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입출금통장 우대금리 줄인하…집토끼 고객 혜택 줄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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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와 같이 채움 샐러리맨 우대통장의 우대금리가 9월 25일부터 인하될 예정임을 안내드립니다.’ 직장인 김상진(30)씨는 최근 거래은행인 농협은행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통장의 평균잔액 구간에 따라 연 0.4~1.9%를 주던 우대이율은 아예 없어지고, 3년 만기 채움적금 가입 시 1%를 주던 우대이율은 0.2%로 뚝 떨어지게 됐다. 김씨는 “우대이율 인하폭이 너무 크다. 다른 통장으로 갈아타야 하는 건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입출금통장에 주던 우대이율을 속속 낮추거나 없애고 있다.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기존 고객에게 주던 혜택마저 줄이기 시작했다. 우대이율을 보고 통장을 선택해서 거래를 집중시켜온 충성고객들의 불만이 커진다.

우대이율 축소에 가장 먼저 나선 건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13일부터 KB스타트통장(잔액 100만원 이하)과 KB주니어라이프통장(잔액 50만원 이하)에 주던 연 2%의 우대이율을 절반인 1%로 낮췄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장기적인 저금리 추세로 인해 우대이율을 내렸다”는 게 국민은행이 밝힌 이유다.

상반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농협은행은 9월 25일부터 입출금통장 우대이율 중 상당부분을 줄인다. 매직트리통장·더나은미래통장·채움샐러리맨우대통장·진짜사나이통장에 적용하던 평균잔액 구간별 우대이율(0.1~1.9%)은 아예 사라진다. 카드실적이나 적금가입, 급여이체와 연계해서 얹어주던 우대이율도 없애거나 낮춘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입출금통장인데도 조건이 맞으면 연 2%대 금리도 가능해서 혜택이 너무 과했다”며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우대이율 수준을 다른 은행에 맞춰 현실화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도 9월 23일부터 신한주거래미래설계통장과 신한주거래S20통장의 우대이율을 최고 연 1.75%에서 1.5%로 낮춘다고 23일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했다. 신한은행 측은 “지난 6월 기준금리 인하 직후부터 이미 이 상품의 우대이율을 낮추려고 검토해왔다”며 “3개월마다 돌아오는 이자 결산일에 맞춰서 이번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출금통장의 우대이율 변경은 신규 고객뿐 아니라 기존 고객에도 적용된다.

세 은행 중 우대이율 인하 사실을 기존 고객에게 일일이 문자메시지로 알린 건 농협은행뿐이다. 국민·신한은행은 영업점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있는 ‘새소식’ 코너에 게시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공지했다. 국민은행은 고객이 통장을 정리한 경우엔 이러한 내용을 통장에 찍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게시글을 꼼꼼히 살피거나 주기적으로 통장 정리를 하는 고객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고객은 이러한 변경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다.

예금거래기본약관에 따르면 예금상품의 이율을 바꿀 땐 그 내용을 영업점과 홈페이지에 1개월 동안 게시만 하면 된다. 문자나 e-메일로 미리 공지할 의무는 없다. 우대이율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점은 상품설명서에도 나와있다. 절차상으로는 은행이 잘못한 점은 없다.

하지만 높은 우대이율을 바라보고 입출금통장을 만들어서 적금·카드 실적을 집중시켜왔던 ‘집토끼’ 고객들은 허탈하다. 가입할 땐 0.1~0.2%포인트 금리 차이도 꼼꼼히 따져서 선택했는데 우대이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한 재테크 관련 인터넷카페에서는 은행들의 우대이율 조정이 알려지자 “금리가 너무 떨어져서 주거래은행을 바꿔야겠다”, “카페에서 보지 않았으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는 소비자 반응이 이어졌다. 입출금통장을 갈아타는 데는 별도 비용이 들진 않지만 고객 입장에선 통장을 새로 만들고 자동이체 거래를 옮기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한 달이라는 금리변경 예고 기간도 짧은 편이다. 신용카드의 경우엔 부가서비스를 줄이려면 6개월 전에 공지하도록 돼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은행들이 높은 우대이율을 미끼로 일단 고객을 모은 뒤 슬그머니 혜택을 줄이거나 없애는 배부른 영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국장은 “처음 통장을 만들 때부터 창구에서 ‘이 우대이율은 변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금리를 바꿀 땐 적어도 두세 달 전엔 미리 문자로 이를 안내해서 고객의 선택권이 제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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