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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③ 영화 ‘그녀’의 미래 도시, 루자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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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의 배경은 상하이 루자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영화 ‘그녀(Her)’의 시간적 배경은 아주 가까운 미래다. 그곳은 낯설지만 이질적이진 않다. 사람들은 첨단 기기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클래식한 옷을 입고(주인공 테오도르의 배바지 같은), 여전히 야근에 시달리며, 공원과 해변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이 영화의 실제 배경인 상하이 루자주이(陸家嘴)가 바로 그렇다. 영화 때문인지 몰라도 루자주이는 단순히 실재하는 가까운 미래처럼 느껴진다.

미지의 행성처럼 보이기도 하는 푸동 루자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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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자주이는 여행자들이 상하이 하면 와이탄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다. 루씨의 입이라는 뜻처럼 황푸강 동쪽 끝에 돌출된 작은 곶인데, 여기에 동방명주(東方明珠)를 비롯해 상하이의 고층 빌딩이 모두 모여 있다. 대부분 금융 관련 건물이어서 현지인들은 ‘금융성’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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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에서 푸동 루자주이까지 페리로 5분만에갈 수 있다.

와이탄에서 본 강 건너 루자주이의 풍경은 무척 기이하다. 강 너비는 고작 400m인데 저 앞에 외따로 떠 있는 루자주이는 머나먼 미지의 행성, 혹은 미래 도시를 보는 듯하다. 만약 고도로 발달한 외계 행성이 있어 천체 망원경으로 들여다본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곧 발사될 우주선 같은 동방명주는 대단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영화 Her 속 테오도르의 출근길은 루자주이의 스지톈차오 육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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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에서 푸동 루자주이까지는 페리로 5분이다. 저 낯선 행성 속으로 진입한다니 자못 설렜다. 20세기 초에 시간이 멈춘 와이탄에서 미래 도시 푸동으로 5분 만에 간다니, 이거야말로 순간 이동이 아닌가. 페리 선착장에서 내려 스지톈차오 육교에 오르면 더욱 그런 기분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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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지톈차오 육교 위에서 본 상하이의 대표적인 마천루들. 왼쪽부터 상하이 세계금융센터(492m), 진마오타워(420.5m), 상하이타워(632m).

푸동에서 가장 해보고 싶던 일이 이 육교를 걷는 것이었다. 이 길은 영화 그녀 속 테오도르의 출근 길이다. 컴퓨터 OS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는 늘 이 길을 걷는다. 혼자 걸을 땐 우울한 잿빛이었던 길이 사만다를 앞주머니에 넣고 걸을 땐 따듯하고 로맨틱한 길로 바뀐다. 실제 스지톈차오 육교(世紀天橋)는 4대 마천루 사이사이로 뻗어 있어, 기념 사진 촬영지로 최고다. 상하이 IFC몰 앞에 서면 상하이타워(Shanghai Tower), 상하이 세계금융센터(SWFC), 진마오타워(Jinmao Tower)가 사이좋은 형제처럼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IFC몰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빌딩숲 사이에 아늑함을 품은 루자주이 녹지 공원(陸家嘴中心綠地)도 만날 수 있다.

빌딩숲 한가운데 조성돼 아늑함을 주는 루자주이 녹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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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라는 말은 바로 루자주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원래 루자주이를 포함한 푸동 일대는 상하이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다. 과거에는 ‘푸시(浦西)에 침대 한 칸이면 푸동의 집 한 채 부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1992년 푸동 개발이 시작된 뒤, 20여년 만에 루자주이는 뉴욕 월스트리트에 비견되는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됐다. 당연히 집값도 천정부지로 올라 요즘 황푸강변의 아파트 한 채 값은 8000만 위안(약 134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동방명주의 투명전망대. 와이탄과 푸동의 야경을 모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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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동 개발의 포문을 연 것은 1994년 완공된 동방명주(468m)다. 스지톈챠오 육교가 동방명주와도 연결된다. 코 앞에서 본 동방명주는 웅장함과 여성스러움을 동시에 풍긴다. 지금이야 동방명주 없는 상하이의 스카이라인을 상상할 수 없지만 완공 당시만 해도 사이버틱한 디자인에 대해 온갖 악평이 쏟아졌다. 하긴 허허벌판에 홀로 선 동방명주가 얼마나 괴상하게 보였을지 짐작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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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동 빈장공원에서는 강 건너 와이탄 건축군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동방명주는 주변에 멋진 마천루가 하나둘 곁을 채워주고 나서야 제 빛을 발하게 됐다. 동방명주의 투명전망대는 와이탄 건축군을 감상하기 좋은 명소이기도 하다. 와이탄과 가깝고 360도 전면 창에 바닥이 투명해 다양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본 동방명주는 웅장하고 여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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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루자주이 빌딩들의 화려한 야경을 보고 싶다면 상하이 세계금융센터(SWFC)의 스카이워크 100 전망대로 가는 것이 낫다. 여기서는 불탑 모양의 진마오타워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푸동에서 와이탄 건축군을 보려면 황푸강변의 빈장공원(濱江公園)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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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상하이타워(632m). 지난해말 완공됐지만 아직 정식 개장 전이다.

푸동 산책 중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상하이 타워를 관람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상하이 타워는 2008년 착공해 지난해 말 완공됐다. 118층, 632m 높이로 그 앞을 지날 땐 정수리가 등에 닿을 정도로 목을 꺾어야 꼭대기가 보인다. 지난 6월 중순 갔을 때 현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전망대가 언제 문을 열지 모른다고 했다. 현재는 지하 전시 공간만 유료 개방 중이다. 552m 상공의 중국 최고층 전망대와 101층에 로비가 있는 최고급 J호텔은 아마 내년에나 베일을 벗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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