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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회 때 BBC 리포트 못 막아 문책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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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밖에서는 ‘홍보맨’, 안에서는 ‘군기반장’.

태영호, 영국 대사관 유일 언론 창구
외교관·가족 사상 챙긴 세포비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태영호(55) 공사가 맡았던 역할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태 공사가 대사관 내에서 ‘세포비서’로서 영국 체류 외교관과 가족들의 사상교육 업무를 관장해 왔다고 전했다. 세포비서는 당원들의 조직생활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군기반장’에 해당한다. 공관 밖에서는 체제 선전을 담당하는 ‘홍보맨’이었다.

그는 영국 내 좌성향 단체들과 긴밀히 교류하며 각종 강연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유튜브에 공개된 태 공사의 강연 영상에서 그는 “미국이 우리의 핵 보유를 반대한다면 미국도 우리에게 핵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며 북한 당국의 입장을 대변했다. 강연은 유창한 영어로 진행했다. 시간과 장소가 분명하지 않은 한 강연에서 그가 한 말이다.

“내가 대사관에서 런던 도심을 차를 몰고 나갈 때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주차료 등 다른 차지들을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영국인들이 머리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김대중·노무현 소위 진보세력이 10년을 집권했다. 당시 미국은 깨달았다. 남한에 10년 더 진보 정권이 들어설 경우 더 이상 컨트롤이 어렵다고 생각해 정권이 바뀐 것이다.”

그는 2015년 11월 영국 공산당원에 대한 강연에선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은 보였지만 김정은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러시아의 노래(군가)가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며 직접 노래도 불렀다. “분노야 불타올라라. 심장아 뛰어라. 인민의 싸움. 정의의 싸움이다”는 가사였다.

2013년 런던에서 한 강연에선 “핵실험과 위성 발사 이후 우리에 대한 제재 강도가 세졌다. 보통의 금전거래가 차단됐고 그들은 우리를 고립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무역도 차단됐다. 제재를 통해 우리나라의 발전을 막고 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정책과 노선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제재로는 우리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 공사는 대사관에서 유일하게 대언론 창구 역할도 맡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5월 제7차 노동당대회 당시 영국 매체 관리에 실패해 문책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다. 북한은 당대회 기간 도중 평양 현지에서 취재 중이던 BBC의 루퍼트 윙필드 헤이스 기자를 ‘부적절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추방한 적이 있다.

태 공사는 영국 내 탈북자들과 주요 인사의 동향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도 맡았다. 태 공사는 북한 인권과 관련한 활동을 하는 탈북자를 포섭하라는 등의 지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한다.

서재준 기자 suh.jaej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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