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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영화 '터널' 재난현장 촬영 위해 도로까지 직접 깔았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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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8월 10일 개봉, 김성훈 감독)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사건이 벌어진다. 정수(하정우)가 집으로 가는 길, 터널이 무너진다. 극 중 뉴스 앵커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한 번 무너진” 상황. 이를 얼마나 생생하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영화 곳곳에는 무너진 터널의 안과 밖, 양쪽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실감 나게 담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묻어난다. 열 가지 핵심 키워드로 ‘터널’의 제작 과정을 짚었다.

| 리얼하고 긴박한 재난 현장, 도로까지 직접 깔았다고?

열 가지 핵심 키워드로 보는 '터널'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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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중앙포토]

01 하정우는 대부분 ‘즉흥’ 연기를 했다

김성훈 감독이 하정우에게 주문한 건 ‘날것 같은 연기’였다. 기본적인 대사나 행동은 정해 놓고, 그 외 모든 연기가 즉흥적이길 원한 것. 에너지를 빼앗길 수 있다는 이유로 리허설도 하지 않았다. 예를 하나 들면, 극 중 자려고 누운 정수가 갑자기 일어나 트렁크와 연결된 문을 열고 물건을 꺼내는 장면이 있다.

‘트렁크에는 워셔액·조기축구용 가방·손톱깎이 세트가 있다’는 정도만 미리 상의했고, 그 다음부터 김 감독은 하정우가 마음대로 연기하게 했다. 어떤 물건을 먼저 꺼낼 건지도 하정우 마음. 워셔액으로 차 안을 청소하고, 손톱깎이 세트에 들어 있던 방부제를 주머니에 챙겨 넣는 것 모두 그의 애드리브다. 차에 난 구멍을 막기 위해 운전석 머리 받침대를 뽑는 장면도 즉흥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조수석 것도 뽑으려다 실패하고 도로 집어넣는 건 NG였지만, 끊지 않고 계속 촬영했다. 대부분 장면을 20분 넘게 롱테이크로 찍고, 재미있는 부분만 편집한 것이다. “이런 촬영 방식은 배우로서 신나는 경험이었다. 스태프들이 마치 관객처럼 내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나는 ‘어떤 연기로 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늘 행복한 고민을 했으니까. 배우로서 집중하기에 최고의 환경이었다.” 하정우의 말이다.

02 정수 차량은 두 대, 카메라는 한 번에 네 대씩

촬영은 대부분 극 중 시간순으로 진행했다. 배우가 좀 더 편한 상황에서 연기할 수 있고, 점점 더 열악해져 가는 터널 안 상황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촬영에 동원된 차량은 이후경 미술감독의 지휘 아래 굴삭기로 망가뜨린 것. 앞유리에 환풍기가 떨어지고, 범퍼가 주저앉는 등 터널이 무너지며 차량이 받는 충격을 계산해 부쉈다.

정수의 차량은 편의상 내부 촬영용, 외부 촬영용으로 구분해 세트장에 5m 간격으로 두 대를 배치했다. 터널 천장이 정수의 차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는 설정상, 미술팀은 돔 모양의 터널 천장도 제작해야 했다. 무게가 상당해, 옮길 때는 크레인을 동원했다.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촬영이 많았기 때문에 바위 틈 사이사이에 카메라를 밀어 넣고 찍는 건 예사였다. 메인 카메라 외 DSLR까지 총 네 대씩 촬영 현장에 투입되곤 했다.

03 개 ‘탱이’는 사실 두 마리였다.

정수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파트너 탱이. 극 중에서는 한 마리로 등장하지만, 사실 퍼그 형제 곰탱이·밤탱이가 돌아가며 촬영했다. 새끼 때부터 동물 전문 트레이너에게 훈련 받으며 ‘터널’ 촬영을 준비했다. 촬영 시 갑작스러운 어둠이나 차체의 쇠 냄새 등에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어 실제 훈련도 폐차에서 진행했다고. 하정우는 아예 촬영장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여러 명의 손을 타면 탱이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촬영장에서 간식을 먹이고 함께 산책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탱이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것 아닌가. 최대한 배려하며 찍었다.” 하정우의 설명이다.

04 두 번의 붕괴, 촬영 컨셉트가 다르다

김태성 촬영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은 뒤 ‘두 번의 붕괴 장면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했다. 컷을 잘게 나누기보다 “투박하더라도 사실적인 화면”을 원했던 김 촬영감독. 첫 번째 붕괴 장면에서는 과감하게 차 안에서만 촬영을 감행했다. 정수의 시선에서 무너지는 터널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터널 안에 들어간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에게 닥치는 두 번째 붕괴 장면은 특수효과팀이 제작한 폭발물을 실제로 터뜨리는 등 스케일을 보여 주는 데 주력했다. ‘장롱 면허’ 오달수는 차 문을 채 닫지도 못하고 후진해 터널을 빠져나오는 위험천만한 장면을 직접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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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중앙포토]

05 원작 소설이 있다

소재원 작가의 동명 소설이다. 원작은 영화의 톤보다 훨씬 어둡다. ‘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구조 작업을 둘러싼 터널 바깥 상황을 적나라하게 다룬다. 소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그는 ‘비스티 보이즈’(2008, 윤종빈 감독) 원안을 쓰기도 했다.


06 영화를 위해 도로를 깔았다

촬영 전 미술팀은 터널 입구 앞에 200m 길이의 아스팔트 도로를 깔고, 가드레일을 설치했다. 순제작비 약 80억원 중 10억원이 길 닦는 데 들어갔을 정도. 그런데 사실 이 작업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원래 섭외한 곳이 취소되면서 급하게 찾은 곳이 1980년대부터 폐쇄된 충북 옥천터널이었던 것.

이동윤 프로듀서에 따르면 옥천터널의 첫인상은 “핵전쟁 이후 20년간 방치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모든 스태프가 달라붙어 약 두 달 동안 작업한 끝에야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터널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영화엔 두 곳의 터널이 나온다.

극 초반, 정수가 운전하는 도로가 영화를 위해 만든 옥천터널 앞. 사고 나기 전까지 터널을 달리는 장면은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실제 터널 내부에서 촬영했다. 무너진 터널 내부는 경기도 안성 DIMA종합촬영소에 지었다. 두 개 차선 중 한 차선이 막혔다는 가정 하에 만들었고, 실제 촬영이 진행된 공간은 약 폭 5m에 길이 10m 규모였다.

07 헬기 촬영은 한 번에 최대 4분

터널 밖 풍경만큼은 항공 촬영으로 시원하고 넓게 보여 주자는 것이 김 촬영감독의 생각이었다. 카메라를 실은 헬기가 뜨면, 촬영 가능한 시간은 최대 4분. 그 안에 원하는 그림을 건져야 하는 ‘시간 싸움’이었다. 김 촬영감독은 “‘히말라야’(2015, 이석훈 감독) 촬영에서 손발을 이미 맞춰 보았기 때문에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촬영에는 무인 항공 촬영기인 드론도 동원됐는데, 수십 대의 드론이 동시에 터널로 진입하는 장면은 드론 동호회 회원들의 촬영 협조로 완성했다.

08 해외에서도 집에서도, 실제 통화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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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중앙포토]

통화 장면은 배우들이 모두 실제로 통화하며 촬영했다. 정수와 아내 세현(배두나)이 통화하는 장면을 예로 들면, 하정우가 촬영하는 날엔 해외에서 미국 드라마 ‘센스8’(2015~, 넷플릭스)을 찍고 있는 배두나가 새벽에 일어나 전화로 연기를 맞춰 줬다.

배두나의 촬영 땐 집에서 쉬던 하정우가 전화를 받아 상대 연기를 해 줬다. 하정우는 “배터리 나가기 직전에 통화하는 장면이 있다. 배두나씨가 그 장면을 찍을 때 나는 집에 있었다. 그날 일하는 아주머니가 안 오셔서 다행이지, 갑자기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울분을 토하는 내 모습을 봤다면 ‘드디어 미쳤구나’ 했을 것”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09 먼지 제조 방법이 있었다

무너진 터널의 자욱한 분진과 먼지들은 ‘콩가루+숯가루+미숫가루’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서 만들었다.

10 구조 작업 자문은 ‘지인 찬스’를 썼다

정수의 구조 과정을 보여 줘야 했던 제작진은 해외 붕괴 사례 자료와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 “토목 공사 업체에서 일하거나 실제 터널 공사를 하는 분들, 토목을 전공한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구조 작업 그림을 그려 나갔다.” 이동윤 프로듀서의 말이다.

산 위에서 대경이 터널 안으로 들어가려고 탄 캡슐 모양의 노란 통은, 2010년 칠레 탄광 매몰 사고 때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나사(NASA)에서 제작한 구조 캡슐을 참고해서 만들었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구조 작업에 필요한 것들을 디자인하고 세팅하면서 “미술감독이 아니라 건설 현장의 소장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이은선·이지영 기자 h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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