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덮어두어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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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려운 시대를 사는 민족일수록 보다 원대하고 웅혼한 미래전망을 생각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학교 교육의 교과목들도 마찬가지다. 당장 우리의 생활에 밀접한 연관이 있고 대학입시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그것만 중시하고 나머지의 과목들을 무시하다 보면 그런 교육을 받은 우리들 2세들의 미래는 어쩌면 더욱 답답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우리 교육에서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있듯이 독·불·중국어 등 제2외국어의 기피 현상이라든가 기본적 자연과학 과목인 물리나 화학의 외면 현상에 못잖게 세계사 과목의 방치도 그런 우려를 자아낸다. 엊그제 열렸던 「역사교육의 이념과 현실」을 주제로 한 역사학자 대회에서 세계사 과목의 소홀 현상이 논의된 것도 그런 우려의 표현이다.
물론 우리 중·고교 교육에서 역사교육 전체가 무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감격도 있고 민족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려는 정책의 배려도 있고 해서 국사교육은 그런 대로 중시되고 있다.
그러나 국적 있는 교육의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한 국사과목 중시는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에 비례해서 있어야할 「세계 속의 시민」의식을 고취하는 교육이 외면되고 있는 것은 역시 문제일수 밖에 없다.
국사교육의 지나친 강조가 잘못하면 편협하고 폐쇄적이며 「우물안 개구리」 인간을 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사와 민족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나머지 인류의 보편적 가치지향이라든가 세계시민의 원숙한 문화감각을 고의로 도외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상 지난 시대 우리 정치의 현실에서 「한국적 민주주의」의 구현을 강조하면서 보편적인 역사법칙과 인류의 자유권에 대한 제한을 강요하며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했던 것도 그런 편향된 교육의 소산이다.
올바른 국사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세계사 속에서 한국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하며 그런 의미에서 세계사 과목의 소홀은 문제일수 밖에 없다. 일반 중·고교의 수업에서 세계사 시간이 절대 부족함은 물론 특히 실업계 고교에서는 세계사를 선택으로 해서 전혀 배우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조차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세계사 과목은 교과서도 중학에 1종, 고교에 5종으로 선택의 폭이 좁을 뿐 아니라 그 교과서도 일본의 낡은 교과서를 답습하는 경향이 커 문제다.
일본인의 시각으로 세계사를 본다거나 구미인 중심의 세계사 서술을 금과옥조로 할 때 우리 민족을 포함하는 제3세계, 소수민족의 역사적 입장을 몰각하고 말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들을 놓고 볼 때, 중·고교 교육에서 세계사 교육을 중시하고 확대할 필요는 커진다.
특히 수출입국이란 국가목표나 개방체제의 당위를 부르짖는 우리들이 적극 국제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세계시민의 사고와 안목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나 세계사의 교육은 단지 세계 시민상을 목표로 하는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우리의 현실적·사회적 요구를 해소할 폭넓은 역사의식을 고취하는데 더 유용하리라 믿어진다.
그 점에서 우리 중·고교 교육에서 세계사 등 교과목 배분정책의 재고가 시급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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