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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부동산 과열 잡는 가계빚 대책 더는 미룰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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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25일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내놓은 뒤 부동산시장이 오히려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투자 열기가 목동·노원 등 다른 지역으로 번지고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연말까지 지난해와 비슷한 18만여 가구의 아파트가 공급돼 정부 대책을 무색하게 하는 ‘분양 열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투기 막을 최소 장치 전무한 상태
미국 금리 인상 신호 빈번해져
거품 꺼진 뒤 재앙 책임질 건가

알맹이 없는 맹탕 가계부채 대책이 낳은 당연한 결과다. 발표 전만 해도 많은 전문가와 시장 참여자들은 투기적 가수요를 억제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했다.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 재당첨 제한을 포함한 청약자격 강화, 집단대출에 대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 가운데 한두 가지는 포함될 것으로 봤다. 그런데 가계부채 관리의지 자체를 의심케 하는 쭉정이 대책이 나왔다.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가계부채보다 중시한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가계부채 대책이 아닌 부동산 대책 같다” “부동산가격 하락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신호”라는 반응이 나왔을까.

1257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국내총생산이나 가처분소득과 견준 가계부채 비율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상반기에만 54조원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빚내서 집 사라’고 권하는 정책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급격하게 늘린 탓이다.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이나 가계소득의 서너 배에 달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고 정상적이지도 않다. 자칫하면 부동산이 경제 전체를 침몰시키는 재앙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동산 경기가 갑자기 얼어붙으면 곤란하다’고 되뇔 뿐이다. 부동산 과열을 미리 제어하지 못하면 국가 경제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듯하다. 2008년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나기 전까지 미국 경제관료들도 “경제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태평가를 불렀다.

부동산시장은 경기의 선행변수가 아닌 파생변수다. 경기가 좋아야 값이 오르고 거래가 활성화된다. 반대로 부동산을 통해 전체 경기를 살리는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내수 위축과 같은 후유증이 두드러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편법을 너무 오래 썼다는 자성도, 문제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내 임기에만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무책임과 안일함이 감지될 뿐이다.

세계 경제는 또 한 번 변곡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세계 금융과 실물시장을 재편할 미국의 금리 인상 신호가 강하고 빈번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주요 인사들에 이어 재닛 옐런 의장까지 연내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가계부채 폭탄을 지연시키고 부동산 경기를 지탱해 온 한국의 초저금리도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 부동산시장을 미리 연착륙시켜 후유증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불씨를 키우고 있다. 아랫목이 과열돼 집을 다 태울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