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포스텍 김도연 총장의 파격 실험을 주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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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공계 특성화 대학인 포스텍(POSTECH·포항공대)의 파격 교육실험이 대학 사회에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김도연 총장이 엊그제 “지금 같은 낡은 시스템으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울 수 없다”며 변혁을 선언한 것이다. 올해 개교 30주년을 맞은 포스텍의 혁신안에는 입시, 교수 임용, 학사 개편 등이 망라돼 있다. 대학이 단순 교육·연구 기능을 넘어 산업계와의 협학으로 경제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배어 있다.

 김 총장은 신입생 선발 방식부터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내년부터 신입생 320명 전원을 학과 구분 없이 단일계열 ‘무(無)학과’로 선발한다. 올해도 그런 식으로 70명을 뽑지만 이를 전면 확대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2학년 진학 때 100% 원하는 전공 선택이 가능해 11개 학과의 칸막이가 사실상 없어진다. 학과 쏠림 현상에 대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초·응용과학 전공을 융합하기로 했다. 교수들이 전공 이기주의를 버려야 인공지능(AI)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비스 허사비스 같은 인물을 배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교수 채용 방안은 더 파격적이다. 향후 4년간 전임 272명 중 150명이 교체되는데 이 중 30%인 50명을 기업체가 원하는 ‘산학 일체 교수’로 임용한다는 것이다. 기업 추천 인력을 채용하고 인건비는 절반씩 부담하는 국내 최초의 시도다. 꼭 박사학위가 없더라도 산업체 연구 실적 등 실력만 보고 뽑겠다고 한다. 교수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순혈주의를 깨고 실용적 산학을 구현할 방안이 아닌가.

 물론 규모가 작은 포스텍의 실험을 일반 대학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세계 100대 대학에 겨우 한두 개 들어가는 게 우리 현실인데 언제까지 기득권에 취해 구닥다리 시스템만 고집하려는가. 뽑는 경쟁에서 가르치는 경쟁, 전공 이기주의에서 개방형 융복합, 간판보다는 실력 중심으로 격변하는 게 세계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이다. 김 총장이 그런 현실을 다시 일깨워줬다. 대학 사회가 ‘남의 일’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