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제주 사투리와 만난 서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서예와 사투리의 만남.

이 조합이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고 느낀다면 서도(書道)에 대해 '꽉 막힌 사람'이라는 게 제주의 서예가 한곬 현병찬(玄昞璨.63)씨의 생각이다.

1992년 대한민국 서예대전 대상을 받으며 "한글서체를 재창안했다"는 찬사까지 들었던 玄씨. 제주도서예가협회장으로 지난 40여년간 제주의 서도가(書道家)를 이끌어온 그가 사투리를 묵향에 싣는 작업을 하고 있다.

玄씨는 최근 제주에서도 오지인 북제주군 한경면 저지리에 '문화예술인 마을'에 '먹글이 있는 집'을 열었다. '먹글이…'는 1천여평의 대지에 1백50여평의 전시관과 작업공간을 갖춘 제주 최초의 서예전문 테마전시관.

이곳에서 玄씨가 처음으로 여는 작품 전시회가 바로 '제주말씨 우리글 서예전'이다. 지난 17일부터 오는 10월 17일까지 3개월 일정으로 진행되는 이 전시회에는 '사는 게 뭣산디(산다는 게 뭔지)''어둑은 날 시민 은 날 싯다(어두운 날 있으면 밝은 날도 있다)' 등 특유의 제주방언.속담이 고운 서체로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무려 1백20여점에 이르는 이 작품들은 90년대 초부터 玄씨와 예담(藝談)을 주고받아온 2백여명의 제자들과 그가 함께 꾸려오고 있는 '제주한글서예사랑모임'이 그동안의 갈고 닦은 역량을 집대성한 것들이다. 타지 사람들에겐 어색해 보일 수 있는 이들 작품에 대한 玄씨의 변(辯)은 이렇다.

"어색하다고요? 우선 단순한 방언이란 생각을 버려보세요. 대신 고어(古語)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제주 고유의 언어라고 생각해보면 시각언어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서재(書材)는 없습니다."

"자식들에게 탐라국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제주고유의 언어를 우리의 시각적 언어로 되살린다는 명예를 물려주겠다"고 말하는 玄씨는 "나이로 볼 때 작품활동에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0년인 만큼 더욱 창작활동에 열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주=양성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