로 클라이밍 홍보차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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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암벽 코스 중 하나인 스페인 산타리냐의 ‘오픈 유어 마인드 다이렉트’를 등반하는 시라이시. [사진 시라이시 아시마 인스타그램]

등반 전에 한참 벽을 바라보던데.
“클라이밍은 몸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멘털이 중요한 운동이다. 나에겐 클라이밍이 마치 퍼즐을 푸는 것과 같다. 암벽에 오르기 전 퍼즐을 어떻게 풀지 생각하는데, 정상으로 가는 답을 빨리 찾는 편인 것 같다.”
암벽 오를 땐 어떤 생각을 했나.
“아무 생각도 안 했다. 자칫하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머리를 비우려고 노력한다.”
클라이밍은 어떤 운동인가.
“걷거나 뛰는 것,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운동이다. 바위는 세계 어디든지 다 있고, 특별한 기술을 배울 필요도 없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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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의 잘 발달된 어깨와 등 근육. [사진 시라이시 아시마 인스타그램]

암벽을 타다 보면 무섭지 않나.
“가끔은 굉장히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아래를 보며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걸 느끼는 순간 자신을 의심하고 실수를 하게 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클라이밍에만 집중하고 계속 오르려고 한다.”
부상을 당한 적은 없었나.
“지난달 15m 높이에서 맨바닥에 떨어졌다. 가슴과 등의 통증이 2주 정도 갔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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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등반 중 손가락을 다쳤다. [사진 시라이시 아시마 인스타그램]

그렇게 위험한데도 클라이밍을 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동작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래서 클라이밍을 사랑하고 즐기게 됐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시라이시가 클라이밍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여섯 살 때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에서였다. 전위무용가인 아버지 시라이시 히사토시(白石久年)는 “공원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거길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아시마가 재밌어 하기에 장난삼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른들이 3년 동안 해야 될 과제를 석 달 만에 성공했다”고 기억했다.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손가락 힘이 강하고 유연성이 좋다. 다리도 굉장히 많이 올라간다.”
손끝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모르겠다. 특별한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몽키바(구름 사다리)를 아주 잘했다.”
손가락으로 얼마나 무거운 것까지 들 수 있나.
“무거운 물건은 잘 들지 못한다. 그 힘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자신만의 훈련법이 있나.
“훈련을 하면서 부상을 당한 친구를 많이 봤다. 그래서 클라이밍만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 단, 부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스트레칭이 중요하기 때문에 클라이밍을 하기 전과 후 10분 정도 충분히 스트레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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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끄라비 라일레이 비치 인근의 자연 암벽에 매달린 모습. [사진 시라이시 아시마 인스타그램]

시라이시는 2010년부터 5년 연속으로 미국 볼더링시리즈 유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러다 지난해 스페인 산타리냐에 있는 암벽 ‘오픈 유어 마인드 다이렉트(Open Your Mind Direct)’를 정복했다. 남성 클라이머도 극소수만 성공했을 정도로 어려운 코스를 10분 만에 오른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일본 규슈의 최고난도(V15) 볼더링 코스인 호라이즌(Horizon)을 정복한 최연소이자 여성 최초의 클라이머가 됐다.

‘오픈 유어 마인드 다이렉트’에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나.
“나 자신도 굉장히 놀랐다. 워낙 어렵다는 얘기를 들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4일 동안 코스를 연구한 끝에 정상에 올라 정말 행복했다.”
다음 목표는 어디인가.
“어려운 자연 암벽 코스를 하나씩 오르는 게 목표다. 그런 코스들을 계속 정복해 나가면서 여성 클라이머로서 역사를 만들고 싶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클라이밍을 하기 전부터 언젠가는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겠다는 꿈을 꿨다. 어릴 때는 올림픽을 목표로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금메달 꿈을 꿀 수 있게 돼 정말 기뻤다.”
미국과 일본 중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던데.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시라이시는 쉬는 시간을 틈타 스마트폰을 만질 때는 또래의 여느 소녀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들른 곳이 “애견 카페”라고 했다.

애견 카페는 어떻게 알았나.
“미국에 있는 한국인 친구에게서 애견 카페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가봤는데 정말 신기했다. 강아지는 좋아하지만 부모님이 키우지 못하게 하신다. 대신 그곳에서 즐겁게 놀았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때인데 거친 손을 보면 속상하지 않나.
“나도 친구들처럼 패션이나 외모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할 땐 무언가 하나는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희생이 나한테는 아름답지 않은 손이 될 수도, 작은 상처들이 될 수도 있다.”
평소엔 어떻게 지내나.
“롱보드 타는 것을 즐긴다. 요리도 자주 하는데, 일본 요리나 이탈리아 음식을 주로 만든다.”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나.
“전 세계를 여행하며 클라이밍을 하고 싶다.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나 젊은 클라이머들, 심지어 클라이밍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
[S BOX] 세계 최고난도 암벽, 유명 클라이머도 수십 차례 등반 끝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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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에 암벽을 오르는 중국인 남성이 묘사돼 있을 정도로 암벽 등반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암벽 등반은 인간이 오랜 세월 험준한 자연을 극복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15세 ‘천재 소녀 클라이머’ 시라이시

스포츠로 즐기는 자연 암벽 등반에선 코스 길이와 등반 기술 수준 등을 따져 난이도를 결정한다. 국내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게 미국의 ‘요세미티 10진법 분류체계’다. 난이도를 가장 쉬운 5.0에서 최고 등급의 5.15까지 나눴다. 중급자 이상이 도전하는 5.10부터는 숫자 뒤에 a~d를 붙여 난이도를 더 세분화했다. 시라이시 아시마가 오른 ‘오픈 유어 마인드 다이렉트’는 5.15a 수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등반 가능한 클라이머가 몇 안 된다.

현재 최고 난이도인 5.15c로 평가받는 루트는 스페인 올리아나의 ‘라 두라 두라(la dura dura·사진)’다. 2013년 이곳에 누가 먼저 오르나를 두고 최고 등반가인 크리스 샤마(미국)와 아담 온드라(체코)가 시합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둘은 무려 9주 동안 수십 차례 등반을 시도했고, 결국 온드라가 먼저 정상에 올랐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 클라이밍은 자연 암벽이 아닌 인공 암벽에서 실력을 겨룬다. 1968년 영국 리즈대학에 최초의 인공 암벽이 설치된 이후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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