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켜자” 여자 “끄자”…에어컨 성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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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직장인 김모(30)씨는 ‘에어컨 전쟁’을 치르고 있다. 김씨 같은 남자 직원들은 더위를 많이 타 에어컨을 끄면 곧장 땀을 흘리지만 같은 사무실의 여직원들은 “종일 에어컨을 틀면 추워서 견딜 수 없다”며 에어컨을 끄려 하기 때문이다. 더위가 극성인 올해는 특히 분쟁이 잦아졌다. 김씨는 “긴팔 옷까지 챙겨오는 것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이번 여름에는 잠시라도 에어컨을 끄면 일을 할 수 없다. 여직원들이 조용히 에어컨을 끄면 10분도 안 돼 남직원들이 다시 에어컨을 켜는 ‘눈치싸움’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신진대사율 낮아 더위 덜 타
적정하게 느끼는 냉방 온도 달라

기록적인 폭염 탓에 곳곳에서 에어컨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흔한 사례는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사무실 등에서 벌어지는 ‘성(性) 대결’이다. 여성과 남성이 생각하는 ‘적정 온도’가 달라 에어컨 가동을 놓고 갈등을 빚는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신진대사율이 30% 정도 낮아 남성에 맞춰 냉방 온도를 설정하면 춥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남녀 차이 때문에 마땅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학 동아리방에서 공부하는 김모(25·여)씨는 “에어컨을 계속 틀면 추워져 여자들끼리 있을 땐 끄는데 남자 선배들이 들어오면 ‘더운데 누가 에어컨을 껐느냐’며 화를 내곤 한다. 에어컨을 틀어도 덥다는 남학생들 심정도 이해가 돼 주로 여학생들이 양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내 적정 온도를 28도로 정해 놓은 공공기관은 폭염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해 또 다른 전쟁을 치른다. 하루 수백 명이 방문하는 서울 강남경찰서의 경우 실내 온도가 바깥보다 더 높은 사무실도 있다. 한 경찰관은 “며칠 전 사무실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민원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 정말 미안해진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한 주민센터 관계자는 “센터가 덥다는 민원이 많지만 정부에서 정한 규정이라 도리가 없다.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업무 능률과 민원인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적정 온도 기준을 현실에 맞춰 다시 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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