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젊은이들의 절박한 사랑과 삶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 작품은 최인호의 원작 각본을 신인 곽지균감독이 연출한 데뷔작이다.
겨울처럼 냉엄하고 살벌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절박한 사랑과 삶의 모습을 곽지균은 매우 진지하고 유연성 있게 묘사한 점이 돋보인다.
주인공은 다혜(이미숙)라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어쩔 수 없이 기지촌의 술집에 빠져 밀수범죄에 가담하게되는 민우(강석우)라는 불행한 청년이다. 그는 마침내 경찰에 붙잡혀 감옥살이를 하며 술집 호스티스인 은영(이혜영)의 악착스런 구애에 빠져 아기까지 갖게되어 호젓한 시골에 파묻히게 된다. 한편 민우의 친구 현태(안성기)는 구겨진 삶을 떨치고 착실하게 변신해 다혜와 결혼하게 된다. 말하자면 멜러드라머의 상황이다.
이 영화는 특히 전반부의 이야기전개가 다소 산만하다든가 영상의 흐름이 확실하게 이어지지(편집) 않은 미숙함도 눈에 뛴다.
그러나 요즘의 영화에 흔한 테마의식의 과잉이나 함부로 벗기는 섹스장면의 노출같은 것을 배제하고 차분한 인간묘사에 힘쓴 점이 좋다. 「슈베르튼」나「모차르트」,「비발디」등의 음악, 특히『보리수』같은 클래식을 사용한 것은 이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고는 있지만 안이하다는 지적도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려진 겨울풍경을 배경으로 각각 다른 삶의 길로 갈려진 인물들의 시점의 거리, 사랑과 우정의 결별은 매우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고 있다.
센티멘털리즘이 주조가 되어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냉엄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응시하는데서 오는 정서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민우의 이미지는 마치『지상에서 영원으로』나『젊은이의 양지』의「몽고메리·클리프트」처럼 짙은 멜랑콜리의 음영을 풍기는 인물형으로서 신선하였다.
얼어붙은 강을 배경으로 민우와 다혜가 호젓하게 재회하는 장면, 은영의 구멍가게에서 만나는 이들의 섬세한 감정, 그리고 현태가 은영의 입을 통해 알게되는 민우의 최후로 이어지는 라스트신은 잘 절제된 연출로 수려한 촬영과 함께 담담한 여운을 쌓아올렸다.
곽지균감독은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볼수 있게 하는 신인으로서 주목해도 좋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